이름 | 장 바티스트 외젠 에스티엔 (Jean Baptiste Eugene Estienne) | |
생몰년도 | 1860년 11월 7일 ~ 1936년 4월 2일 (75세) | |
복무 | 프랑스 육군(1882년 ~ 1927년) | |
최종 등급 | 포병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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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외젠 에스티엔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군인이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군사 공학 전문가이다.2. 초기 경력
에스티엔은 1884년에 포병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탄도학에 대해 공부를 하였으며, 1890년에는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간접 포격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특히 에스티엔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전황이나 전장을 보고받으며 앞으로의 전장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심도깊은 연구를 하였는데, 특히 러일전쟁의 교훈을 통해 보병화기의 사거리와 화력이 증가함으로써 포병의 직접 포격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로인해 강력해지는 요새화 방어선을 어떻게 돌파할지 고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국내에서 영 병맛인 닥돌 프랑스군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에스티엔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항공 정찰을 기반으로 한 간접 포격 교리를 문서로 작성하는 등 다른 지휘관들보다 앞서 있었다.1914년 8월, 프랑스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에스티엔은 흥미로운 발상을 하였는데, 바로 120mm포를 미국산 농경 트렉터에 장비하여 일종의 자주포로 개량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에스티엔의 전차 아이디어에 대한 서막이자, 전차를 떠올리는데 있어서 어떠한 생각을 기반으로 하였는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3. 1차 세계대전
1914년 9월 6일, 에스티엔은 제2 보병사단의 포병 지휘관으로 승진하였으며, 항공 정찰을 기반으로 한 집중 포격을 퍼부어 독일군의 요새화 지역을 파괴하는데 성공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1915년 이후에는 이제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전차 생산 프로젝트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3.1. 전차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다
1915년 후반, 에스티엔이 조제프 조프르에게 보낸 서신에는 전차에 대한 여러가지 옵션이 적혀 있었는데, 이는 프랑스 전차의 첫 옵션이었다.1, 무게는 12t
2, 시속 9km
3, 각종 장애물과 참호를 건널수 있어야 한다.
4, 37mm보병포 하나와 기관총 2정을 정비
5, 보병을 보조하는 것에 포커스를 둔다.
1916년 1월 24일에 모리스 가믈랭이 이를 검토한 뒤, 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여겨 수락하였고, 가믈랭의 참모 3명이 에스티엔의 옵션을 기반으로 하여 전차의 사항들을 작성했다. 전차는 참호를 건널수 있어야 하며 철조망을 파괴하고 신속한 방향전환이 가능해야 함은 물론 40도 가량의 경사지를 오를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3.2. Artillerie Speciale(프랑스 전차부대)의 탄생
1916년 2월 21일에 베르됭 전투가 시작되자, 에스티엔은 포병 지휘관으로 전투에 참가하는 한편, 농경용 트렉터를 돌격포로 개조하겠다며 신무기 프로젝트에 대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그렇게 1918년 8월 , 에스티엔은 베르사유 북쪽에 있는 마흘리 지역에 도착하여 Artillerie Speciale를 처음으로 구성하였다. Artillerie Speciale는 영어로 말하면 Special Artillery이며, 특수 포병이라 직역되는데 사실상 프랑스 전차부대 명칭의 암호명이다.에스티엔은 전차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기업가들에게서 지지를 구하는 한편, 다른 병과(보병, 포병, 기병, 해군 등등)에서 인력을 모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