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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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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봉당시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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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Yol튀르키예, 아니 스위스 영화가 되어버린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이다.
1982년 개봉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왔으며 튀르키예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1] 공교롭게도 공동수상한 의문의 실종 역시 욜처럼 비인간적인 군부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영화다. 감독인 이을마즈 귀네이(Yılmaz Güney)의 대표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1983년 칸에서 공개된 듀발이다. 주연은 타륵 아칸(Tarık Akan), 할릴 에르귄(Halil Ergün), 툰자이 악차(Tuncay Akça), 히크멧 첼릭(Hikmet Çelik), 네즈메틴 초반오울루(Necmettin Çobanoğlu).
2. 줄거리
튀르키예 서부 한 교도소에서 5명 사내가 1주일 가출옥을 허가받는다.세이트, 메흐메트, 메블뤼트, 유수프, 외메르. 이들 5명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만 유수프는 가출옥 허가증을 잃어버려서 검문소에서 걸려서 끌려가면서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다. 그것도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라 독방에 갇혀 온갖 인권이고 뭐고 없이 학대받는다.세이트의 아내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 먹고 살고자 몸을 팔아야 했다. 아니, 동부 황폐한 곳에서 여자가 벌어먹을 길이 없는 상황이니 별 수가 없거늘. 처가에선 더러운 년이라고 그녀를 박대하고 세이트에게 그 년을 죽여버릴 자격이 있다고 은근히 명예살인을 요구한다.
메흐메트는 은행강도였다가 잡혀들어왔는데 같은 공범인 처남을 버려둬서 그가 사살당하는 통에 처가에서 죽일놈으로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 처남이 강도짓을 더 적극적으로 나섰고 마지못해 도와야하던 메흐메트로선 더 억울했고 그런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안타까울뿐. 아내를 제대로 만날 수도 없는 터에 메흐메트도 미치도록 안타깝다.
메블뤼트는 약혼녀가 있지만 그의 복역에 약혼녀 집안은 그를 증오하며 약혼을 취소하려고 한다.
외메르는 쿠르드족이라 고향 마을로 오지만 튀르키예군에 의하여 마을은 엉망이 되어 있다. 쿠르드족 독립운동에 뛰어든 형은 사살되어 시체가 바깥에 버려둬 썩어가고 있고 튀르키예군은 이 시체를 보고 반응하는 쿠르드족은 무작정 잡아들이고 있기에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할 뿐이다. 죽은 형수를 맞이하고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외메르. 튀르키예군의 감시와 여러 모로 그는 분노하는데...
3. 평가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꿈도 희망도 없다. 쿠데타가 밥먹듯이 자주 일어나고[2] 온갖 여론 규제 및 인권탄압이 극심하던 터에 이렇게 만든 게 용하다. 튀르키예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인권문제나 쿠르드족 문제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으며 나아가 동부쪽 이슬람 극단주의적인 명예살인에 대한 비난까지도 넣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인이던 귀네이는 이슬람교가 아닌 명예살인 및 동부쪽의 악습에 대한 비난으로 이야기하길 원했고 이 영화가 반이슬람적으로 쓰이지 않길 원했다. 우습게도 이런 묘사가 찔리는지 아랍 보수적인 여러 나라에서도 상영금지당했다.욜을 만들 당시 쿠르드인인 감독 이을마즈 귀네이는 튀르키예 군부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교도소에 있었기에 후배 감독인 셰리프 괴렌[3]의 이름으로 만들어야 했다. 귀네이는 20살이 넘을 때부터 군부를 비꼬고 쿠르드인 탄압을 다룬 책을 썼다가 구속되고, 교도소를 들락날락 하다가 1972년에는 현역 판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15년이나 수감될 예정이었다. 당연히 영화를 만들 수 없을지 알았더니만, 놀랍게도 각본과 여러가지 치밀한 콘티를 짜내 믿던 다른 감독들에게 전해줘서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냈다.
욜은 1979년 다른 감독인 셰리프 괴렌의 이름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개봉 당시 검열에 걸려 말이 많으면서 비로소 셰리프 괴렌이 아닌 이을마즈 귀네이가 거의 감독한 영화라는 걸 들켜버렸고 군부는 그가 각본이건 뭐건 맡기만 한 영화는 모조리 상영금지하는 악랄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는 목숨을 건 선택을 한다. 바로 교도소를 탈옥한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로 망명해 욜 마무리, 영화편집까지 다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스위스산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서야 개봉하게 된다. 물론 튀르키예에선 상영금지되었고, 심지어 칸 영화제 시상식이 열리는 자리에[4] 튀르키예 군부가 보낸 비밀요원이 그를 잡으려고 했을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하여 군부가 이를 갈았다. 물론 프랑스가 엄청 분노했고, 해외의 비난이 들끓어서 체포되지 않았다. 다만, 비밀요원들은 귀네이에게 당신은 튀르키예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다고 말을 했다. 이거 하나로 국제적 명성을 떨쳤으나 대신 해외로 달아나야 했던 감독 귀네이는 1984년 47살 한창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뜨고만다.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정말로 다시는 못 들어온 셈..
우리나라에선 튀르키예 영화라고 해봐야, 앞서 말한 욜이 튀르키예 영화로 제대로 알려지며 개봉한 것으로는 거의 처음[5]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전두환 군부가 집권하는 시절에 상영금지당했다. 이 영화상 모습이 한국은 그나마 튀르키예보단 낫다고 할지 몰라도 군부에 대하여 냉소적인 이 작품을 군부가 악랄하게 나오면 무조건 상영금지시키던 박정희-전두환 군부 체제에선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가 1988년에서야 드디어 수입금지가 풀려 [6] 한국개봉을 하게 되었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한국에 이 영화를 수입하지 말아달라고 외교적으로 압력을 넣기도 했다. 물론 무사히 극장에 개봉했는데 뭐 보시다시피 영화가 암울하니 흥행은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서울관객 54,776명을 기록했는데 비싸게 사고온 영화도 아니고 그럭저럭 수입사가 실속은 챙겼다고 한다.
화인비디오에서 VHS 비디오로 출시했고 1994년 10월 8일,MBC 주말의 명화에서 더빙 방영되기도 했다.
튀르키예 군부 및 당시 튀르키예 인권침해를 비난하던 영화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제작진들이 튀르키예에 가서 사죄할 정도로 튀르키예 왜곡 쓰레기 영화가 되어버린 것과 다르게 쿠르드족 탄압문제라든지 2013 튀르키예 시위나 갈수록 독재와 종교 억압적인 정책을 취하는 에르도안정권 하 튀르키예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이 영화는 아직도 튀르키예의 많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판권 문제가 꽤 꼬여있는 영화기도 했다. 본디 이을마즈 귀네이랑 스위스 제작자 도나 케슈(Donat Keusch)가 판권을 가지고 있었다가 귀니랑 도나 사이에서 판권 분쟁이 붙고 귀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귀네이의 아내랑 판권 분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1999년 도나 케슈의 제작사가 망해버리면서 판권이 더 꼬여버려 치열한 법정 소송까지 붙었다고 한다. 2010년 시점으로는 도나 케슈가 다시 판권을 가져갔다.
튀르키예에서는 1999년까지 상영 금지당했으나, 1999년 자체적으로 복원해 개봉했다. 그러나 2017년 재개봉 당시 무삭제라 홍보하면서 쿠르드족 묘사를 제거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 이후 32년동안 수상이 없다가 누리 빌게 제일란의 윈터 슬립으로 두번째 수상을 하게 된다.[2] 영화찍고 나서인 1983년에 또 벌어졌다.[3] Şerif Gören 1944년생으로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튀르키예 영화감독협회 회장을 지냈다가 1980년 군부 쿠데타의 여파로 체포되었다. 그도 나름대로 수십여편을 감독하고 이스탄불 영화제나 안탈리아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인정받던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도 몇 편 한국에 비디오로 나왔지만,그냥 그런 평가를 받은 범작들이다.[4] 비하인드로 욜은 발표 직전까지 칸 영화제 측에서 경쟁 초청 사실이 극비리로 취급되었다고 한다.[5] 사실 튀르키예 영화는 80년대에 은근히 개봉했다.다만 작품성이고 뭐고 없는 에로틱물로 그냥 유럽 영화 이렇게 대충 소개되었기에 튀르키예 영화라는 걸 모르는 영화들이었다.[6] 민주화 이후 1988~1989년은 오랫동안 개봉 금지된 영화들이 한국에서 대거 개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 영화들이 한번에 개봉했고, 지옥의 묵시록이나 Z, 양철북,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도 이때 개봉했다. 그리고 대통령 모독이라고 개봉금지되었던 조긍하 감독의 <잘 돼 갑니다>(1968)도 21년만에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