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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 | 산초 3세 | 안초 6세 | }}}}}}}}} |
Urraca la Asturiana
(1133년~1179년)
1. 개요
팜플로나 왕비(1144년~1150년), 아르타호나 여왕(1144년~1153년), 아스투리아스 섭정(1153년~1165년).2. 생애
1133년, 레온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 알폰소 7세와 그의 정부 곤트로도 페레스 사이에서 사생아 딸로 태어났다. 1144년, 팜플로나 왕국의 왕 가르체아 라미리츠에게 시집갔고, 가르체아 라미리츠는 아르타호나 일대의 땅을 개별 왕국으로 분할해 그녀에게 줬다.1150년, 남편 가르체아 라미리츠가 죽었고, 우라카는 1153년에 아르타호나 왕위를 산초 3세에게 물려주고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 알폰소 7세로부터 '아스투리아스의 여왕' 칭호를 받고 아스투리아스 섭정에 임명되었다.[1] 이후 알바로 로드리게스와 재혼했으며, 남편과 함께 레온 왕 페르난도 2세에 대한 반란에 관여하여 아스투리아스의 독립을 시도하기도 했다. 1179년에 죽었고 팔렌시아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알폰소 7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로서 가족들에게 왕과 여왕의 칭호를 줬다. 아들인 산초 3세는 '카스티야의 왕' 칭호를, 아들인 페르난두 2세는 '갈리시아의 왕' 칭호를, 사생아 딸인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는 '아스투리아스의 여왕' 칭호를, 자매인 산차 라이문데스는 '인판타-여왕'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