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59년 2월 『사상계』에 발표한 박재삼의 시.2. 시 전문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이 나고나. 제삿날 큰길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
3. 해설
이 시에 등장하는 '울음', '눈물', '가을' 등의 이미지는 박재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뛰어나다. 또한 이 시는 전체적으로 성숙과 소멸의 이미지로 덮여 있는데, '가을 햇볕', '등성이', '제삿날', '해질녘', '가을강' 등이 그것이다. 시인은 이런 비유들을 통해 사랑의 성숙을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로 채색함으로써, 통념적인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새삼스러운 체험으로 바꿔놓는다.서러운 사랑의 귀결은 소멸이지만 그 사랑은 강렬한 시적 이미지를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리하여 소멸과 재생의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된다. 시인은 노을이 붉게 타는 가을 강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서러움을 하나의 정화된 의미로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러운 사랑의 이야기는 한낱 소멸의 이미지에만 묶여 있지 않고, 울음이 타는 가을강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매개로 하여 삶의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자각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가게 된다. 박재삼은 이처럼, 평범한 삶의 체험을 생생하고 강렬한 정서로 부각시키는데, 그러한 과정에는 구어체의 생동감 있는 어조의 변주라는 특유의 시적 장치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