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2 17:17:45

월드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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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창립 초기(1983년 ~ 1985년)2.2. 버나드 에버스 영입(1985년 ~ 1995년)2.3. 월드컴 신화(1995년 ~ 1999년)2.4. 짙어지는 그림자(1999년 ~ 2001년)2.5. 심판의 날(2001년 ~ 2002년)
3. 영향

1. 개요

1983년부터 2002년까지 존속했던 미국의 유선통신 기업. 파산 당시 명칭은 MCI 월드컴(MCI WorldCom)이었다.

미국 전역에 광통신망을 가지고 있어서 전국 유선통신 서비스를 제공했던 대기업. 1999년 말에 Sprint를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손꼽히는 통신 대기업이었으며, 1999년에 4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그 실상은 분식회계로 얼룩진 흑역사. 리먼 브라더스 파산 전까지는 미국 1위의 채권부도 기록을 갖고 있던 기업이었다. 인식도는 엔론에 밀리지만 부정부패와 분식회계의 규모 모두 엔론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월드컴과 달리 엔론은 꽤 오랜 기간 동안에는 매우 멀쩡하게 운영되고 있던 회사였다.

2. 역사

2.1. 창립 초기(1983년 ~ 1985년)

1983년 미시시피에 세워진 LDDS(Long Distance Discount Services)[1]라는 이름의 회사가 이 장대한 신화의 시작이다. 이 회사는 미시시피 내의 일부 고객들에게 전용망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회사는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지만, 그다지 공격적으로 확장을 하지는 않아서 1985년 매출액은 100만 달러 가량이었다.

2.2. 버나드 에버스 영입(1985년 ~ 1995년)

1985년, LDDS의 이사회는 버나드 에버스(Bernard Ebbers)를 LDDS의 CEO로 선출했다. 버나드 에버스는 당시 지역에서 저가 호텔을 몇 개 소유하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LDDS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었기 때문. 하지만 이 선택이 LDDS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CEO로 취임한 버나드 에버스는 회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이 발상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 단지 방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을 뿐. 1985년 당시는 정크 본드를 이용한 차입 매수(LBO) 기법이 널리 활용되던 시기였고,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의향만 밝히면 돈을 대주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버나드 에버스는 그것을 잘 활용했다. 실제로 LDDS는 에버스가 전권을 잡은 1985년부터 스프린트 합병이 미 상무부로부터 거부된 2000년까지 총 60개의 회사를 인수했고, 이중 상당수는 자사보다 훨씬 큰 회사였다. 버나드 에버스는 LDDS보다 큰 회사를 빚을 이용해 쉽게 인수하면서 합병회계의 허점을 이용, 회사의 규모와 이익을 포장했다. LDDS가 15년간 60개, 즉 한 분기에 하나꼴로 회사를 인수한 이유는 매 분기마다 회계조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89년, LDDS는 Advantage Companies Inc.라는 상장기업을 인수하면서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당시 LDDS의 매출액은 4억 달러 가량이었다. 4년만에 400배 성장한 셈이다. LDDS의 놀라운 성장으로 인해 에버스는 점차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2.3. 월드컴 신화(1995년 ~ 1999년)

지속적인 합병으로 무섭게 성장하던 LDDS는 1995년에 국제통신 사업에 진출하면서 사명을 '월드컴'으로 변경했다. 그 이후에도 무리한 인수합병은 계속되었는데, 그 정점을 찍은 것은 1998년에 'MCI 커뮤니케이션즈'를 인수한 것이다. MCI를 인수하면서 월드컴은 전국망과 국제통신망을 모두 갖추었고, 연매출은 10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월드컴은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다. 큰 돈을 들여 구축하거나 매입한 통신망은 통신량의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서[2] 예상과는 달리 놀게 되었고, 부채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진 뒤였다. 당황한 월드컴 경영진은 그 사실을 분식회계를 통해 외부에 숨기고 있었지만, 이미 월드컴은 현금 결제능력을 상실했다. 회사 내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월드컴은 계속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행은 월드컴에 계속 돈을 빌려줬고, 증권사들은 월드컴의 채권을 매입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90년대 이후 미국은 유례가 없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금융기관들은 월드컴의 왕성한 현금 수요를 기업 활동이 호조를 띠고 있어 투자가 활발한 것이라고 잘못 평가했으며, 마침 남아도는 것이 돈이라서 월드컴에 아낌없이 퍼부었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진작에 숨이 끊어졌어야하는 월드컴은 사실상 좀비에 가까울 정도로 계속 유지되었으며 회사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버나드 에버스를 필두로 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는 계속되었는데, 회사에 현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자신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 특히 버나드 에버스는 회사 금고에까지 손을 대고 자신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이사회에 통보하여 사후 대출 승인을 받곤 했다.

2.4. 짙어지는 그림자(1999년 ~ 2001년)

계속 어찌어찌 살아남았던 월드컴에게도 결국 심판의 날은 다가왔다. 이미 1998년부터 인터넷 망 초과공급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2000년 3월에 일제히 붕괴된 닷컴 버블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닷컴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인터넷의 미래에 회의적으로 돌아섰다. 수천 개의 사이트들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사용하던 엄청난 양의 통신 트래픽도 함께 증발했고, 유선통신 시장은 사상 최악의 초과공급 상태로 빠져들었다.

결국 유선통신 사업자들은 파격적인 가격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월드컴 경영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판을 크게 벌리려고 했다. 엔지니어들이 한쪽에서 통신망을 부설하는 동안 대도시의 번화가에서는 세일즈맨들이 마진조차 거의 남지 않는 가격을 제시하며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매출과 이익의 급격한 감소에 당황한 월드컴 경영진은 사정이 비슷한 편이었던 글로벌 크로싱, Qwest[3], 엔론[4] 등과 짜고 회선 임대 교환거래로 시간을 벌기로 했다. 이것은 각 회사들이 서로 회선을 임대해 줘서 실적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즉 월드컴이 미시시피 회선을 엔론에게 빌려주고 엔론이 월드컴에 캘리포니아 회선을 빌려주면서 서로 똑같은 금액의 어음을 임대료로 주고받는 방식. 당연히 사기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올린 거짓 매출과 이익을 발표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다시금 재확인했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파멸은 이미 가까이 다가온 뒤였고, 버나드 에버스는 차라리 판을 더 키워보기로 했다. 1999년 10월, 월드컴은 미국 4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스프린트를 합병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 합병건은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한[5] 미 상무부에 의해 2000년 7월에 거부되었고, 더 이상 월드컴엔 아무런 가망도 남지 않게 되었다.[6]

2.5. 심판의 날(2001년 ~ 2002년)

그러나 아직 월드컴의 경영진은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비록 닷컴 버블은 붕괴되었지만 아직 통신산업은 비교적 연원이 길어 전체 경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닷컴 기업이 사라져 투자처를 잃은 유동자금은 월드컴을 필두로 한 일부 신흥 통신회사들에 몰리고 있었고, 그래서 2001년 초까지 월드컴은 현상유지를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현상이 지속되었다면 실적 개선될 때까지 버텨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9.11 테러가 모든 흐름을 뒤엎었다.

9.11 테러 때문에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월드컴도 돈줄이 끊겼다. 이렇게 월드컴은 버틸 여력조차 잃었다. 더군다나 때맞춰서 신시아 쿠퍼가 이사회에 38억 달러에 달하는 회계부정을 폭로했다. 물론 이사회도 이미 회계 부정을 알았지만, 금액이 그렇게까지 클 줄은 아예 몰랐다. 결국 버나드 에버스는 사임했고, 이사회도 싹 물갈이된 다음 회사의 장부를 정리하고 청산을 준비하게 되었다.

결국 2002년 7월 21일, 월드컴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그 파란만장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월드컴의 파산 규모는 보유 자산 기준 1070억 달러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리먼 브라더스6700억 달러로 깨기 전까지는.

2003년 12월, 의회 특별조사위원회가 월드컴의 실제 분식회계 규모가 110억 달러였다고 발표했다. 또한 버나드 에버스가 퇴임하기 직전에 4억 달러를 횡령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월드컴 CEO 버나드 에버스는 2005년 7월 13일에 증권 사기와 공모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9월 26일에 수감된 그는 13년의 복역을 마치고 2019년 말에 석방되었고 이듬해 2월에 사망했다.

3. 영향

엔론 스캔들의 쇼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월드컴이 비슷한 방식으로 망하자 미국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 이후 대두하던 신자유주의는 약간이지만 타격을 입었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으며, 사베인스-옥슬리법이 제정되었다.

추가로 상술한 회선 임대 교환거래로 인해 다같이 운명공동체가 된 많은 통신회사들은 월드컴의 파산으로 인해 미수금을 받지못해 곧 월드컴의 뒤를 따라 골로 가버렸다. 결국 이후 이러한 거래 관행은 금지되었다.

또한 버나드 에버스가 회사로부터 거액의 대출[7]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돈을 착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기업가들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에 미 의회는 기업 경영진이 사사로이 회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월드컴의 외부감사였던 아더 앤더슨은 엔론 사태로 입었던 피해에 월드컴 사태까지 겹치면서 공중분해되었다. 하지만 아더 앤더슨이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방조하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도운 흔적까지 있으므로 결과적으론 자업자득. 덕분에 아더 앤더슨은 영구까임권을 획득했다.

한편 월드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1998년에 합병되었던 MCI 커뮤니케이션즈라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매우 건실한 회사였으나 월드컴과 한몸이 되면서 맛이 가버렸다. 월드컴이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뒤 MCI로 사명을 바꿔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나스닥에 재상장하는 등 희망을 찾는가 싶었지만 결국 2006년 1월 버라이즌에 팔려버렸다.


[1] '장거리 전화 할인 서비스'라는 뜻이다.[2] 버나드 에버스는 통신량이 100일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배증 법칙을 믿고 판을 크게 벌였다.[3] 이 회사는 2011년 루멘 테크놀로지스(구 CenturyLink)에 인수되었다.[4] 1998년에 유선통신 사업에 진출하였고, 총 3만 킬로미터의 광통신망을 가지고 있었다.[5] 게다가 독점 문제도 겹쳐서 핑계로 제시하기 딱이었다.[6] 참고로 스프린트는 나중에 소프트뱅크가 인수했다. 어떻게 보면 에버스의 꿈을 소프트뱅크가 대신 이뤄준 셈. 스프린트는 이후 2020년 T-Mobile에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7] 말이 대출이지 이율이 말도 안되게 낮거나, 아예 이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