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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이스트랜드 2 제작이 확정되기 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문서.2. 베타 테스트
베타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었던 2013년 10월에 아무런 소식도 없이 날짜가 다 끝나갈 무렵, 브라이언 파고는 갑작스럽게 게임 내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베타 시작 일정을 잠시 늦추겠다고 했다.# 베타는 준비가 될 때 돌입할 예정이며 2013년 11월, inXile 측에서 웨이스트랜드2를 지원해준 사람에게 웨이스트랜드키를 무료로 주겠다고 하며, Steam과 GOG.com을 통해 다시 재판매하겠다고 한다.현지 시각 12월 5일, 웨이스트랜드 2 베타가 다음 주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타 참가 애드온(반드시 웨이스트랜드 2 티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을 구입할 시, 베타 키를 이메일로 전달하며 스팀을 통해서 베타가 이뤄진다. LA 지역은 스포 방지를 위해 제외된다.
2013년 12월 14일부터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 방식으로 59.99달러에 판매가 시작되었다. 킥스타터에서의 베타 참가권 55달러보다 5달러가 비싼 만큼 추가 특전이 있으며, 얼리 액세스 특성 상 정식 발매 때는 더 낮은 가격으로 조정된다고 한다.
베타 테스트는 킥스타터나 페이팔을 통해 후원한 후원자와 스팀 얼리 액세스를 통해 구매한 구매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베타에서 공개된 지역은 레인저 시타델, 라디오 타워, 하이풀, 농업 센터이다. 첫 미션인 라디오 타워 시점에서 하이풀과 농업 센터에서 동시에 구조 요청이 들어오게 되고, 플레이어는 한 쪽을 선택하게 된다. 베타 후반부에 갈 수 있는 감염된 정수 시설 등도 있다. 기본적으로 전투 시스템은 웨이스트랜드보다는 엑스컴 시리즈, 재기드 얼라이언스 시리즈를 의식한 구조로 장애물 엄폐 시스템을 지원하며 잔탄 개념이 존재한다.
전작의 20년 후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전작의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작 플레이어 캐릭터의 디폴트 네임인 '스네이크 바르가스'는 현재 데저트 레인저를 이끌고 있으며, 전작의 동료 캐릭터인 '앤절라 데스',"쓰래셔"."헬레이저"[스포일러]도 등장한다.
베타 버전 플레이 영상(한국어).
3. 만들어지기 까지
1987년부터 2012년까지 25년간, 인터플레이의 창립자이자 웨이스트랜드 1의 프로듀서 브라이언 파고는 여러 차례 후속작 개발을 시도했다. 다음은 2012년 킥스타터로 후속작 제작을 확정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이다.3.1. 두 개의 후속작
1987년 1편 출시 이후 게임의 개발사 인터플레이와 퍼블리셔 EA는 각자 따로 후속작을 만들게 된다. 인터플레이는 게임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잘 팔려도 제대로 돈을 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직접 퍼블리셔가 되는 길을 생각하고 있었고, EA는 외부 개발사가 만든 게임들의 후속작을 내부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었다.웨이스트랜드 상표권은 EA가 가지고 있어 인터플레이는 "민타임"(Meantime)이라는 이름으로 후속작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전작과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지만 전작과 같은 세계에 전작의 엔진을 그대로 쓰고 전작의 개발자인 앨런 파블리쉬와 엘리자베스 단포스가 개발팀에 참여했다. 그런데 맵이 75% 정도 완성되었을 때 주요 멤버인 엘리자베스 단포스가 팀에서 빠졌다. 거기에 당시 애플 II가 사양세에 접어들고 있던 것도 겹쳐 브라이언 파고는 프로젝트 중지를 결정했다.
EA는 "파운틴 오브 드림즈"(Fountain of Dreams)라는 이름으로 후속작을 개발해 1990년 IBM PC로 출시했다. 이 게임은 인터플레이는 물론 1편의 개발자들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나온 게임 역시 실망스러워 팬들은 제대로 된 후속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2003년 (파고가 웨이스트랜드 2 권리를 확보할 무렵) EA는 이 게임이 웨이스트랜드의 후속작이 아니라고 정정했다.[2]
1992년, 인터플레이는 중단되었던 민타임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1편에서 스크립터였던 빌 듀건이 이끈 새로운 개발팀은 기존의 애플 II용 코드를 MS-DOS로 이식하고 그래픽을 EGA에 맞게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기존 코드가 오래된 탓에 이식에 상당한 난항이 있었던 데다, 당시 출시된 울티마 7의 진보한 그래픽을 본 빌 듀건은 민타임이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프로젝트 중지를 요청했다.
3.2. 폴아웃
1994년, 인터플레이 소속 프로그래머 팀 케인은 새로운 RPG의 개발에 착수했다. 기획 초기 케인은 이 게임을 공룡이 나오는 시간여행 SF물로 구상하기도 했지만, 브라이언 파고는 케인에게 웨이스트랜드의 정신을 이어받은 게임을 제안했다. 당시까지도 웨이스트랜드의 상표권은 EA가 가지고 있었고, 인터플레이는 경쟁 퍼블리셔로 성장한 상황이었으니 웨이스트랜드의 이름은 쓸 수 없었다.결국 유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한 정신적 후속작으로 가닥을 잡았고, 그렇게 탄생한 폴아웃이 1997년 출시되었다. 폴아웃은 세계 설정은 물론 캐릭터와 스토리, 퀘스트, 시스템까지 많은 부분을 웨이스트랜드에서 물려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폴아웃 항목이나 웨이스트랜드(게임) 항목을 참고하자.
그렇게 출시된 폴아웃은 좋은 평가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90년대 말 RPG 명가로 불리는 블랙 아일 스튜디오가 확립되며 후속작 폴아웃2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터플레이의 다른 부문에서 사업이 부진했고 주주들과 마찰을 빚던 창립자 브라이언 파고가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파고 이후의 인터플레이에서 개발중이던 폴아웃 3(프로젝트 반 뷰렌)는 인터플레이의 사정이 더 나빠지면서 중단되었고 결국 블랙 아일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폴아웃 시리즈는 엘더스크롤 시리즈로 유명한 베데스다에 인수되었고, 베데스다가 개발해서 2008년에 출시한 폴아웃 3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턴제 전투에 플레이어의 선택을 반영하는 내러티브를 중시했던 웨이스트랜드 및 클래식 폴아웃과 달리, 베데스다의 새로운 폴아웃은 전투가 FPS 형태[3]로 바뀐 데다 내러티브보다는 오픈 월드의 탐험에 더 무게를 둔 게임으로 방향을 뻗어갔다. 웨이스트랜드와 클래식 폴아웃이 향했던 길의 연장과 발전을 바랬던 팬들의 갈증은 더욱 커졌고, 이는 이후 킥스타터 성공에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3.3. 유배자 파고[4]
인터플레이에서 쫓겨난 파고는 인엑자일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다시 웨이스트랜드 후속작의 개발을 시도했다. 먼저 파고는 이름을 되찾았다. EA가 사용하지 않아 만료된 '웨이스트랜드' 상표권은 코나미가 유희왕 프랜차이즈를 위해 등록한 상태였고, 파고의 요청으로 2004년에 코나미가 상표권을 양보해 주었다.이름을 되찾은 파고는 후속작 개발에 투자해줄 퍼블리셔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엑스박스의 등장과 함께 북미 게임계의 중심은 PC에서 콘솔로 전환되고 있었다. 클래식 스타일의 RPG에 투자해줄 퍼블리셔는 없었고 파고는 전세계 곳곳의 퍼블리셔를 찾아다녔다.
인엑자일이 만든 PS2용 액션 RPG 바즈테일이 한국에 출시된 2005년에는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당시 여러 한국 게임 회사들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웹젠과는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소문이 기사로 나기까지 했다. 이런 행보가 웨이스트랜드 2에 투자해줄 회사를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 단지 MMO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007년, 브라이언 파고는 웨이스트랜드 2를 기대해 달라는 이야기를 흘리기 시작했지만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2008년 베데스다의 폴아웃 3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파고는 웨이스트랜드 2에 가능성이 있을까 기대하며 다시 퍼블리셔를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파고가 지향하는 스타일의 RPG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2010년 경에는 클래식 폴아웃 시리즈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제이슨 앤더슨이 인엑자일에 합류해 웨이스트랜드 2의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실제 제작에 들어갈 개발비를 확보하지 못했고 앤더슨은 2010년 말에 회사를 떠났다. (이후 레프트 4 데드를 개발했던 터틀 록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당시 진행된 작업은 현재 개발 중인 웨이스트랜드 2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2011년, 브라이언 파고는 중국에서 강연을 하며 이제 더이상 웨이스트랜드 2 같은 클래식 스타일의 RPG에 미래는 없다며 한탄했다. 파고는 후속편 개발을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3.4. 킥스타터
그러던 2012년 2월, 루카스아츠 출신 어드벤처 디자이너인 팀 셰퍼가 다시 한번 PC용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만들고 싶다며 킥스타터로 개발비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세간은 물론 셰퍼 본인의 예상(당초 목표액은 40만 달러.)을 뛰어넘는 340만 달러를 모금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파고 역시 이것을 지켜봤고, 웨이스트랜드 2를 바래왔던 팬들 역시 파고에게 킥스타터에 도전해보라고 종용했다. 파고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킥스타터를 준비하면서 웨이스트랜드 1편을 개발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같은 해 3월, 파고는 1편의 개발팀을 모아 1편처럼 클래식한 스타일의 후속편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킥스타터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팀 셰퍼 같은 성공은 특이 케이스라며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90만 달러를 목표로 했던 캠페인은 이틀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고 최종적으로 300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었다. 25년 동안 바래왔던 후속작 개발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마감일 전날 밤의 킥스타터 모금 마감 기념 파티(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개발자들과의 인터뷰를 겸하기도 했다.)에서 찍힌 사진.[5]
이 성공은 웨이스트랜드의 후속작을 바래왔던 팬들만이 아닌 클래식 폴아웃 스타일의 게임을 바랬던 팬들의 열망이 상당히 작용하기도 했다. 키워드 시스템 논쟁을 봐도 폴아웃을 생각하고 후원한 팬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웨이스트랜드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부활을 도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