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1:33:38

윌리엄 로스

성명 윌리엄 로스
William Ros
생몰년도 1370년 ~ 1414년 9월 1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로스 가문 영지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레스터셔 벨보아르
아버지 윌리엄 로스
어머니 베아트리체 스태퍼드
형제 존 로스
부인 마가렛 피츠앨런
자녀 , 토머스, 마가렛, 엘리자베스
직위 로스 남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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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헨리 4세의 재무장관으로서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원정을 단행한 왕을 지원했다.

2. 생애

1370년경 링콘셔, 노팅엄셔, 요크셔에 광범위한 영지를 보유한 로스 가문 영지에서 제4대 로스 남작 윌리엄 로스와 초대 스태퍼드 백작 랄프 드 스태퍼드의 딸인 베아트리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38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형 존 로스가 제5대 로스 남작이 되었지만, 1393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하고 귀국하던 중 파푸스 섬에서 자식을 두지 못한 채 병사했다. 이리하여 그가 제6대 로스 남작이 되었고, 가족의 영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상속을 받은 직후 기사 작위를 받았고, 리처드 2세의 추밀원 일원이 되었고, 1394년 1월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로스 남작의 직위를 확인받았다. 이후 초대 아룬델 남작 존 피츠앨런의 딸인 마가렛 피츠앨런과 결혼했다. 이로써 그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제11대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과 인척 관계를 맺었고, 지참금의 일부로 40마르크의 왕실 연금을 받았으며, 요크셔, 더비셔 및 워체스터셔의 영지 관리를 맡게 되었다. 여기에 1397년 아내가 멜트라버스 여남작이 되면서, 그의 재산은 더욱 불어났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리처드 2세가 자신의 정적인 아룬델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은 것을 보고 반감을 품었을 거라 추정한다. 실제로 윌리엄은 이후로 왕실 위원회에 선임되지 않았고, 자신이 소유한 카운티에서 어떠한 공직도 맡지 못했다.

1399년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리처드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윌리엄은 대부분의 북부 귀족들과 함께 볼링브로크의 헨리 편에 섰고,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리처드 2세는 강제로 물러나야 했다. 윌리엄은 1399년 6월 버클리 성에서 헨리와 리처드 2세와의 첫 만남에 참석했고, 9월 6일 런던 탑에서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대면할 때도 참여했다. 그해 10월 웨스트민스터 의회에 참석해 다른 영주들과 함께 폐위된 리처드 2세를 런던 탑으로 보내기로 결의했다. 이후 잉글랜드 국왕에 즉위한 헨리 4세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1399년 12월 왕실 의회에 합류했다.

1402년 재무장관에 선임된 뒤 헨리 4세를 위해 재정과 관련된 중요한 임무를 정기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헨리 4세는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웨일스에서 반란을 일으킨 오와인 글린두르 토벌, 각지에서 발발한 반란 진압을 위해 자금이 끊임없이 필요했고, 그는 국왕의 전권 대표로서 하원에서 추가 보조금을 구했다. 그는 1413년까지 거의 모든 의회에 참여했고, 왕에게 막대한 자금을 빌려줬다. 한편, 그는 군 복무도 수행했다. 1400년 20명의 맨앳암즈와 40명의 궁수와 함께 헨리 4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으며, 1402년 오와인 글린두르와 협상해, 오와인 글린두르의 사위이자 잉글랜드군의 포로였던 레지날드 그레이를 1만 파운드의 몸값을 받고 풀어줬다.

1402년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고, 2년 후 100마르크의 연금을 왕실로부터 받을 자격이 주어졌으며, 1405년 초대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의 반란에 맞서 싸우는 데 참여했고, 헨리 퍼시의 반란에 가담한 요크 대주교 리처드 르 스크루프에게 사형을 선고한 위원회에 참여했다. 이후 북부 카운티에서 순회 판사로 활동했으며, 최고 산림 관리인, 피커링 성주, 오드리 남작의 후계자가 미성년일 경우에 후견인으로서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 등 수익성 있는 직위를 받았다. 이렇듯 헨리 4세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그는 1413년 3월 20일 헨리 4세가 사망한 뒤 왕위에 오른 헨리 5세 치하에서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재무장관에서 물러났고, 1414년 11월 1일 레스터셔 벨보아르에서 사망한 뒤 벨보아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마가렛 피츠앨런(1372 ~ 1439): 초대 아룬델 남작 존 피츠앨런의 딸.
    • 존 로스(1397 ~ 1421): 제7대 로스 남작. 1421년 보제 전투에서 전사했다.
    • 토머스 로스(1406 ~ 1430): 제8대 로스 남작. 1430년 센 강 인근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 도중 말에서 떨어져 익사했다.
    • 마가렛 로스: 제5대 오들리 남작 제임스 투셰의 부인.
    • 엘리자베스 로스: 제6대 몰리 남작 로버트 몰리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