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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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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최악의 영국인 10명'을 선정. 다만 현직 정치인은 제외되었다.
1위2위3위4위5위
잭 더 리퍼 토머스 베켓 에아드릭 스트레오나 존왕 리처드 리치
6위7위8위9위10위
타이터스 오츠 윌리엄 오거스터스 휴 디스펜서 더 영거 토머스 애런들 오스왈드 모슬리
출처
같이 보기: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

<colbgcolor=#424242><colcolor=#ffffff>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왕자
Prince William, Duke of Cumberland
파일:mw01660.jpg
이름 윌리엄 오거스터스
(William Augustus)
출생 1721년 4월 26일
잉글랜드 런던 레스터 하우스
사망 1765년 10월 31일 (향년 44세)
잉글랜드 런던
장례식 1765년 11월 10일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아버지 조지 2세
어머니 안스바흐의 카롤리네
형제 프레더릭, 앤, 아멜리아, 캐롤라인, 조지 윌리엄, 메리, 루이자
서명
파일:윌리엄 어거스터스 서명.svg
1. 개요2. 작위3. 생애
3.1. 초기 경력3.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3.3. 7년 전쟁3.4. 이른 죽음
4.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자이자 컴벌랜드 공작.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작위

파일:Coat_of_Arms_of_William_Augustus,_Duke_of_Cumberland.svg.png
문장
  • 윌리엄 왕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William (1721년 4월 26일 ~ 1726년 7월 27일)
  • 컴벌랜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umberland (1726년 7월 27일 ~ 1765년 10월 31일)

3. 생애

3.1. 초기 경력

1721년 4월 26일 하노버 선제후 겸 영국 국왕 조지 2세안스바흐의 카롤리네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726년에는 컴벌랜드 공작에 올랐다. 그는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에 의해 고급 제독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1740년, 존 노리스 경의 지휘 아래 영국 함대에 가담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해군 생활에 진절머리를 냈고 진로를 육군으로 변경했다.

3.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2년 초, 어거스터스는 육군 경력을 시작해 12월에 소장이 되었고 1743년 6월 27일 아버지 조지 2세와 함께 데팅겐 전투에 참가해 영국군의 승리를 지켜봤지만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 전투 후, 그는 중장으로 진급했고 얼마 후 영국 육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1745년, 영국, 하노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플랑드르 전선으로 향했다. 그해 5월 11일, 그는 프랑스군 원수 모리스 드 삭스에게 포위된 투르네를 구원하려 했지만 퐁트누아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때 어거스터스는 친히 영국군 군단을 이끌고 프랑스군 중심을 공격했으나 모리스 드 삭스 원수의 노련한 지휘로 인해 실패했다. 그래도 어거스터스는 군대를 질서정연하게 철수시켜 영국군이 괴멸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다.

1745년 후반, 영국 북부를 침공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1]가 지휘하는 자코바이트 반란군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고 플랑드르 전선을 떠나 영국으로 귀환했다. 어거스터스가 이끄는 영국군이 진군해오자 반란군은 더비에서 퇴각했다. 이에 어거스터스는 추격에 나섰으나 클리프톤 무어에서 적의 매복에 걸린 선봉대가 패배했고, 그는 이 책임을 지고 런던으로 소환되었다.

1746년 1월 어거스터스 대신 지휘를 맡은 헨리 하울리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폴커크 무어에서 자코바이트 반란군에게 패배했다. 이후 영국군 사령관으로 복직된 어거스터스는 1월 30일 에딘버러에 도착한 뒤 스코틀랜드인들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을 철저하게 실시해 병사들을 단련시킨 뒤 에버딘을 향해 진군했다. 1746년 4월 8일, 에버딘에 도착한 그는 다시 인버네스를 향해 출발했고 4월 16일 컬로덴에서 적과 마주쳐 정면 대결을 벌였다. 이 컬로덴 전투에서 어거스터스가 이끄는 영국군은 자코바이트 반란군을 궤멸시켰고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여장을 한 뒤 영국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프랑스로 망명했다.[2] 이후 어거스터스는 3개월 동안 스코틀랜드에 남아서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총살형에 처했다. 그는 이 행동으로 "도살자 컴벌랜드"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1747년, 어거스터스는 연합군 사령부가 위치한 플랑드르로 돌아왔다. 7월 2일, 그는 라우펠트 전투에서 모리스 드 삭스 원수와 다시 한 번 격돌했으나 대패했다. 그후 1748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종식되었고, 어거스터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육군 대장에 복직했다.

3.3. 7년 전쟁

1757년 7년 전쟁이 발발한 후 하노버 궁정은 어거스터스에게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을 이끌어달라는 제의를 해왔다. 어거스터스는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프랑스군의 하노버 침공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7월 26일, 그는 하스텐벡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패했다. 이후 하노버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퇴각하던 그는 9월 8일 하노버 측이 프랑스군과 클로스터르제벤 협약을 체결해 전쟁에서 이탈하는 걸 받아들이고 군대를 해산시키기로 했다.

아들의 이같은 결정을 전해들은 조지 2세는 격노하며 아들을 즉각 경질하고 클로스터르제벤 협약의 무효를 주장했다. 그 후 로스바흐 전투에서 대패한 프랑스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자, 조지 2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에게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기기로 했다. 한편 어거스터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알현했다. 이때 조지 2세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를 망치고 스스로에게 망신을 준 내 아들이 여기 있다.

이후 어거스터스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윈저 궁의 개인 별장에 은거했다. 그러다가 1760년 10월 25일 조지 2세가 붕어한 뒤 조카 조지 3세가 즉위하면서 그는 정계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어거스터스는 조지 3세의 매우 영향력 있는 조언자가 되었고[3] 전장에 다시 뛰어들어 1761년 7월 16일 빌링하우젠 전투에서 영국군 지휘관을 맡았다.

3.4. 이른 죽음

전쟁이 끝난 후 뇌졸중으로 고통받다가 1765년 10월 31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향년 44세. 그는 생전에 결혼하지 않아서 자식이 없었고, 그의 모든 작위는 단절되었다.

4. 가족 관계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어거스터스
(Prince William Augustus,
Duke of Cumberland)
조지 2세
(George II)
조지 1세
(George I)
하노버의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Ernest Augustus, Elector of Hanover)
팔츠의 조피
(Sophia, Princess Palatine of the Rhine)
첼레의 공녀 조피 도로테아
(Princess Sophia Dorothea of Celle)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 빌헬름
(George William, Duke of Brunswick-Lüneburg)
엘레오노르 마리 드미에 돌브뢰즈
(Éléonore Marie Desmier d'Olbreuse)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공녀 카롤리네
(Princess Caroline of Brandenburg-Ansbach)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변경백 요한 프리드리히
(John Frederick, 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변경백 알베르트 2세
(Albert II, 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
외팅엔외팅엔의 공녀 조피 마르가레테
(Sophie Margarete of Oettingen-Oettingen)
작센아이제나흐의 공녀 엘레오노레 에르드무테
(Princess Eleonore Erdmuthe of Saxe-Eisenach)
작센아이제나흐 공작 요한 게오르크 1세
(John George I, Duke of Saxe-Eisenach)
자인비트겐슈타인 여공작 요한나
(Countess Johanna of Sayn-Wittgenstein)


[1] 제임스 2세의 손자.[2] 이때 스튜어트 왕자를 인솔하여 같이 프랑스로 망명한 닐 맥도널드의 아들이 바로 나폴레옹 시기 대육군의 제국원수였던 자크 마크도날이다. 마크도날 원수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스코틀랜드를 찾아 컬로든의 전장을 방문했고, 아버지의 고향인 헤브리디스 제도에서 가족들을 만난다.#[3] 조지 3세의 유일한 숙부였다. 어거스터스의 바로 윗 형은 태어난 지 1년만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