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
<colbgcolor=#34632a>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78년 ~ 2013년 | |
임관 | 육군3사관학교 (15기) |
최종 계급 | 준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제201특공여단장 |
주요 보직 |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제11군단 작전참모 제11군단 교육훈련참모 제50보병사단 제121보병연대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직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준장, 병과는 보병이다.2. 생애
1975년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이듬해 일등병으로 전역하였다[1]. 병으로 복무할 당시 제27보병사단[2] 제78보병연대에서 M60 탄약수 직책을 수행했다고 한다. 전역 후에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육군3사관학교에 지원했다고 한다. 1976년 9월 3사에 입교한 후 2년간의 생도 과정을 거쳐 1978년 9월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3. 학력
- 육군3사관학교 (15기 / 전문학사)
4. 주요 보직
- 이등병 1975년 입대
- 일병 1976년 전역
- 소위 1978년 9월 임관
- 소령
- 중령
- 제xx보병사단 제xx보병연대 제x대대장
- 국방부 정책보좌관
- 국방부 공보기획단 사이버홍보팀장
- 대령
- 준장 2006년 11월 진급[5]
- 전역 2013년 전역
5. 어록
- "전투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 물자보다 전투원의 정신이며, 이는 부하에 대한 절대적 사랑에서 시작된다."
- "신세대 장병들은 나약하지 않다. 나약하다는 선입견을 버려라."
- "장병들은 애정을 갖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명확하게 지시했을 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 "지휘관은 휴가를 가더라도 부대에 있는 부하들의 안전을[안위를] 생각해야 한다."
6. 여담
- 국군 전체로 봐도 상당히 보기 드문 사병 출신 장성이다.
- 장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과 강원도 영월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가끔씩 출현하던 무장공비를 소탕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평생을 군인으로 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병사로 복무하다가 전역한 후 3사에 지원해서 합격했다고 한다.
- 3사 출신으로서는 보기드물게 영관장교 시절 국방부에서 보직을 받은 사실이 있다[7].
- 연대장 시절 전입 신병부터 병장까지 계급별 간담회를 개최해 병사들의 고충을 들어주었다[8].
- 3사 15기 동기로는 공석철[9], 임성호 예) 소장, 조서환 KTF 前 부사장 등이 있다.
[1] 당시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일병 전역은 방위병이 아닌 이상 3대 독자였을 가능성이 높다.[2] 2022년 11월 해체. 해체 당시 마지막 사단장은 육사 46기 출신 민인기 예) 준장이다.[3] 연대장 재직 중 30년 근속휘장을 받았다. 출처[4] 전임자 서맹선, 후임자 김정웅[5] 출처[6] 후임자 구본흥[7] 당시 3사 출신들은 야전부대나 지휘통제실 등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3사 출신 중에서 육사 출신만 갈 수 있다는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보직을 수행한 사람은 2기수 선배인 권태오 예) 중장이 유일하다.[8] 애초에 유 장군 본인부터가 이등병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으니 당연하다.[9] 수석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