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3:26:40

유식학파

唯識學, योगाचार(Yogācāra)
1. 개요2. 상세

1. 개요

대승 불교에서 중관학파에 대응하는 학문.

2. 상세

이 학파를 세운 학자는 미륵이고, 유식학이 어느 정도 정리된 때는 4세기경 무착이 미륵의 학설을 이어받고부터 였다. 그 뒤 무착의 동생으로 알려진 세친(世親=Vasubandhu, 316-396)이 유식학을 체계화하였다. 유식학의 근본경전은 해심밀경, 십지경론, 유식삼십소 등이다. 세친 이후 유식학은 무상유식과 유상유식의 두 파로 나누어 졌다. 이 중 유상유식을 현장이 중국으로 전했으며 이 학설은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유식학은 4세기경 화엄경, 해심밀경, 능가경 등의 경전에 처음 나타났다. 유식학은 본래 순수한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이론중 몇 가지는 참선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유식학자들은 인간이 존재의 참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욕망이 생기고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식 대상인 객관 세계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의식을 정화해 객관세계를 바르게 인식하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유식학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중관학파처럼 현상세계의 실체를 부정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의식은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유식학은 중관학파의 공 사상이 현상을 염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인간은 현상 세계를 세 가지 형태로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보통 사람의 경우처럼 '언어'에 의한 잘못된 개념화의 형태를 통해 존재를 이해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과'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은 하나의 지시어일 뿐 사과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에 의존하여 사과를 이해한다.
둘째는, 어느 정도 존재에 대한 바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로서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경우로서 말이나 글 또는 이론에 의해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인간의 고통이나 문제점은 현상을 주관(나)과 객관(나 이외의 것)으로 구별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 의인식형태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기 때문에 정신적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유식학에 따르면 인간과 객관적 현상은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나타남일 뿐이다. 즉 인간과 외부 세계는 의식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식학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대상을 인식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식단계를 세가지로 나누었다.
먼저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ālaya-vijñāna)이다. 이 8식에는 과거의 모든 행위와 의식이 저장되어 있으며 이 식이 작용을 시작하면 다음 단계인 제7식이 된다고 한다.

7식은 말나식(末那識=manas-vijñāna)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나', '내 것'이란 생각이 일어나 잘못된 집착을 낳는다. 7식이 다시 작용하여 제6식이 된다. 6식은 우리의 모든 행동의 통로가 되는 눈, 귀, 코, 혀, 몸 등 5식과 5식의 명령자로서의 의식을 말한다. 이 5식과 의식이 객관적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

유식학은 참선을 통해 제8식인 아뢰야식을 정화시킴으로써 존재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고 그때 존재에 대한 집착의 결과로 생긴 욕망을 없앰으로써 정신적 자유인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요약하자면, 중관학파부처의 마음에 주로 초점을 두고 논한다면, 유식학파는 중생의 마음에 초점을 두면서 이를 치유해나갈 것을 추구한다.

유식학은 수행 중 발생하는 여러 현상을 설명해주는 장점이 있었기에 유가행파(Yogacara)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중관학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던 반면, 유식학은 대승불교 전반[1]에 크게 세력을 떨쳤다. 달마선은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았고, 선종에서 자주 언급하는 '여래장' 및 '진아'도 유식학파의 가르침을 그 출처로 삼는다. 여러 선사들은 세친의 《유식삼십송》을 자신들이 이해한 바에 따라 풀이하여 강설하곤 했다. 이는 근현대까지도 이어져, 성철, 청화 등을 비롯한 많은 선사들은 수행자가 참선 시 체험하는 경계를 유식학에 따라 해설했다.

유식과 관련해서 인도의 세친(世親)이 지은 것으로 당의 현장(玄奘)이 661년 7월에 옥화사(玉華寺)에서 번역한 유식이십론(Viśatikāvtti)이 있는데, 20수의 게송을 통하여 외도와 소승의 치우친 소견을 깨뜨리고 유식의 가르침을 설한 논이다. 이 책은 첫머리에서 『화엄경』 「십지품」의 말을 인용하여 삼계유식(三界唯識)이라는 근본 명제를 밝히고, 이어서 외도와 소승의 비판에 답함으로써 일체가 유식임을 논증한다. 또한 아(我)와 법(法)이 모두 무아(無我)라고 하는 대승의 가르침을 선양한다. 세친은 이 논서를 저술하여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을 확립하고 『유식삼십론송』(Triṃśikā)을 통하여 식전변설을 완성시킴으로써 유식 이론을 확고하게 하였다. 이것은 법상종(法相宗) 소의 11논 가운데 하나이며, 주석서로는 호법(護法=Dharmapala of Nalanda)의 『성유식보생론(成唯識寶生論)』 5권, 규기(窺基)의 『이십유식론술기(二十唯識論述記)』 2권 등이 있다. 이역본으로 『대승유식론(大乘唯識論)』 1권(진제 역), 『대승능가경유식론(大乘楞伽經唯識論)』 1권(보리류지 역)이 있다.

한국사의 유식학은 원측의 영향을 많이 받아 중관학의 방법론을 함께 받아들였고, 중생은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보는 일승을 주장하며, 범교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1] 법상종, 선불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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