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4:04

유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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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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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의 영의정
유자겸
파일:유자겸.jpg
<colbgcolor=#000><colcolor=#c4a3e8> 현지화명 일본판 | 켄(謙)
나이 불명
가족 배우자
유단아
1. 개요2. 특징3. 작중 행적4. 평가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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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웹툰 십이야의 등장인물.

2. 특징

  • 외모
    딸 유단아와 홍채 색은 같지만 머리 색이 훨씬 더 어둡다. 순하게 생긴 딸과 다르게 날렵하게 생겼다.
  • 아버지 유자겸
    아내와는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이고 아내를 많이 아꼈던 듯하나 아버지로서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일단 유자겸이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단아의 말로도 단아 걱정을 많이 해준다 하였다. 비록 단아에게 뺨을 때린다거나 단아의 소망은 무시한 채 왕후의 자리를 강요하는 행적 때문에 의심이 들 수는 있으나 당시의 교육 방식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처리하는 심리학적 지식 또한 부족했다. 단아가 밖을 돌아다니다가 다치고 올 때 전혀 꾸지람을 하지 않으며 무사하면 그걸로 되었다며 넘어가는 태도를 보였고, 사랑이 있는 결혼이 하고 싶다고 애원하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는데도 그저 침묵했다.[1] 단아가 오랜만에 자수를 놓고 이를 보여주자 자신이 원하는 조신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물론 좋아했지만 바느질 하나만큼은 도통 늘지 않았던 아내의 모습이 보여 흐뭇해했다. 엄마 이야기를 단아가 먼저 꺼내면 뺨을 때리기도 했을 정도로 거부하던 유자겸이 작중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아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했을 정도다. 단아가 정이 많은 성격인 것도 표현을 하지 않을 뿐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 걱정할 뿐이다.

    지금의 유자겸에게서는 상상하기 힘든데 아내와는 사랑해서 결혼했다. 상술했듯이 단아를 교육할 때 부인과 관련해서는 뺨을 때릴 정도로 상당히 거칠게 교육한다. 아내가 위독해져 생사를 오갈 때, 단아를 애타게 찾다가 숨을 거두었는데 아내가 눈을 감고 단아가 귀가를 하자 단아에게 뺨을 때렸다. 하지만 단아가 집을 비웠던 것은 어머니를 위해 약을 캐러 갔기 때문이었고, 이를 알고 나서는 미안함과 슬픔 때문인지 단아와 함께 울었다.
  • 슬픔을 부정하는 성격
    슬픔을 처리하는 것에 미숙하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가 쓰던 물건을 죄다 내다버리고 아내 이야기는 완전히 금기시해버리면서 자신의 감정 뿐 아니라 단아의 감정 마저 억누른다. 단아가 왕후 자리에 앉기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때,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단아가 애정 없이 결혼을 하는 것을 두고 보지는 않았을 거라며 반항하자 어머니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뺨을 때렸다. 이는 정말 좋지 못한 대처인데, 아이가 엄마와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추모의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해주는 것이 유자겸 본인에게도, 단아에게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매우 심하며, 작중에서도 사별 때문에 생긴 유자겸의 안좋은 감정은 전부 단아에게 향했다. 뿐만 아니라 늘 늦게 귀가하여 단아가 외롭게 자라야만 했다.

    아무리 슬픔을 직면하기 거부하는 성격이라한들,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유자겸은 단아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했으며, 단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한 것이 그 증거이다. 아내를 떠올릴 때 다시금 슬퍼지는 감정을 마주하길 극도로 싫어했고 그 결과 단아가 먼저 언급이라도 하면 아예 단아에게 손찌검을 했는데, 그 손찌검이 실제로는 스스로를 향해 하는 것이라는 가정이다.
  • 권력욕
    유자겸의 권력욕은 매우 비대한데, 유자겸은 단아가 왕후가 되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듯 말한 적이 있다. 권력욕의 이면에 원초아의 위협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 작중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으며, 암시하는 단서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짐작을 해보아야한다.

    우선 단아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 유자겸이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단아를 통해 해소하는 것일 수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아내가 죽고난 시점부터 귀가가 늦어지고 진휼왕이 때맞춰 붕어하자 윤연리와 손을 잡고 정권을 교체했다. 그리고 이때 윤연리의 편에 붙으면서 단아를 왕후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단아를 왕후로 만들고, 그렇게 왕후가 된 단아를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까지 지키면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해소할 수 있다. 더욱이 아내 대신 단아라도 못 다 해준 최고의 대우를 누리게 할 수 있다.

    물론 그저 단순히 자신이 왕족이 아니기에 외척으로서 실권을 누리고 왕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단아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하기 위해 단아를 세뇌하려 했을 수 있다. 선우서인 구금 후 선우서인이 왕좌를 노리고 반역을 주도했다는 소문을 낸 것을 유심히 생각해볼 만 하다. 왜냐하면 10년 전 본인이 저지른 행동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본인이 왕좌에 오르지는 않았고 진원왕을 옹립하고 10년 뒤 단아를 왕후로 만들려했다는 것이다. 왕이 되고 싶은 것은 본인의 진짜 욕망일 것이다. 허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 단아를 야망 달성과 대리 만족 수단으로 이용하여 최고의 권력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진짜 욕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욕망을 선우서인에게 씌우고 사람들이 그를 손가락질하게 만들어 진짜 욕망을 억제하려고 그런 소문을 냈을 가능성도 역시 높다.
  • 가치관
    의외로 천한 신분이라도 필요하다면 적재적소에 쓸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무려 기생 신분의 나비에게 단아의 예법 선생이 되어달라며 유향루를 찾아간다. 시, 서, 화가 두루 뛰어나고 외국에서도 찾아올 정도라면 기생 신분이라도 적합한 인재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붉은 달'을 잡기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아 귀천을 아예 따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단아 혹은 집안을 위해 천민이라도 등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일부 파격이 있을 뿐, 뼛속까지 귀족이다.
  • 능력
    머리가 좋다. 연판장[2]을 일부러 도둑맞도록 유도하고 국혼이란 말을 대비가 먼저 꺼내게하는[3] 치밀함을 보인다. 진전 앞에 잠깐 서있던 선우서인을 보고 반란군 측이라는 의심을 가장 먼저 하기도 하고, 왕자 독살 사건의 배후에 황세형이[4]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리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과한 권력욕 때문에 처세술에서는 안일했고 왕후의 자리를 극도로 탐낸 나머지 대비에게 독을 쓴다. 그것이 그동안 유자겸이 만들어온 적에 의해[5] 발각되면서 최후를 맞는다.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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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딸 단아와 적의 말대로 욕심히 과한 사람. 욕심이 과해서 명을 재촉했고 딸 마저 고통스럽게 한 나쁜 아버지이다.

왕과 맞먹는 권력을 탐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적당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정도였으면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 선우서인에게 붙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다음 왕의 왕후 자리를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자겸의 권력욕은 단아 앞에서마저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전부 자신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자식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지 못한다는 수치심을 권력욕이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라는 의미이다.

적와정변을 일으킨 전적 때문에 반란군에게 제거대상 1순위였다 하더라도 딸 단아 덕분에 진원왕이 유배를 보내는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만일 유자겸이 윤연리를 독으로 쓰러뜨리지 않아서[6] 단아가 진원왕에게 부탁했던대로 관직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유배를 갔다면 역으로 반란군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었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아 또한 진원왕의 곁은 갖지 못하더라도 단아를 누구보다 아껴주는 홍에게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었다. 당연히 단아가 기억을 잃는 일도 없다. 더 희망찬 상황을 가정한다면 홍은 대군의 신분을 돌려받고 단아는 부부인의 신분으로 셋이서 잘 살 수 있었으며 단아와 홍이 서로가 추억 속의 인연임을 알아보는 것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차후 즉위한 왕은 부모의 죄로 자식을 바라보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아가 비록 죄인의 딸로 유배를 가있다한들 대군과의 혼인을 윤허 못할 이유가 없다.

단아가 누명을 쓴 것은 유자겸의 잘못이 아니지만 고문까지 받은 데에는 유자겸의 잘못이 명백했다. 진원왕이 단아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단아에게 가혹한 형을 내린 목적 중 하나는 유자겸이 스스로 자백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유자겸이 현빈의 폐출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그저 구두로 신문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고문을 명한 진원왕이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7] 유자겸의 욕심이 없었다면 딸의 다리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억울함을 호소하러 진원왕을 찾아갔을때까지는 기회는 있었다. 유자겸은 분명히 진원왕이 단아를 이용해 자신을 파직하겠다는 의도를 간파했다. 그때라도 관직을 포기했다면 유자겸은 지은 죄에 비해 안온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으나 본인의 욕심이 너무도 과해 그럴 기회도 없애버렸다.

5. 기타

  •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고려시대 경원 이씨로 유명한 문벌귀족 이자겸의 이름에서 따온 듯 하다. 실제 이자겸도 딸들을 왕들과 결혼시켜 오랫동안 외척으로 실권을 누렸다.


[1] 때린 이유는 유자겸이 폭탄발언에도 침묵하고 의견을 묵살하자 단아가 끝내 아내를 언급했기 때문이었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2] 적와정변 당시 윤연리, 유자겸과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지장이 쓰여있는 명부.[3] 우리가 여전히 한 패라는 증거를 보여주어야한다고 빙빙 돌려서 말한다.[4] 왕은 아들(현빈 소생)이 죽었고 유자겸은 딸이 누명을 써 입지가 위태로워진데다 왕이 이 일로 유자겸을 축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유자겸 하나 없애자고 아들을 죽이지는 않을테니 둘다 손해를 본 셈인데 중전의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황세형은 아무런 손해가 없었기 때문.[5] 반란군. 나비가 단아의 죄를 뒤집어써주겠다고 했고 그 대가로 대비전의 궁인들을 반란군으로 채워달라고 했다. 유자겸은 당시에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대비의 상태를 호전시켜 유자겸의 여죄를 드러내고 진원왕이 유자겸을 처단하게 만들 목적이었다.[6] 황세련이 왕자를 독살하려는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었을 수 있다. 처소 곳곳에 사특한 물건과 부적을 놓았고 단아의 텃밭에 독초를 심기까지 했으니 간택되었다하더라도 현빈이 낳은 왕자를 불안하게 생각하여 시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7] 그 스스로도 죄 없는 단아를 이용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긴 했다. 도중에 진범이 나타났을 때 오히려 유자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한 것도 진원왕의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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