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7 21:41:43

유장(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유장(삼국지)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소설 시작 시점 당시의 익주목.[1] 선대 유언이 조직한 동주병을 이용해 익주를 통치하고 있다.[2] 그러나 당시에도 무능하기로 정평이 난지라 동주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유비를 불러들여 장로의 상대를 맡긴 것도 휘하 정예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탓이 컸다. 주인공 곽선호는 아예 유장을 동주병이 자신들이 가장 이용하기 편한 숙주라서 선택받았을 뿐인 꼭두각시라고 디스하기까지 했다.

유비가 배신할 것처럼 백수관만 점령하고는 다시 반전해 한중으로 출병하자 양회와 고패만 풀어주고 아직 백수관을 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심한 채 유비를 방치해버린다. 결국 유비가 한중을 안정화시키고 서량조차 마초를 통해 간접지배에 성공한 이후 융중대의 성립을 위해 자신과 함께 출병하거나, 거절할 경우 공격을 계획하게 된다.
야심이 없는 건 아니라서 더 골치아픈 인물인데, 유비가 한중을 점령하자 이제 장로가 사라졌으니 유비는 형주로 돌아가도 된다면서 은근슬쩍 한중을 차지하려 하지만 유비는 마초와 조조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걸 명분으로 한중을 점거 중이며 대신 유장이 보내준 군사들을 돌려보내며 유장을 달래준다. 이후 백제성에 동주병을 주둔시켜 유비의 배반을 예방하자는 황권의 제안도 거절해버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조조를 치려 한다는 말만 듣고 관우, 장비의 형주군 증원도 그냥 통과시켜 버린다. 급해진 황권이 유비가 상용에 묶여 있는 사이 모든 전력을 부성으로 보내 방어선을 굳히고 유사시 요격할 것을 간언하나 장송의 흔들기에 최종적으로 거부, 성도 주변 관문만 지키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선회해 버린다. 이엄과 익주 호족 등의 배신, 유비군의 쾌진격으로 연패해 성도 인근만 남은 상황에 수비전으로 시간을 벌기로 결정한다.
관우, 장비가 기병 1,500기를 이끌고 성도 인근을 헤집자 지레 겁을 먹고, 대군을 보내 영격하는 대신 1만명만 내보내 패전을 자초한다.[3] 이후 동오가 저지른 임상대치로 인해 활로가 열리나 했지만 그 3개월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결국 유비가 돌아오면서 익주의 상실이 기정사실화되자 즉각 항복한다.[4] 이후 원 역사처럼 진위장군의 직함으로 불리게 되며 형주 공안으로 보내졌다.

유비는 비록 명분을 잘 갖추긴 했지만 자신이 유장을 배신한 건 맞다고 여겨 미안해하고 있으며 후일 조조를 격파하고 촉한이 안정되면 꼭 좋은 직위를 내려줘야겠다고 다짐한다.

3. 기타

본작에서 가장 반전 이미지를 보여준 인물인데, 본래 삼국지 독자들도 유장이 무능했다는 것까진 알고 있어도, 동주병과의 유착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동주병의 폐해와 유장의 우유부단함이 강조되어 사람은 선했다는 편견이 거의 깨져버렸다. 작중의 동주병은 성도 주변에 있는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는 것과 상관 없는 과업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철저하게 도외시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말단 군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황권, 장임 등의 숙장들과 경쟁하는 유괴, 냉포, 부금, 상존 등의 지휘관들도 그런 면모를 보이며 유비가 착실하게 입촉을 준비하는 게 보이는데도 성도에서 멀리 떨어져 출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장 황권이 유비를 견제하기 위해 주력군을 백제성으로 보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장송에 의해 퍼지자 누구보다 반발한게 동주병들이었고 결국 황권이 좌절하게 만든다.

장로와 더불어 유비가 원역사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도박을 걸 수 있게 만든 인물인데, 유비가 원역사의 유장의 행보와 동주병의 폐해를 알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전선 형성을 시도할 수 있었다.[5]


[1] 유장의 선대인 유언이 자사를 목으로 바꿀것을 영제에게 건의하고 익주목으로 임명받았던 것을 계승한 것이다.[2] 이 동주병은 유언이 익주에 몰려든 난민들을 이용해 만든 정병으로 타 군벌들의 정병에 지지않는 강병이었다고 한다. 수도 최소 3만~5만에 달해 누구라도 얕보기 어려운 전력이었다. 원역사에선 이 동주병들이 유비를 막아서느라 유비 옆에 방통, 법정 같은 우수한 참모가 있었고 유장의 세력을 알음알음 사전에 강탈했음에도 연 단위로 고전했다.[3] 동주병이 전원 보병이고 높은 사기와 별개로 천단위 정예 기병과 싸워본 경험은 없다는 걸 감안하면 성도에 남은 병력 3만을 전부 내보내 영격하고, 낙성 방면으로 합류시키게 상책이었다. 낙성이 뚫리면 성도 인근의 경작지들이 다 유비군에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 밥도 없이 성도성만 쥐고 있는 꼴인데 그러면 패배가 확정이기 때문이다.[4] 이걸 본 장송은 자신이 없었어도 유장은 알아서 망했을 거라며 어이없어한다.[5] 소설상의 유비가 시도한 형남-한중-서량 전선은 익주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데 형남에서 한중으로 건너가려면 익주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 만일 유장이 백제성에 단 5천 병력만 배치했으면 한중의 유비는 아무것도 못하고 유장에게 매달려야 하는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