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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디서 역적 모의들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 이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 절이 싫으면 좋게 고쳐야지요! 고쳐보려고 생각치도 않고 떠나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1. 개요
왕이 곧 나라다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등장인물. 임동진[1]이 대조영 이후 근 10년 만에 연기계로 복귀해서 맡았다. 그 동안은 개신교 목사 생활을 했었다.
서인의 핵심 인물로 임진왜란 이후 서인의 실질적 영수.[2]
배우 임동진씨가 보여주는 내공있는 중후한 연기와 포스 때문에 방영 후, 윤두수가 만고의 충신으로 보인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런평은 인터넷 행해지는 윤두수 비판이 대체로 영웅사관 내지 사건중심사관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윤두수는 유능했으며[3] 임동진이 표현한 것 처럼 꼬장꼬장하고 강직한 면이 적지 않았다.
2. 작중 행적
1화부터 '평안도 관찰사'로 등장하는데, 선조에게 상황을 보고[4]하다가 통신사 파견을 논의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호통을 치면서 등장해 "왜와 통교하는 것은 조선의 국격을 금수의 나라로 떨어트리는 것"이라면서 통신사 파견을 극구 반대했다. 그리고 왜와 통교하는 사실이 알려지면 명나라가 조선을 어찌 보겠냐며 다른 대신들에게 연이어 호통을 쳤다. 이후 기축옥사로 인해 동인이 대거 밀려나고 대사헌으로 조정에 복귀했으며, 류성룡이 이순신에게 뇌물을 받고 전라좌수사로 천거했다는 소문을 듣고 대사헌의 직권을 이용해 류성룡의 자택을 조사했지만, 명색이 정승 집에 값진 물건은 하나도 없고 이순신의 어머니가 보낸 누비옷과 언문 서찰만 발견되자 오히려 감복한다.[5] 그리고 이순신의 예전 상관이었던 이일을 추궁해 이순신이 청렴하고 능력있는 무관임이 확인이 되자 선조 앞에서 전라좌수사 임명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직권을 이용한 일로 인해 호조판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파직된 후로 오랫동안 등장이 없었으나 16화에서 어영대장으로 복귀하여 어가의 호종을 지시받는다. 그러나 선조가 류성룡을 몽진 시간 벌이용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을 눈치채고 류성룡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선조를 달래기도 한다. 17화에서는 선조의 명에 따라 파천 준비를 하며 양위를 할 거라는 선조의 말에 당황하며 이를 거두어 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이산해에게 전란의 책임을 물어 개경에서 유배 보낼 것 역시 청하지만 선조는 파직으로 끝을 낸다.
19화에서는 임진강 전투 패배 소식을 접하고 평양을 떠나려는 선조를 말리며 몽진을 지지한 정철과 대립한다. 이때 정철을 바라보며 남송의 충신 문천상의 시를 읊는다. 20화에서는 명에 지원을 요청하자는 류성룡의 의견에 반대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요동 병사들이 들어오면 백성들에게 끼칠 민폐가 어마어마할 것이며 원군을 빌미로 한 내정 간섭과 조공 요구도 심해지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끝까지 반대하는 윤두수를 괘씸하게 여긴 선조는 평양을 떠나며 윤두수에게 평양 방어 책임을 맡겨 남겨놓는다. 그렇게 일이 다 결정되었지만 윤두수 개인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명에 대한 구원 요청을 부당하게 여긴다. 류성룡이 임세록을 만나러 떠난 사이 기습군을 꾸려 대동강 건너 왜군에게 야습을 걸어 성공시켰으나 퇴각 과정에서 꼬리를 밟히는 바람에 왕성탄을 통해 도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적에게 알려져 평양성이 함락된다.
21화에서 평양 함락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청한 후 조정에 합류한다. 그리고 선조가 요동행을 결정하자 놀라며 류성룡, 정철, 이원익, 김응남 등과 함께 반대했고 이때부터 선조의 모습에 실망하여 그의 행동에 반대한다.[6]
28화에서는 조정 대신들의 여론이 선위 쪽으로 기울었지만, 자신은 빠지겠다고 말한다. 사실 윤두수도 세자가 선위를 받아 모든 권한을 가지고 이번 전쟁을 총지휘하는 것 자체는 맞다 생각했지만, 어렸을때부터 중신들에게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했던 선조를 차마 버릴 수는 없어 선위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국왕의 즉위하는 날 자신도 정계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다.
다른 당파지만 류성룡에 대해서는 선조가 안 좋은 소리를 해도 변호하는 등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39화 후반부터 남해안의 왜군을 지금이라도 당장 공격하자고 하면서 '일단 힘을 기르는 게 먼저다.'라는 류성룡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다. 40화에서 드디어 슬슬 꼰대끼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군사에 있으면서 이순신이 적진이 가까워 비울 수가 없으니 한산도에서 독자적으로 무과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나 전주에 있는 무군사로 오라는 명을 거절하는 것에 대해 적과 대치중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이항복, 정탁과는 달리 이순신을 강력히 비판하며 대신 수군을 지휘할 사람이 없겠냐며 처벌을 주장한다.
44화에서는 북인 세력인 류조인과 이이첨이 윤두수를 찾아가 이몽학의 난에 류성룡 이하 남인들이 연루되었다는 진술서를 보여주자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말해 진술서를 넘겨받은 뒤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선조에게 주청
이 장면에서 윤두수가 돋보이는 점이 선조를 설득하는데 있어 그 어떤 조정 대신들보다 나은 인물이란 점이다. 류성룡을 비롯한 여타 신하들이 선조 입장을 살피지 않고 명분과 여론을 앞세워 선조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모습을[8] 자주 보이는 반면, 윤두수는 선조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진심으로 간곡히 설득하는데 그 의심많은 선조도 온전히 자기사람이라 믿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서 그의 말이라면 저의를 의심하는 일 없이 숙고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건 달리 말하면 선조가 강경하게 나오고 이 사람이 뜻을 같이하면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도 된다.
47화에서는 고니시의 간계로 인하여 출정을 하지 않은 이순신이 서울로 압송되자 당장 이순신을 참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탁과 류성룡의 간곡한 청으로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지 않고 백의종군을 보낸 후, 원균이 죽자 그를 다시 통제사로 복귀시키면서 윤두수도 이후로 이순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48화에서 이산해가 복귀하면서 또다시 당쟁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 예견했고 최종화에서는 이산해와 함께 고향 안동으로 떠나는 류성룡을 멀찌감치 배웅했다.
[1] 왕과 비에서 수양대군으로, 대조영에서는 양만춘, 왕의 여자에서는 선조로 나왔다.[2] 정철(1593 卒), 성혼(1598 卒)에 이어 윤두수까지 세상을 떠나고(1601 卒) 당파를 이끌 중량감있는 인사가 사라진 서인은 인조반정때까지 약세를 면치못했다.[3] 군사적으로 전략안이 떨어져서 장문포 해전같은 무리수를 뒀는데 이런 부분이 능력 전반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져 그간 평가가 박했으며 거기에 불멸의 이순신에서 노회하고 교활한 신하로 폄하된 영향도 있다.[4] 당시 평안도에 역질이 발발했었다. 후술되지만, 광해군이 도와주다가 오히려 걸릴 뻔한 적도 있었다.[5]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연기와 이후 소문을 퍼뜨려 류성룡을 모함한 포도대장 이일을 개인적으로 심문할 때 죄를 묻지 않을테니 바른대로 고하라며 내지르는 일갈이 일품이다.[6] 해당 장면에서 '필부의 행동' 운운한 대사는 류성룡이 가로챈 걸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대신들 중에서 누가 한 말인지 나오지 않아서 류성룡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윤두수가 선조에게 '필부'라고 발언한 것은 이후 선조의 양위 사태에 한말이다. #[7] 류성룡은 연루된 자 모두를 숙청하려는 선조에게 가서 자신과 병판(이덕형)도 연루되었으니 죽이십시요하면서 배째라 모드로 나가려던 중이었다.[8] 류성룡은 한술 더 떠 선조 머리 위에서 대놓고 권위를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