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ece5b6> 회계군수(會稽郡守) 殷通 은통 | |
최종직위 | <colbgcolor=#fff,#000>회계군수(會稽郡守) |
성씨 | 은(殷) |
명 | 통(通) |
생몰연도 | ? ~ 기원전 209년 9월 |
사망지 | 회계(會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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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일 진나라 말기의 회계군수. 고사성어인 선발제인(先發制人)혹은 선즉제인(先則制人)이라는 고사의 유래와 관련된 인물이다.2. 생애
진나라를 최초로 통일한 시황제가 죽고, 이세황제가 즉위하면서 진나라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결국 기원전 209년에 진승이 들고 일어나 중원은 다시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 당시 은통은 회계군수의 위치에 있었는데,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킨 지 두 달이 지난 9월에 은통 역시 역심을 품게 된다. 은통은 우선 근방에서 명성이 높은 항량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이고자 '자신이 듣건대 먼저 선수를 치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뒤지면 제압당하게 된다(先則制人 後則爲人所制)'[1]회유했다. 항연이 전국시대의 초나라 최후의 명장으로 당대에 유명했기 때문에 항씨 가문이란 이름값만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초나라 재건의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량은 명성, 그릇, 야망으로나 실력으로나 은통 휘하에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제안을 받은 항량은 차라리 자신이 구심점이 되어 반란 및 초나라 재건을 도모하고자 했다. 항량은 방금 은통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은통에게 실천하게 되는데, 항량과 은통이 회담을 하는 도중 항량의 조카 항우가 갑자기 난입해서 은통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항량과 항우의 이러한 돌발 행동에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은통의 잔당들이 저항했는데, 항우가 백여 명을 베어 죽여 은통의 남은 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킨다. 항우의 압도적인 무력과 항량의 명성 덕분에 항량은 직접 회계의 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3. 평가
초한쟁패기 말에 흔히 보였던 야심적인 인물 들 중 하나다. 훗날 똑같이 난세에 회계태수를 맡았으나 공무원에 불과했던 왕랑[2]과 달리, 자신이 직접 군웅이 되려던 야망이 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정도 되는 인물이 하필이면 자신의 야망을 위해 끌어들인 자가 호랑이 같은 인물들이다 보니, 거병하기도 전에 재물이 되었을 뿐이다. 거병했어도 금세 스러져갈 군웅에 불과했을 것이다.[1] 즉, 남들보다 선수쳐서 거병하자는 의미이다.[2] 왕랑은 게임에서는 군벌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한나라의 왕실의 관리인 공무원에 가까웠다. 손책이 불법으로 세력확장을 시도하니 막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