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강 李强 | Lee Kang |
출생 | 1992년 9월 10일 ([age(1992-09-1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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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1992~2005)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2005~현재)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지도자 인터넷 방송인 |
포지션 | 미드필더 |
신체 | 177cm / 68kg |
유스 클럽 | 도봉중학교 재현고등학교 → 1.FC 뉘른베르크 U-16 (2008~2009 / 유학) |
프로 입단 | 2011년 미토 홀리호크 |
소속 클럽 | 미토 홀리호크 (2011) 목포시청 축구단 (2011) FC 마치다 젤비아 (2012) |
국가대표 | 20경기 13골 (대한민국 U-17 / 2007~2009)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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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1] 출신 現 유소년 축구 지도자이자 현 인터넷 방송 BJ. 2015년 KBS2에서 방영되었던 청춘 FC의 출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2. 축구인 경력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2009년 김학찬, 김대광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유럽 축구 유학 프로젝트 6기생으로 선발되어 독일 1.FC 뉘른베르크 유스팀에 입단하였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왔다.[2]재현고등학교 재학 시절 백운기 전국대회와 고교 주말 리그 서울 북부권에서 득점왕을 석권하며 2009년 U-17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김진수, 이종호, 손흥민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당시 손흥민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3]
U-17 국가대표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J리그에 있는 미토 홀리호크에 입단했지만 도호쿠 대지진으로 팀 숙소가 무너지는 악재가 벌어지면서 3개월 만에 일본 생활을 청산했다. 일본을 떠난 이후 K리그 드래프트가 열릴 때까지 몸을 만들고 실전 감각을 익힐 겸 한국 내셔널리그 목포시청 축구단에 잠깐 입단했지만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다시 일본의 FC 마치다 젤비아에 입단하여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감바 오사카와의 연습경기에서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불운을 겪었고, 4개월간의 재활 이후 첫 복귀경기에서 같은 부위가 같은 상황에서 다시 끊어졌다. 이후 일본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재활을 마친 후 성남 FC 입단 테스트도 받았지만 2차 전지훈련 도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그 자리에서 은퇴했다. 이 때 이강은 보유하고 있던 축구용품들을 다 태워버렸다고 한다.
은퇴 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안정환이 이강을 직접 찾아가 청춘 FC 테스트 참가 여부를 타진하기도 했다.[4] 이후 예비 엔트리에 있다가 앞서 선발된 선수들이 벨기에 전지훈련에서 국내로 복귀한 이후 청춘 FC에 합류했으며, 화성 FC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청춘 FC 종방 이후로는 축구 선수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용인에서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아프리카 개인방송도 시작했다.
3. 개인 방송
LK 아트사커를 운영하는 동시에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나름 축구쪽에서는 네임드 BJ이며 감스트, 철구 등과 친분이 있다. 아프리카 풋살 대회에도 참여를 해 우승을 한 적도 있으며, 아프리카 풋살팀 감독을 맡아 우승시키기도 했다.논란이 있었던 만큼 시끄러운 적이 많았지만 비난을 당한 이후로는 자제하는 편. 또한 본인이 비운의 유망주로 선수를 은퇴해서 그런지 유망주들을 찾는 콘텐츠를 하기 시작했다.
4. 논란
논란이 되는 항목들을 보면 어째 성골 FC 코리아(...)라 해도 될 정도로만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4.1.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맹목적 증오
방송에선 무슨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같은 비운의 천재로 포장되는데, 엄밀히 말해 이강은 청소년 시기 유망했으나 성인 무대에서 부상과 부진으로 성장하지 못한, 수많은 유망주 중 한 명일 뿐이다. 이산, 유태풍[5], 정인성[6], 이호진, 조원광, 김우홍, 장결희이강이 실패한 건 성인 무대에 걸맞은 기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잦은 부상이 발생했기 때문인데, 이건 축협 탓이 아니다. 이강 주장대로 뉘른베르크 시절이 기량 향상에 도움 안된 마이너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시절이 축구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되었으나 국내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대표팀까지 올라간 지동원의 예를 볼 때, 뉘른베르크 시절이 이강의 기량향상을 빼앗고 잦은 부상을 불러와 축구 인생을 망친 근본적 원인인지는 의문이다. 축구선수는 유소년 때, 유소년에서 프로로 진출할 때, 그리고 프로선수로서의 일생이 경쟁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계속 추려진다. 부상 이전에 이미 드래프트에서 지명 못 받을 기량이었던 이강은 그 치열한 경쟁의 초입에서 도태된 수많은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다. 축구협회가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책임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강은 자기 커리어가 꼬인 게 대한축구협회 때문이라는 억하심정이 굉장히 심하다. 겉치레로 자기 책임이 제일 크다고 말은 하지만, 개인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부 축구협회 욕이고 당신도 축구 협회 덕 본 케이스 아니냐는 의견에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4.2. 유럽파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
스스로가 유럽 물을 좀 먹었고, K리그에선 데뷔도 못해서인지 유럽파, 특히 자신처럼 유스 때부터 유럽에서 뛴 선수들에게 지극히 우호적이다. 이러한 성향들이 인터넷 방송에선 굉장히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과 억울하게 비판받는 부분을 엄밀히 구분하지도 않으며, 유럽파에겐 맹목적으로 우호적이고, K리그나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폄하한다. 정작 본인은 유럽에서 실패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경솔한 태도다.4.3. K리그 비하
"K리그 챌린지 자꾸 응원하려고 해도 그게 안 된다. 오늘 이랜드 vs 대전 경기를 보는데...하...이게 진짜 ㅎㅎㅎ 와...씨...할 말이 없다...대학생들이 더 수준이 높다. 더 단합이 잘된 것 같다 대학생들이...이건 아무리 협회에서 노력해도 선수들이 그만큼 못해주는 것 같다. 이게 팩트다"
2017년 6월 26일 서울 이랜드 FC와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경기를 본후 자신의 SNS에 K리그2[11]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게시글을 올려서 논란이 일었고, 곧바로 게시물을 지우고 사죄글을 올렸다.
전직 축구 선수이며 지금도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이강의 입장을 고려하면 경솔한 발언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비판을 한 것이 아니라 축구 모르는 키보드 워리어들도 할 수 있는 얄팍한 비난을 했다. 무엇보다 이강은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제자들 중에 K리그2 문을 두드리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부적절했다. 지도자 입장에 있는 사람이 프로리그 관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줘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해당 발언을 했던 시점의 K리그 챌린지에는 이강과 청춘 F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남하늘이 고양 자이크로 FC 소속으로 뛰고 있었다. 즉 이는 옛 동료가 속해 있는 리그를 비하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강 본인이 K리그에서도 2013년 성남 FC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선수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한다는 것에서 자격지심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팬들도 굉장히 많다.
4.4. 김학범호 비하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김학범호에서 대해 포털의 FC 코리아의 여론에 편승해서 황의조는 물론이고 그 외에 뽑힌 선수들도 학연, 지연, 인맥 축구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중이다. 이강인, 백승호 등 일부 유럽파만 언급하며 인맥이라고 주장하는 선수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폄하하고, 그 대안도 제시 못하는 축구인 출신답지 못한 수준의 영상이 많았다.감스트같은 방송인이 그렇게 주장하면 비전문가라서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강은 아무리 연령별 대표팀이라지만 엄연히 태극마크까지 달아봤던 축구인이다.
이때문에 당시 정말 진짜인 것처럼 믿고 선동당한 네티즌들이 상당수 많았다. 정작 그 논란의 중심이었던 황의조는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결정적인 활약들을 하며 금메달 획득에 크게 공헌했음을 생각하면 이강의 발언은 그야말로 기가 찼던 상황이었다.
[1]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2] 이때 기수로 총 6명이 뽑혀서 3명이 함부르크, 3명이 뉘른베르크로 보내졌다. 함부르크에 보내진 김민혁(순천고), 손흥민(동북고), 김종필(장훈고) 3명은 손흥민과 김민혁 2명이 바로 성공적으로 프로에 정착했고 김종필도 늦게나마 프로에서 자리잡은 반면, 뉘른베르크 출신들은 모두 프로무대에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김학찬은 2014년 울산에 입단했으나 1경기도 못뛴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으로 옮겼고, 김대광은 울산미포조선을 거쳐 K2리그 부천, 서울E를 거쳤으나 몇경기 못뛰고 창원시청으로 내려갔다. 레딩과 왓포드로 보내졌던 5기생(지동원, 남태희, 김원식, 민상기, 이용재, 백성동)이 각기 등락은 있으되 올림픽 메달리스트 3명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1명을 배출했고 최소한 프로무대 연착륙에는 다들 성공해서 이름 석자 제대로 알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후에 이강이 개인방송에서 밝히기를 전 기수였던 5기생들은 축구협회와 구단, 선수들 사이 중재를 맡은 담당자가 일을 굉장히 잘했던거에 반면 자신들 케어 담당 코치는 일을 전혀 안 했다고 주장했다.[3] 손흥민도 청춘 FC에서 이강을 두고 자신 이상의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고 고평가했다. 물론 불과 1년 후 손흥민이 함부르크 SV 1군에서 데뷔했던 걸 고려하면 립서비스일 확률도 있었지만..[4] 2017년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자신과 자신의 축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승낙하였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5] 2002년 당시 축구 신동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축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연예계 노망주께서 출연했던 청춘 FC에서도 얼굴을 내밀며 근황을 알리기도.[6] 이승우에 앞서 바르샤 유스로 화제가 되었던 유망주로, 당시 메시랑 같은 방을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나름 유명했다. 후에 인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고, 현재는 축구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다.[7]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혐의로 제명되었다.[8] 축구월간지 베스트 일레븐 지에서 2000년 중후반에 매달 전세계 축구 유망주 10대 후반 선수들을 2~3명 정도 소개하는 기사를 냈는데 정확히 10년 뒤, 베스트 일레븐 지에서 그때 소개한 선수들의 10년 뒤 모습을 추가로 보도를 하여, 무려 과반수가 자국 1부리그에서도 사라져 2부리그 이하 선수 신세였다. 그래도 그렇게도 일단 선수생활을 계속 하고 있던것이 잘된 편이었것이 나머지는 아예 축구계를 떠난 이들도 상당수 많았다.[9] 참고로 이영표도 허정무가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하기 전까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였다. 오히려 당시 동포지션에서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던 선수는 2000년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양현정이었는데, 후에 이영표가 2002년 월드컵 이후 유럽에서 한창 날리고 있을 때 양현정은 부상 여파로 베트남 리그의 호치민 시티 FC에서 뛰다가 이후 실업팀 수원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10] 이승우도 엄밀히 유럽 4대리그 중 하나인 세리에A에서 뛴 경력이 있고, 심지어 월드컵과 아시안컵 출전 경력 또한 가지고 있다. 실패한 유망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유스시절 미디어 노출이 많아서이지 이강과는 비교불가다. 심지어 그 뛰어나다던 유망주 시절도 각 연령별 대표팀에 돋보적 에이스이자 세계적 유망주였던 이승우와 비교가 안된다.그리고 유럽 하위 리그에서도 뛰지 못할 만큼 몸 상태가 망가져 돌아온 이후에도 K 리그 복귀 첫 시즌에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는 활약을 보인 후에는 이승우와는 그릇 자체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11] 당시 이름은 K리그 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