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8 22:51:23

이광희(고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d400> 1세 2세 3세 4세
시조고 이자연 이천상 이광희
<rowcolor=#ffd400> 5세 6세 7세 8세
이입전 이긍휴 이염순 이승삭
<rowcolor=#ffd400> 9세 10세 11세 12세
이충경 이경영 이충민 이화
<rowcolor=#ffd400> 13세 14세 15세 16세
이진유 이궁진 이용부 이린
17세
선조고
}}}}}}}}}

조선 시조고의 증손자
이광희 | 李光禧
관직 아간(阿干)
본관 전주 이씨
광희(光禧)
부친 이천상(고려)
모친 영일 정씨(迎日 鄭氏)
부인 황씨(黃氏)[1]
자녀 이입전 외 7남[2]
19대손 태조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조선국성 전주 이씨시조 이한의 증손자.

2. 상세

고려시대 초기 이천상의 아들로 아간(阿干)을 지냈다. 배위는 대장군 황지선(黃志善)의 딸이다.

'아간'이란 벼슬은 '아척간'(阿尺干), '아찬'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17등 관계의 제6위였다고 한다. 고려 초기에는 태조 왕건이 신라 및 태봉의 제도를 섞어서 사용했다. 

'광희'(光禧)를 《씨족원류》(氏族源流)에서는 '광희'(光喜)로 썼다.

태조 이성계의 친구였던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환조대왕 정릉 신도비명>(桓祖大王 定陵 神道碑銘)에는
전주 이씨는 대성(大姓)으로 신라 아간 광희가 사도삼중대광(司徒三重大匡) 입전(立全)을 낳고…
라고 기록하여 시조를 나말여초 시기의 인물인 이광희로 봤다. 이 신도비가 세워진 때는 조선 개국으로부터 불과 수십 년 전이었지만 이한, 이자연, 이천상 3대에 대한 기록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이 세 인물은 1393년 이성계의 언급을 통해 처음 등장한다.

《완산실록》에는 별다른 일화가 없고,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는 '세직'(世稷 : 世直)으로 시조를 삼아, 중국 당나라의 황실인 농서 이씨의 종실로 있다가 우리 나라로 건너와 전라도 전주에 세거하면서 전주 이씨의 시조가 된 양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그것이 세대로는 이광희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세직공은 훌륭한 인물로 문장과 도덕이 뛰어난 당대의 은둔 군자인데 아들 8명을 두었다. 공은 이 아들들에게 형제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며 참언과 재물을 멀리하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아들 8형제 중에 한 명만이 대를 잇고, 나머지는 전염병에 모두 죽었다.

[1] 대장군 황지선(黃志善)의 딸이다.[2] 여덟 명의 형제들이 있었으나 이입전 외에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동국세기》와 《충효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