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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1884)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도영
李道榮
파일:이도영(1884).jpg
출생 1884년 3월 7일
한성부 동부 연화방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933년 9월 21일
경기도 경성부 원남동 자택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남동)
본관 연안 이씨(延安 李氏)
중일(仲一)
관재(貫齋), 면소(芇巢), 벽허자(碧虛子)

1. 개요2. 생애
2.1. 대한민보 만평
3. 관련 문서
파일:삽화1.jpg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1[1]
국(局)의 간형(肝衡)
혼(魂)의 단취(團聚)
성(聲)의 기관(機關)
도(道)의 이채(異彩)
[clearfix]

1. 개요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은 일제강점기의 화가이며 최초의 한국 만화가이다. 본관은 연안[2]으로 예조판서 이세재의 손자로, 양근군수 이인승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2. 생애

이도영은 18살이 되었을 때 조선시대 화가였던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과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의 문하생이 되어 전통적인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펼쳤다. 그의 화가로서의 기여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고희동, 조석진, 안중식" 등 13인 발기인과 함께 서화협회를 창립하며 민족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도영의 활동은 근대기 교과서 삽화와 잡지 표지 등을 통해 활발했으며, 1910년대 딱지본 소설책의 표지뿐만 아니라 『홍도화』, 『옥중가인』, 『옥중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다. 그의 표지 작품은 근대 초기의 고급스러운 문화상품으로 꼽히며, 한국 출판사의 근대 표지 디자인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2.1. 대한민보 만평

  • 볼드체로 쓰인 한자를 이어서 읽으면 '이병무(利柄武)'가 되는데 이는 당시 유명한 친일파 군인이었던 이병무(李秉武)를 조롱한 것이다.
    파일:벌거벗고 환도 찼군.jpg

    1909년 9월 2일자 《대한민보》

    검일병무사의(劒一柄武士儀)
    벌거벗고 환도 찼군...
  • 통감부 깃발을 든 일본 관료 양 옆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만평을 그린 화가 이도영은 "한쪽에서 울며 청하고, 한쪽에서 애걸하는 상황이 참 가관이다"라고 적어두었다.
    파일:대한민보 만평.png

    1910년 6월 23일 자 《대한민보》

    일변(一邊)에는 읍청(泣請)이고
    일변(一邊)에는 애걸(哀乞)하는
    상황(狀況) 참 가관(可觀)이다

3. 관련 문서



[1] 위 삽화는 근대적 한국 만화의 시초로 대한민보를 이용하여 4행시를 지었다.[2] 연안 이씨 관동파로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명인 월사 이정구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