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24e4d><colcolor=#fff> 이수현 李秀賢 | Lee Soo Hyun | |
출생 | 1974년 7월 13일 |
경상남도 울산시 우정동[1] | |
사망 | 2001년 1월 26일 (향년 26세) |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햐쿠닌초1초메 10-15 신오쿠보역 | |
본관 | 경주 이씨[2] |
가족 | 부 이성대[3], 모 신윤찬[4], 여동생 이수진 |
학력 | 낙민국민학교 (졸업) 동래중학교 (졸업) 내성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 경상대학[5] (무역학[6] / 명예학사) |
취미 | MTB, 기타[7], 스킨다이빙, 수영, 농구, 테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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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1년 1월 26일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취객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를 세키네 시로와 함께 구출하려다 사망한 대한민국의 의인.2. 생애
울산광역시 출신으로, 부산광역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93년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8] 무역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 재학 중 1년 6개월간 일본어 공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여 한일 교역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이후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를 휴학하고 아카몽카이[9] 일본어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일본을 좋아했는데 일본인의 친절함과 상냥함이 마음에 꼭 들었고 '나 같은 사람에게 일본은 파라다이스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시민의식에 감동을 받아서 자신도 등하굣길에 길에서 종이나 빈 캔 같은 쓰레기를 발견하면 줍기 시작해서 기숙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자전거 짐칸이 쓰레기로 가득해질 정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친구들이 어이없어하건 말건 그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3시간씩은 공부를 하고 지나가다가도 싸움이 붙은 걸 보면 누구건 말리고 볼 정도로 성실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그를 '위대한 괴짜'라고 불렀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지뢰찾기 이스터 에그가 기록되어 있었다.
17주기 영상에는 그가 다녔던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 JR 동일본 신오쿠보역, 그의 부모와 선배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유학 이전에도 집안이 일본과 인연이 있었다. 일본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가교(かけはし)>에서 밝히길 그의 할아버지가 오사카에 탄광 징용으로 끌려가면서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5세 때까지 재일 조선인으로 자라다가 1944년에 겨우 귀국했다고 한다.[10] 이수현의 증조할아버지는 결국 일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2.1. 사망
자세한 내용은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3. 관련 자료
이수현, 세키네 시로 추모비 | |
일본어 | 한국어 |
カメラマンの関根史郎氏、韓国人 留学生の李秀賢氏は、2001年1月26日 午後7時15分頃、新大久保駅において 線路上に墜落した男性を発見し、自らの 身の危険を顧みず救助しようと敢然と 路線に飛び降り, 尊い命を落とされ ました。 両氏の崇高な精神と勇敢な行為を 永遠にたたえ、ここに記します。 東日本旅客鉄道株式会社 | 한국인 유학생 이 수현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오꾸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 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 을 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는 추모비. 과학기술2관과 미래관 사이 주차장 옆에 위치해 있다.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학생교육문화회관 앞뜰과 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사고로부터 18년 후인 2019년 3월 21일에 별세했다. 향년 80세.
4. 기타
- 살신성인 의인 이수현 떠난지 20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 기사 2
- 체리필터 2집 Made in Korea?의 수록곡 '갈매기 조나단'은 그를 기리기 위한 추모곡이다. 그는 체리필터의 기타 정우진과 드럼 손상혁의 2년 선배[11]로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스쿨밴드 '무단외박'에서 함께했다고 한다. 일렉트릭 기타 중에서 레스폴을 선호했는지 생전 나우누리 ID도 gibson74였고 나우누리 서비스에서 제공하던 개인 홈페이지의 마지막 글도 레스폴에 대한 글이었다. 나우누리는 사고 이후 그의 홈페이지를 영구 보존하기로 했고 추모객들이 계속 방문했으나 나우누리 서비스 자체가 종료되면서 그의 홈페이지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가 자체 서버와 도메인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5. 관련 문서
[1] 現 울산광역시 중구 우정동[2] 한동안 전주 이씨로 알려졌으나 고인의 옆에 안장된 부친 묘비에 ‘경주이공성대지묘’라고 적힌 것이 확인되었다.[3] 1939~2019.3.21.[4] 1949~[5] 現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글로벌비즈니스대학[6] 2006학번부터 무역학과와 경영학과가 통합되어 경영학부로 바뀌었고 17학번부터 경영학부는 글로벌경영전공과 디지털경영전공으로 다시 나뉘었다.[7]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히데 사진이 있는 것으로 봐서 X JAPAN의 멤버인 hide의 영향을 받았거나 히데의 팬인 듯하다. 블루스와 락 장르를 좋아했다고 한다.[8] 당시 명칭은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였고 세종시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결정에 맞추어 캠퍼스 명칭을 '세종캠퍼스'로 바꿨다.[9] 아카몬에서 따온 이름.[10] 전쟁으로 설탕이 귀해져 배급제가 되자 설탕을 보관해 놓은 곳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훔쳐 먹던 추억을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11] 이수현은 93학번, 정우진-손상혁은 95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