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역임 직책 |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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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e5e5e5>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이슬기 Lee Seul-Ki | |||
출생 | 1986년 9월 24일 ([age(1986-09-24)]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6cm, 76kg | |||
직업 | 축구 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해설 위원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대구 FC (2009~2010) 포항 스틸러스 (2011) 대전 시티즌 (2012~2013) 화성 FC (2014~2015 / 군 복무) 인천 유나이티드 (2015) FC 안양 (2016) | ||
감독 | 강원 FC (2019~2021 / 코치) 강원 FC B (2021) 풋볼 A (2022~ / 코치) | |||
기타 | 서울 이랜드 FC (2017~2018 / 스카우트) | |||
해설 | SPOTV (2017~2018)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학력 | 장훈고등학교 동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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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2. 유소년 시절
2006년 파워풀한 공격 축구로 고교 축구계를 평정했던 장훈고등학교에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장훈고 재학 시절 득점왕도 2차례 수상할만큼 뛰어난 전도유망한 공격수 유망주 선수였고, 동국대학교로 진학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전환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3. 선수 경력
대학교 졸업 이후 이슬기는 2009년 드래프트를 통해서 1순위로 지명한 대구 FC에 합류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개막전부터 선발 출장해 1시즌을 통틀어 1경기를 제외하고 전경기 풀타임을 소화한 체력과 활동량, 여간해서는 잔부상 하나 없는 강골,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킥력으로 입단하자마자 대구의 주전 미드필더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다년간의 연습으로 다져진 정확한 코너킥 능력은 이슬기 선수를 리그 6경기 출장만에 1골 4도움을 올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주전으로 도약한 이슬기는 데뷔 시즌 리그에서 4골 7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그와 함께 언급된 선수는 1년 후 K리그 최연소 득점왕이 된 유병수와 강원의 괴물 김영후였고 최종 수상자는 김영후였다.
이슬기는 2009 시즌 윤준하와 함께 강원에서 제일 주목받는 선수였고, 첫 해부터 대부분을 전경기 소화에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시즌 총합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 달성에 성공하는 등 충실한 활약도를 보였다. 그 다음 해에도 대구에서 뛴 이슬기는 여전히 주축이었고 그 활약을 보이며 앞서 말한바와 같이 신인상 후보에까지는 올랐으나, 소속팀인 대구 FC의 성적 저조와 다른 쟁쟁한 신인왕 후보들에 밀려 결국 고배를 마시고 시즌 종료 후 송창호와 트레이드되어 포항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송창호 선수는 대구 FC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한데 비해 이슬기 선수는 5경기 출장에 그친 후 부상을 당해 대구 FC가 단기적으로 봤을때는 득본 트레이드가 되고말았다.
포항에서 출장 기회를 잃은 이슬기 선수는 시즌 종료 직후 포항이 박성호를 영입하기 위한 트레이드의 일환으로 김동희와 함께 대전 시티즌에 합류한다.
그런데 대전에서도 허리 부상을 당해 제대로 뛰지 못했고 리그에서 2년간 5경기에 그치며, 2013시즌 종료와 함께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대전을 떠난 후 이슬기는 그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2014시즌부터 K3리그의 화성 FC에서 활약하였다. 화성에서 뛰는 동안 축구팬들에게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던 이슬기는 소집해제 후 2015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합류하며 K리그 무대에 복귀하게 된다.
복귀하자마자 김원식이 경고 누적으로 빠진 상황이라 FC 서울을 상대로 출전. 경기 감각의 부재를 감안하면 괜찮은 경기력이었으나 그 1경기를 끝으로 시즌을 마쳤다. 정황 상 재계약을 하지 않는 듯 했으며, 이후 FC 안양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에이스의 상징 10번을 등번호로 달았으나, 총 2경기(...) 출전으로 201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번이라도 본인의 의지로 이적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대구 FC의 원클럽맨이 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적을 거치면서 마음의 상처가 컸던 듯.
4. 플레이 스타일
킥력이 굉장히 우수한 선수로 현역 시절 이슬기의 코너킥은 수많은 득점을 이끌어냈다. 당장 데뷔 시즌 리그, 리그컵에서 기록한 7도움이 모두 코너킥으로 이루어졌다. 코너킥 외에도 프리킥 역시 정확하며, 부상을 당하기 이전에는 피지컬에 체력, 활동량까지 겸비한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뒤늦게 포지션을 전환한 선수의 한계로 인해 수비력은 아쉬웠고 스피드도 다소 부족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지속적인 부상이 그를 괴롭히면서 기량 하락이 일찍 찾아온 불운의 선수.5. 해설자 경력
2017년부터 SPOTV에서 해설을 맡았다.6. 은퇴 후 지도자 경력
2017년 말 서울 이랜드 FC의 스카우트로 부임하였으며, 2019년 강원 FC의 코치로 부임하였다.2021년 강원 FC가 2군팀인 강원 FC B를 K4리그에 참가시키게 되면서, 2군팀의 초대 감독이 되었으며, 부임 첫해 리그 8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21시즌 막판 김병수 1군 감독이 성적부진에 따라 경질된 후 파이널B 인천전이 김현준 감독 대행 체제로 치러지면서 김승안 골키퍼코치와 함께 1군 코치로서 팀을 지휘했고, 이후 최용수 감독과 김성재, 하대성 코치가 부임하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팀을 창단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슬기는 황진성에게 이야기 했지만 지도자는 절대 안 할거라는 그를 설득 끝에 함께 '풋볼A' 축구팀을 창단한다.
7. 여담
-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 십자가 모양을 표시할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 동국대 시절 동기로는 박희도 선수가 있다.다만 박희도 선수는 동국대를 중퇴 후 프로 데뷔하여 사실상 이슬기 선수보다 1년 먼저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