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9:49:30

이언 페이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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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및 부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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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이언 페이즐리
Ian Paisley
파일:DrIanPaisley.jpg
본명 이언 리처드 카일 페이즐리
Ian Richard Kyle Paisley
출생 1926년 4월 6일
북아일랜드 아마크[1]
사망 2014년 9월 12일 (향년 88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신체
가족 부인 아일린 카셀, 자식 5명
학력 유니언 신학교
직업 목사, 정치인
종교 개신교 (장로회) (얼스터 독립 장로회)
소속 얼스터 독립장로회
민주연합당
개신교연합당[2]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성향4.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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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아일랜드의 목사 겸 정치인. 과격한 언행과 인종차별적, 반가톨릭적 행동으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 활동

1970년부터 40년간 영국 국회의원(북부 앤트림 지역구), 1979년부터 25년간 EU 의회 의원, 1998년부터 12년간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의원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었다. 1971년부터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당수, 2007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의 공동총리를 역임하였다.

북아일랜드에서 오랜 세월 갈등을 빚은 역사 때문에 1999년 부활한 자치정부는 사실상 이두정치(diarchy)와 대연정(grand coalition)을 강제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총리·부총리가 이름은 달라도 법적으로 동등한 공동 정부수반이되, 자치의회 내 선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아일랜드의 친영 진영과 아일랜드 민족주의 진영에서 각각 한 자리씩 맡게끔 제도를 설계했다. 이언 페이즐리는 신 페인당 당수 마틴 맥기니스(James Martin Pacelli McGuinness)와 공동총리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Scottish_and_Northern_Ireland_Ministers.jpg
2008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성을 방문해서 신 페인 당수 마틴 맥기네스(왼쪽) 스코틀랜드의 전 자치정부 수반이던 알렉스 새먼드(오른쪽)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가운데가 페이즐리이다.[3]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아버지처럼 연합당원이다. 이중에서 막내 이안 페이슬리 주니어가 지역구를 물려받아 2010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3. 성향

얼스터 연합주의자이자 종교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을 따르는 장로회 목사였다.

북아일랜드 장로교인으로서 가톨릭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1951년에는 자기가 몸 담았던 장로교도 교리적으로 배교했다며 몇몇 동조자들과 함께 얼스터 독립장로회로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4] 교황을 적그리스도 취급하며 매우 싫어했는데, 그의 신앙관으로서는 동쪽에서 해가 뜨듯 당연한 일이었을 터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친영파로서, IRA를 비롯한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의 무장투쟁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영국을 지지했다. (물론 페이즐리만이 아니라 대다수 연합주의자, 친영파들도 그러하다.) 이 때문에 남북 불문하고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증오의 대상이었고, TV 뉴스에 페이즐리의 모습만 나타나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1988년 EU의회에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연설할 때는 옛 반가톨릭 문서를 큰 소리로 읽으며 연설을 방해하다가 이를 보다 못한 오스트리아의 오토 폰 합스부르크 대공에게 무례한 놈이라는 호통과 함께 분노의 펀치를 맞기도 했다.[5] 이미 한창 야유를 받던 중이었는지라, 오토 대공한테 한 대 맞는 순간 좌중에서 환호가 터졌다고. 그래도 보안 담당자한테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고 항의해서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4. 사망

2014년 9월 12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의 사망을 보도하면서, 인생 말년에는 가톨릭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누그러졌을지라도 그가 남긴 투쟁과 종교간 증오의 씨앗은 남아있다고 평했다. 이언 페이즐리의 시신은 같은 달 15일 다운주(County Down) 발리고완(Ballygowan) 마을에 있는 얼스터 독립장로회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1] Armagh[2] Protestant Unionist Party[3] 새먼드가 중재인으로 나선 이유는 페이즐리를 비롯한 북아일랜드 개신교 진영 대다수가 혈통적, 문화적으로 스코틀랜드계이기 때문이다.[4] 북아일랜드 한인교회 중에도 여기 소속된 교회가 있다.[5] 오토 대공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통대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교황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