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7:26:06

이원(고려)

李元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고려의 인물.

2. 생애

1010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2월 초에 통주 전투의 패배로 고려군이 무너지면서 김훈, 김계부, 신영한과 함께 곽주로 후퇴하다가 거란의 기병이 추격하자 완항령에서 군사를 매복해 칼을 손에 쥐고 돌격해 거란군을 약간 물러나게 했다.

12월 9일에 거란군이 서경에 도착해 항복 권유를 했고 원종석 등이 항복하려 했다가 최창과 지채문이 항복을 권하는 사신들을 죽여 항복하지 못하게 하고 거란의 군사를 공격해 물리치면서 서경이 안정되었는데, 이원은 지채문과 함께 자혜사로 나가서 주둔했다.

이후로 지채문과 거란군을 추격하다가 패해 개경으로 복귀한 것으로 보이는데, 12월 28일에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가기로 하면서 지난 날 이원과 최창이 급히 되돌아와 호종할 것을 자청했으나, 지금은 다시 보이지 않으니, 신하된 자의 의리가 결국 이러한 것이냐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현종의 호종을 자청했다가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

1017년 11월 2일에 용호군 상장군 겸 호부상서, 1019년 7월 6일에 우복야, 1023년 12월 20일에 검교태자태보가 되었다.

3. 대중매체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통주 전투에 패배해 고려의 군사들이 흩어졌고 이원은 신영한의 명에 따라 좌우위 맹군을 지휘해 후퇴하며, 장교들에게 적과 교전하며 후퇴할 것이니 준비하라고 했다가 장교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이대로 내뺄 것이냐고 꾸짖었다.

신영한의 명령에 따라 일부 기군과 초군이 후퇴한 것을 돕기 위해 그들이 후퇴하는 것을 본 후 추격하는 거란군에게 여러 차례 화살을 쏴 공격하면서 적당한 시점에서 물러났으며, 화살이 떨어지면서 신영한이 창을 높이 뽑아 높이 든 것을 보고 돌격을 명령한 것임을 파악해 완항령에서 거란군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사들과 함께 돌격해서 거란군을 공격해 물리쳤다.

거란군이 다시 추격했고 김훈이 자리를 이탈해 후퇴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원은 군사들에게 화살 세 발을 사격하게 한 후 군사를 퇴각시켰고 본래는 안주로 가려고 했지만 장군들을 소집해 청천강이 얼어서 교통의 요지가 아니므로 서경으로 가자고 했다.

김훈이 반발하자 명령없이 자리를 이탈한 것을 언급하면서 명령이라고 했고, 김훈이 자기 부대를 이끌고 따로 움직이기로 하자 김계부와 함께 서경으로 갔다.

서경에서 원종석 등이 거란군에게 항복하려 하자 조자기가 동북면의 군사를 빨리 오게 하도록 광휴를 몰래 보냈는데, 조자기를 통해 서경이 항복하려는 상황에 대해 알게 되어 김계부에게 자비령으로 가서 거란군을 막자는 제안을 하다가 조자기로부터 동북면의 군사가 원군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다.

탁사정 등이 원군으로 도착해 서경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지채문, 이원과 함께 거란군을 싸우다가 퇴각하는 것을 보고 추격하다가 지채문의 군사가 전멸하자 퇴각 신호를 울리고 최창과 함께 남쪽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