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20:25:33

이윤택

이윤택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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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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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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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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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이윤택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윤삼육
(코리아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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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196D2><colcolor=#fff> 이윤택
李潤澤
파일:LeeYunTaek.jpg
출생 1952년 7월 9일 ([age(1952-07-09)]세)
경상남도 부산시 초량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여주 이씨
가족 부인 이연순, 딸 이채경, 딸 이상경
학력 초량초등학교 (졸업)
부산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연극학교 (연극과 / 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학 / 학사)

1. 개요2. 활동3. 사건사고/논란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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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연출가.

연극분야에서 오랜기간 활동하며 연극계에서 엄청난 권위와 인지도가 있었으나, 파렴치한 만행으로 그간의 명성을 모두 잃었다.[2]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연극분야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전국구급 극단중 하나였던 연희단 거리패[3]의 실질적 수장이자 연극계에서 입지를 자랑했던 인물이다.[4] 그러다가 후술될 추악한 만행이 드러나면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나쁜 의미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2. 활동

서울연극학교를 중퇴한 뒤 부산일보의 편집국 기자로 일하였다.[5][6] ㅡ 그 뒤 기자를 그만두고 연극계에 뛰어든다.# 부산 중앙동의 가마골소극장을 발판으로 연극 생활을 시작했고, 자신이 창작한 희곡 <시민 K>나 <문제적 인간, 연산>, <오구> 등이 서울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기 시작하며 이름을 알렸다. 본인 창작 연극 외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장 주네의 <하녀들>, 외젠 이오네스코의 <수업> 등 해외 명연극들을 재해석한 연출로 실질적으로 극작가보다는 연출가로서 더 알려진 연극인이었으며,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철저히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까닭에 이 시절 그의 별명은 문화 게릴라였다. 서울에서도 게릴라극장[7], 30스튜디오[8] 등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했지만, 합숙생활을 통해 이상적인 연극공동체로 주목받았던 연희단거리패 특성상 밀양에 주 거처를 두어 게릴라 컨셉을 끝까지 유지했다.

부산 가마골소극장은 중앙동 - 남포동[9]을 거쳐 거제동으로 이전했다가 운영상 어려움으로 철수해야 했지만, 기장군청 차성아트홀 등에서 계속 작품을 올리며 부산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고, 2017년 기장군 일광역 앞에 새로 가마골소극장 건물을 지으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산이 낳은 나름 최고 권위의 연극인인지라 동구 이바구길에 기념물이 설치되기도 했을[10] 만큼 지역 문화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3. 사건사고/논란

3.1. 성범죄 사건

파일:이윤택.jpg
기자회견 모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윤택 성범죄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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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갑질 논란

곽도원이 과거 인터뷰에서 이윤택이 대한민국 연극계에선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은 잘라’ 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황상 갑질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곽도원의 말에 따르면 곽도원은 선배들 말을 안 들어서 쫓겨났다는데 그런 이유로 다른 곳에도 못 들어가도록 하는 것은 공정성에서부터 문제가 된다. 이 부분이 고발이 된다면 법적인 책임은 없어도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기에 현재 성범죄 논란이 터진 시점에서 곽도원에게 저지른 갑질에 관한 도의적 책임까지 지게 되었을때 조사에서는 이게 피해자가 한둘이 아닐 것으로 판단되면서 추가 조사를 하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이윤택은 최악의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을 넘어서 법에서는 죄질이 불량하다고 확실히 못 박히는 건 현실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11]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윤택의 이러한 만행이 비슷한 시기에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곽도원의 결백을 증명하게 되었다.

4. 여담

TV 참조연설
문재인경남고 동창으로도 유명하며, 많은 언론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많다. 위 동영상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윤택의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 영상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라와 있다. 심지어 문재인의 공식 블로그에도 저 찬조연설 영상이 올라와 있다. [TV찬조연설] 영원한 청년 문재인 - 이윤택 연극연출가 연설 내용 전문

당시 그가 밝힌 문 후보의 학창 시절 이야기와 변호사가 된 후 연극표를 팔고 다닌 이야기 등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윤택은 문재인이 극단적으로 청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연설했다. 이 전 감독은 “문재인 후보가 청와대 근무할 때 경남고 동기동창들이 기대를 하고 많이 찾아갔더랬다”며 “하지만 아예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한 친구는 어떻게 해서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문재인 후보가 그 친구를 보는 순간 의자를 딱 180도 돌려 앉았다더라. 동기들에게 인심을 많이 잃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유명 건축가인 승효상과도 동창이다. 어째서인지 헤어스타일도 똑같다.

문재인과 고등학교 동창이라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문화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뜻이 없다며 연극계에 매진했고, 그런 선택에 대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범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1, #2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다. 박근혜 정부 때도 매년 1억 중반대 지원금을 받았긴 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인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 이전에 결정된 이윤택에 대한 지원금은 3억 9100만원이었으며, # 연극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기 연극계 거물인 이윤택에게 정부 지원금이 집중되는 경향이 농후했다고 지적한다. 연극 장르에 배분된 문예기금 수령자 중 늘 상위권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원금을 많이 받았다고 한들 실제 블랙리스트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을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가 2012년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이윤택은 불이익을 주려 해도 쉽게 줄 수가 없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는 엄청난 거물이었기에 그나마 블랙리스트에 오르고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별로 입지가 크지 않았던 피해자들은 아예 극단이 문을 닫고 극장이 폐업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고 쫄딱 망해버린 케이스가 적지 않다.

고은, 오태석과 함께 교과서에서 작품이 빠질 것이라고 한다. 기사. 참고로 2018년 및 2019학년도 수능특강 문학 교재에는 이윤택이 쓴 극본 '오구-죽음의 형식' 일부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수능에 절대로 연계될 수 없기 때문에 수험생이라면 해당 지문은 읽을 필요도 없고 수록된 문제 또한 풀지 않아도 된다.

이윤택의 미투 이후, 문학과지성사의 한국 현대희곡선이 절판되었고 2021년, 그의 작품만 빠진 채 재출간되었다. 다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8번 한국 희곡선 2권은 지금까지도 이윤택의 희곡이 빠지지 않은 상태다.

1998년 11월 1일자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 그를 다룬 바 있는데, 배우 김세준이 이윤택 역을 맡았다.

미투로 인해 그가 사라진 후에도 부산 일광의 가마골소극장은 그대로 운영 중이다. 이윤택과 상관없이 연희단거리패 소속이었던 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연출이나 연기 방식도 구 연희단거리패 방식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연희단거리패 출신인 영화배우들과도 교류한다는 듯하다. 연극공동체로서의 연희단거리패가 얼마나 단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가마골소극장의 존치가 이윤택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할 만큼 긍정적으로 알려지지 못했고, 부산 연극계의 다른 극단이나 공연에 섞이는 일도 극히 드물어 과거 이상으로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해졌다.

5. 관련 문서


[1] 1989년 제25회 시상식은 시상하지 않음.[2] 2011년, BBC 유명 방송인 지미 새빌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악행들이 들통나면서 경찰이 방송 연예인의 성범죄 수사에 나선 일과 비슷하다. 한편 한국인으로 한정하자면 차은택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둘 다 문화계에서는 거장이었으나 범죄를 저질러서 명예를 잃었다는 점에서…[3] 현재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많은 연기파 배우들을 배출하고, 거쳐간 전통과 유명세를 자랑했던 극단이었다.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해체했다. 몇몇 기자들이 방송에서 극단 이름을 연희단 패거리라고 잘못 부르는 말실수를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4] 어느 정도냐면,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 곽도원이 연희극단에 소속되었을 때 이윤택의 눈밖에 나 연극을 할 수 없게 되자 영화계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윤택은 다른 극단이라도 이 놈 내보내지 마라라고 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터뷰했다.[5] 그 이전에는 책 방문판매, 한일합섬 염색기사, 한국전력 입찰주임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6] 남들 보다 편집실력이 뛰어나 기동타격대라는 별명이 붙어졌다.[7] 2017년 4월 폐관[8] 연희단거리패 30주년을 맞아 개관한 소극장.[9] 용두산공원 인근[10] 성범죄 사건이 발각된 이후 철거되었다.[11] 곽도원의 말대로라면 갑질 피해자들도 상당히 많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