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재영 |
출생 | 1968년 1월 30일 |
사망 | 2012년 12월 12일 (향년 44세)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서울대학교 제적[1] |
가족 | 배우자 장성순 , 딸 1명, 아들 1명 |
경력 | 민중당 경기도당 정책국장 국민승리21 정책국장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레디앙 기획위원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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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의사들은 내게 25%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의사들 입장에서야 낙관적이기 어렵겠지만, 살아오면서 그처럼 커다란 확률을 잡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로또 맞은 것처럼 기쁘다.
생전 마지막 칼럼인 <노회찬과 주대환을 떠나보내며>에서. 이 글을 게재한 9개월 후 이재영은 사망한다.
생전 마지막 칼럼인 <노회찬과 주대환을 떠나보내며>에서. 이 글을 게재한 9개월 후 이재영은 사망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정치인이다.
2. 생애
1968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1980년대 말에 학생운동이 주류였던 당시 이재영은 서울과 영남 등지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의 노동운동을 진행하였고 1989년부터 1990년까지는 '사회주의자 그룹'의 대외협력활동을 맡았다.
1991년에는 인민노련의 선배인 노회찬, 주대환 등이 주도한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이후 민중당 경기도당 정책국장,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정책국장, 진보정치연합 정책국장, 국민승리21 정책국장,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을 역임하면서 대형마트 규제, 상가 및 주택 임대차 보호법, 복지확대를 위한 조세개혁,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민생정책들을 만들어냈다.
2006년 민주노동당 내 계파 갈등 속에서 NLPDR계열의 이용대가 정책위의장이 되면서 직에서 나오게 된다. 정책실장에서 퇴직한 후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8년 진보신당 창당발기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2010년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취임하면서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2011년 대장암 진단을 받아 사퇴하였고 2012년 12월 12일 밤 10시 경 대장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고 이재영 동지 추모영상
3. 사후
이재영 추모사업회가 발족되었고 2013년 유고집 두 권이 출판되었다.4. 여담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자,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민주노동당에 면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재영은 민노당 정책국장으로서 외국계 투자기업들에게 민노당의 정책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만남은, 외국계 투자기업과 민족주의적 노동자정당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선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