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0c0c0><colcolor=#ffffff> 이재찬 李在澯|Lee Jae-ch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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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7월 12일[음력] |
서울특별시 | |
사망 | 2010년 8월 18일 오전 7시경 (향년 46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이촌 현대아파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경주 이씨[2] |
부모 | 아버지 이창희(1933 ~ 1991) 어머니 나카네 히로미/이영자(1936 ~ ) |
형제자매 | 형 이재관(1962 ~ 2022) 남동생 이재원(1966 ~ 2024) 여동생 이혜진(1967 ~ ) |
배우자 | 최선희(1967 ~ ) |
자녀 | 아들 이준호(1996년생), 이성호(1998년생) |
병역 | 병역면제 (혼혈)[3] |
약력 | 새한미디어 사장(1997 ~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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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前 새한미디어 사장을 역임하였다.이병철의 손자이자 이창희의 차남으로 이재관의 동생이다.
2. 생애
1964년 서울특별시에서 이창희와 한국으로 귀화한 나카네 히로미(이영자)의 차남으로 태어나, 경복고와 미국의 디트로이트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아버지가 1991년 이른 나이에 혈액암으로 사망하여 장남인 형 대신 어머니가 회장직을 이어받고 형이 부회장직을 맡을 때 자신도 그룹 내 요직인 새한미디어의 사장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지냈다. 그러다 법정관리로 새한그룹이 몰락하면서 그의 인생도 몰락길을 걷게 된다.
배우자 최선희와 거의 이혼 같은 별거를 하고 2005년쯤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칩거생활을 하였다. 이 무렵 그의 정신적 피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군필도 아니었으면서 베레모에 군복 비슷한 패션을 입고 돌아다녔고 프로필상의 모습과 달리 수염을 기르고 다녔고 아파트 내에서 괴성과 고음을 질러 그가 이재찬인 줄 모르던 주민들이 아파트에 민원을 넣기까지 했을 정도. 이 무렵 얼마나 생활고에 찌들었는지 슈퍼에 라면 살 돈도 부족해 100만원 넘게 외상을 하고 다녔다. 다만 이 지경까지 왔어도 사망 직전까지는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지인들과 구상하거나 삼성에 협업을 요청하러 왔다갔다한 것을 보면 사망 직전까지도 사업을 재개할 의지가 있었던 듯 하다.
작은아버지 이건희와 사촌들에 극심한 열등감과 악감정이 있어서인지 어쩌다 TV나 신문에 삼성 일가 얘기가 나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자기 아버지 이창희 얘기가 나오는 걸 가장 싫어했다. 다만 옷 배달 온 세탁소 주인에게 할아버지 이병철이 학사모 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할아버지라고 자랑한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만큼은 존경한 듯 하다. 그럼에도 작은아버지 이건희와 사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해 2010년 사망 몇개월 전 이병철 탄생 100주년에는 불참했다.
2010년 8월 18일 오전 7시반쯤, 서울 용산구 이촌 현대아파트 주차장 근처에서 투신자살로 숨졌다. 향년 46세.
이재찬이 사망하자 조카가 생활고로 죽어가는 동안 이건희는 뭐 했냐며 이건희와 삼성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자 삼성 측은 이재찬에 사업 제의를 하기도 했고 지원해줄 만큼 지원해주려 했으나 이재찬 본인이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4]
2.1. 사후
이재찬의 시신은 2010년 8월 20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의료원에서 발인식이 거행되었고, 수원연화장에서 화장되어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옛 새한미디어농장에 안장되었다.이 때는 형 이재관만 상주로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이건희를 비롯한 나머지 삼성가는 그 누구도 조문조차 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 12년 후 이재관이 사망했을 때는 이재용, 정용진 등 사촌들이 조문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이건희가 이재찬 사망 시점에서 가족들의 조문을 막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후 좀 지난 2012년, 큰아버지 이맹희가 작은아버지 이건희에 상속소송을 벌였을 적에 이재찬의 어머니와 부인도 소송에 가담한 적 있었다. 결과는 흐지부지.
3. 가족관계
문서 참조.[음력] 6월 4일[2] 판전공파 (判典公派)-사정공파 (司正公派) 41세손 재○ (在○) 항렬.(족보)[3] 1992년생까지는 혼혈인 것만으로도 병역면제가 가능했다.[4] 이건희가 이맹희를 형으로 생각 안하는 것은 물론 아예 인간 취급도 안할 정도로 극도로 싫어한 것과 달리 작은형 이창희와는 비교적 사이가 좋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재찬 측은 이재찬이 생전 지원을 못 받았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이재찬의 장례식에 삼성 측에서 조문은 커녕 조화 한 점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카들은 싫어하거나 무관심한 듯 하다. 다만 이창희가 죽을 때 병원이 있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까지 가서 문병하거나 사망 직후 조카들의 후견인을 잠시 맡았다는 기사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