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李濟初.(? ~ 1812년)
홍경래의 난에 참여한 인물.
2. 생애
평안도 개천 사람으로, 홍경래의 난에서 북진군의 선봉장이 되어 가산을 점령하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북진군이 의주부 공략을 눈앞에 둘 때 홍경래의 남진군이 송림 전투에서 평안도 지방군에게 패퇴하여 정주성으로 퇴각했다.이제초는 관군이 여세를 몰아 공격하자 반란군 1천 명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운흥참(雲興站)에에 매복한 관군 1개 초를 격파했고, 곽산 사송평에서 함종부사 윤욱렬이 이끄는 관군 700명과 두 차례 교전했으나 패배했다. 김국신(金國臣), 김국주(金國柱) 등과 함께 붙잡힌 이제초는 관군의 고문을 받고서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고, 그의 용력을 두려워한 관군은 압송하지 않고 현지에서 목을 베었다.
이제초의 동생으로 이제신(李齊臣)이 있었는데 그는 형과 달리 홍경래와 같이 정주성에 들어갔다가 전황이 악화되자 몰래 홍경래의 목을 벨 생각이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3. 여담
- 서정일기에 따르면 이제초가 가지고 다닌 환갑(環甲)과 장검은 명나라의 도독 모문룡이 선천에 두고 간 것이라고 전해졌다고 한다. 갑옷과 장검은 이제초를 붙잡은 군관 박종묵과 김이해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