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학현 李鶴鉉 | |
출생 | 1945년 12월 15일 |
미군정 충청남도 연기군 등면 문주리 167 | |
사망 | 1967년 2월 15일 (향년 21세) |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짜빈동 | |
계급 | 상병[1]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복무 기간 | 1965~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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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2. 생애
1945년 연기군에서 태어났다. 1965년 7월 해병대 167기로 입대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해병대 제2여단 3대대 11중대 3소대 소총수로 배치되었다. 1966년 10월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고 11중대는 꽝응아이성 짜빈동 인근에서 추아이지구를 방어하기 위한 중대전술기지른 구축했다. 일병으로 진급하고 1조장이 되었다.1967년 2월 15일 새벽 북베트남군 1개 소대 규모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사격해 쫒았으나 얼마 안 가 연대급 병력이 중대전술기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체화력으로 북베트남군들을 사살했으나 방어선을 뚫기 시작했고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학현은 수류탄으로 오물통에 빠진 북베트남군을 폭사시키고 소총으로 교통호로 들어오는 북베트남군을 저지하며 분대장 배장춘 하사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른쪽 발목에 총격을 맞았고 실탄을 장전해 옆에 있던 도성룡 일병에게“죽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처치해야 한다”라고 한 후 소총을 인계하고 넘기고 수류탄 안전핀을 뽑고 북베트남군 5명과 함께 자폭했다. 도성룡도 전투 중 전사했다.
사후 상병으로 추서되었고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2024년 3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었다.
- 포항의 해병대교육훈련단 부지 내 신병교육관을 이학현관이라 이름붙였다.
[1] 추서 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