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 | 첨의평리(僉議評理),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참지정사(參知政事) |
본관 | 교동 인씨[1] |
고향 | 서해도 해주 |
성 | 인(印) |
이름 | 당(璫) |
할아버지 | 인공수(印公秀) |
아버지 | 인주(印做) |
생몰년 | ? ~ 1356년 |
1. 개요
고려 후기의 장수이자 오늘날 교동 인씨 중시조인 인물이다. 부인은 해주 최씨 이며 최안도의 딸이다.[2]2. 생애
고려 말 여타 장수들이 그랬듯이 고려 후기에 쏟아지던 왜구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354년, 원나라가 장사성을 토벌하려 고려에 지원을 요청하자 후배 장수인 최영과 함께 파병간 적도 있다.1356년 6월,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숙청한 후 서북면병마사에 임명되어 압록강 건너 파사부 등 3참을 공격했다. 이때 동료 장수인 강중경(姜仲卿)이 말을 듣지 않고 취기를 부리자 참수했다. 원나라 황제가 기철의 죽음 및 국경 침입을 빌미로 군사를 일으킨다고 협박하자 1356년 7월 말에 공민왕의 명으로 참형에 처해졌다.
조일신과 마찬가지로 앞뒤행적에 관한 사료가 적어 죽음에 다소 의문이 있다. 강중경을 독단적으로 처리해 공민왕의 의심을 샀다는 견해도 있고 조일신처럼 공민왕의 명을 받아 행동에 앞장섰으나 원나라의 뒤이은 문책에 책임을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했다는 견해가 있다. 최근에는 공민왕의 숙청이라는 설이 더 앞서지만 중신들을 자주 의심하고 숙청했던 공민왕 성격상 전자의 이유도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