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2-28 13:02:48

인정받지 못한 천재


1. 개요2. 현실에서의 사례3. 창작물에서의 사례

1. 개요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으나, 그 업적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선진적이어서, 혹은 다른 사회적 이유로 억울하게,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진가를 평가받지 못한 천재들을 말한다.

2. 현실에서의 사례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자.
  • 라이프니츠
    미적분을 발견한 수학자. 문제는 뉴턴도 동시대에 미적분을 발견한 것. 그래서 미적분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뉴턴이냐 라이프니츠냐 하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라이프니츠는 이 논쟁에서 패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하인 몇 명만이 참석했다.
  • 멘델
    완두를 가지고 실험하여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 독립의 법칙,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그의 이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먼지만 쌓였던 멘델의 논문이 세상에 알려져 인정받게 되었다.
  • 아보가드로
    '분자'의 개념을 생각하여 돌턴과 게이뤼삭의 이론을 절충한 학자. 하지만 그의 이론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원자조차도 머릿속에 떠올리기 어려웠던 시대에 분자까지 이해하기란 당시 사람들에게는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이론은 그가 죽은 뒤에야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보가드로 수'라는 명칭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으며, 화학을 얘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 안토니오 무치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 흔히 전화기의 발명가라고 하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이다. 안토니오 무치가 먼저 발명했으나 돈이 없어서 특허를 신청할 수가 없었다. 전신 회사를 찾아가 전화기에 대해 이야기해봤지만 전신 회사는 전화기가 얼마나 세상에 큰 혁명을 불러올지 깨닫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안토니오 무치의 특허를 사실상 빼앗아갔다. 안토니오 무치는 이에 법으로 대응해보고자 했으나 벨이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승소했다. 현재는 안토니오 무치가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2년, 미국 의회는 이런 모든 정황을 바탕으로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를 안토니오 무치로 인정하였다.
  • 칸토어
    무한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여 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칸토어가 그의 이론을 발표하기가 무섭게 세상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칸토어의 스승 크로네커마저 칸토어를 조롱했다. 무한에도 큰 무한과 작은 무한이 있고, 무한을 셈할 수 있다는 칸토어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말년에는 슬슬 이론이 인정받기 시작했고, 스승 크로네커와의 관계도 회복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칸토어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지금은 칸토어의 이론이 현대 수학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상식으로 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수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3. 창작물에서의 사례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자.
  •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 빌리는 발레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남자가 무슨 발레냐'라면서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버지도 빌리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주고, 빌리는 수석 발레 무용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