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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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원 임한솔 林한솔 | Lim Han-sol | |
<colbgcolor=#0ba95f> 출생 | 1981년 4월 10일 ([age(1981-04-10)]세) |
서울특별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
신체 | 183cm |
학력 | 유성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 00 / 학사)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경제학[제2전공] / 학사) |
병역 | 육군 제25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
소속 정당 | |
경력 | 노회찬 의원 언론특보 민주노동당 성균관대 학생위원장 심상정 원내대표 공보비서 19대 대선 심상정 후보 부대변인 정의당 서대문구위원회 위원장 정의당 전국위원 민선 7기 서대문구의회 의원[2] 정의당 부대표 |
현직 | 정의사회구현센터 소장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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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 서대문구의회 의원.2. 생애
1981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2000년 유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00학번)에 진학했다. 이후 육군에 입대하여 제25보병사단에서 복무했고, 2004년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제2전공으로 수학하였다.제17대 국회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언론특보로 근무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8년 진보신당 비례대표 10번을 받았으나 아예 출마의사가 없는것으로 밝혀져 후보를 사퇴하였다.
2008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뒤 제19대 국회에서 심상정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공보비서로 근무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회 마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3,512표(8.51%)를 득표하며 5위로 낙선했다. 2016년 재보궐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회 마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15,103표(32.34%)를 득표하였고, 국민의당 김용일 후보에 3.05%p(1,427표)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3]
2017년 정의당 당직선거에서 전국위원으로 당선됐다. #
2018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회 마 선거구에 출마하여 8,810표(18.85%)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윤유현 후보, 더불어민주당 차승연 후보에 이어 3위로 당선되었다.
2019년 7월 정의당 당직 선거에서 부대표로 당선되었다.# 청년 정치인의 육성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당내 공약을 내걸었다.
2019년 9월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서대문구 자택 앞에서 톨게이트 노동자의 직고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기사
2019년 11월 정의당에 입당한 이자스민 전 의원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며 서대문구 출마를 권유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4] 다만 정의당 중앙당은 개인의 바람일 뿐이라며 출마설을 일축했다.
2019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프 영상을 찍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인터뷰 10개월 동안 잠복해서 얻어낸 성과라고 한다. 다만 이 영상은 몰래 취재한 것이라 논란이 있다.
그리고 서대문구의회 독감 출장접종(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의 주사행위는 불법이다)시에도 임한솔은 빠졌다. 기사
2019년 1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시내의 고급 중식당에서 12.12 군사반란 40주년 축하연을 열자 찾아가 관련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였다.
2020년 1월 16일, 오는 4월에 치러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서대문구의회 의원직을 사퇴했지만 정의당 상무위원회가 이런 행보를 받아들이지 않자 탈당했다.
이후 뜬금없이 2020년 3월 6일 민생당에 영입됐다. 기사 # 그러나 2020년 3월 26일 발표된 민생당의 비례대표 명부에서 탈락하면서, 서대문구의원직과 정의당 부대표직은 물론 당적도 포기해가며 민생당에 입당한 게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5] # 이에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이 이 상황에 대해 "아이고 이 딱한 친구야... 어찌 이리 한 치 앞도 못 보고 경거망동하나..." 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손학규 대표를 지칭하는 얘기 아닙니다)
이후 2020년 3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 그리고 임한솔이 새롭게 둥지를 튼 민생당은 21대 총선에서 비례 5%도 근접하지 못 하며, 0석이라는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이 정도면 자기 성과에 비해서 짧은 시간에 정계 인생이 꼬였으니 더 이상 정치 인생을 이어갈 수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
3. 의정활동
2018년 6월 18일 서대문구의원 당선자 시절 지방의회의원들의 해외 여유성 연수가 논란이 되자 국외연수 불참 선언을 하였다.#2018년 8월 25일 선출직 공무원의 급여는 국민의 알 권리라며 자신의 구의원 월 급여를 공개하였다. 세전 358만 1,410원에 실수령액은 318만 5,290원. 근데 여기서 또 "의정활동 하면서도 빠듯하다."고 마치 월급이 적다는 것 마냥 사족을 달았다가 노동자의 평균 임금 보다 높다는 게 드러나서 욕을 먹었다.[6] 댓글 반응 또한 굉장히 냉담한데, 하기 싫으면 때려쳐라는 반응이 많다. 당장 저 실수령 300에 근접하지도 못 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걸 잘 생각해보면 된다. #
2018년 9월 18일 서대문구 관내 어린이공원에서의 음주행위를 제한하는 조례를 발의하였다.#
2018년 11월 27일 서대문구의회 의회사무국 행정감사 중 여비 문제를 지적하였다. 서대문구의회의원이 서대문구청에 감사하러 갈 때마다 2005년경부터 2만원 상당의 여비가 지급되어왔는데, 문제는 당시 서대문구의회와 서대문구청이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이다. #[7]
4. 논란
정의당의 타 당직자 및 공직자에 비해 상당히 빈번한 횟수로 논란이 발생하는 정치인이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부분을 여러 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너무 쇼맨십이 강하다고 비판한다.- 2019년 7월 열린 정의당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 부대표로 선출되었는데, 이 당시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문자 발송을 가장 먼저 하기 위해 당 선관위에서 명부를 몰래 빼돌렸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이 당시 정파를 불문하고 수많은 당원들의 반발과 분노를 샀으며, 결국 중앙당 선관위에 의해 공식적으로 경고 처분이 내려졌다.# 부정경선으로 거대한 풍파를 겪은 진보정당 당원들의 입장에서는 분노가 클 법 하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구민들의 민생을 챙겨야 하면서 정작 의정 활동에는 소홀하고 자신의 이름값을 올릴 만한 활동만 중심적으로 펼치는 모습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임한솔 의원의 서대문구의회 출석률은 꼴찌로, 당 안팎에서 "전두환을 따라다닐 시간에 구의회에나 나가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두환 관련 영상에서도 본인의 이름을 부각시키는 것 위주로 편집해놨다.
- 2019년 12월 초,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인한 정의당의 국회 농성장에서 김종민 부대표, 김종대 의원과 함께 찍은 영상의 제목에 "찌릿찌릿 느껴버린 세 아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당 내에서 논란이 되었다. 저급한 성적 메타포이며 당이 지향하는 여성주의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 2020년 초,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서대문구 구의원직을 사퇴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당 상무위원회와의 비례 출마 논의가 잘 풀리지 않았던 상황에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모양새인데, 당내 반응은 최악이었다. 서대문구민의 표도 저버리는 사람이 국민의 표는 왜 얻으려고 하느냐는 의견이 다수고 당장 출당시키라는 당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 뜻대로 되지 않자 탈당계를 제출했다. 받아주지 말고 징계를 내리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 # # #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서울 서대문구의회 마 | [[정의당|]] | 3,512 (8.51%) | 낙선 (5위) | |
2016 | 재보궐선거 (기초의회의원) | 15,103 (32.34%) | 낙선 (2위)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8,810 (18.85%) | 당선 (3위) | 초선[8] |
6.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민주노동당|]] | 2005 - 2008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8 | 탈당[9] |
[[진보신당|]] | 2008 - 2011 | 창당 |
[[새진보통합연대|]]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1 | 탈당 창당준비위원회 |
[[통합진보당|]] | 2011 - 2012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탈당 |
| 2012 - 2013 | 창당 |
[[정의당|]] | 2013 - 2020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탈당[10] |
| 2020 - 2024 | 입당 정계은퇴 |
| 2024 - 현재 | 당명변경 |
[제2전공] [2] 사임[3] 당선된 국민의당 김용일 후보는 16,530표(35.39%)를 기록했다. 3위로 낙선한 새누리당 김창민 후보는 15,063표(32.25%)를 기록했다.[4] 이자스민 의원의 현 거주지가 서대문구 갑 지역이라고 한다.[5] 임한솔과 비견되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이 바로 김두관과 이낙연이다. 김두관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당계에 험지를 넘어 사지였던 경상남도에서 (비록 무소속이었어도) 어렵게 당선된 도지사직을 버렸지만 결국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유시민에게도 밀려 패했을 뿐만 아니라 경남지사 자리마저 새누리당 홍준표에게 헌납한 것도 모자라 그를 보수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키워주고 말았다. 이래서 나온 멸칭이 김두관의 이름을 거꾸로 한 관두김, 트롤짓을 했다고 해서, 트롤김, 경남지사에서 런했다고 해서 런두관, 런지사 등등 온갖 멸칭이란 멸칭은 다 붙는 수모를 겪었다. 김두관은 이후 2016년 타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가 8년이나 지난 2020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정치기반 고향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고, 경남지사 또한 8년 만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경수가 경남지사로 당선되어 민주당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임기 도중 김경수가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나면서 4년을 못 채우고 내려오게 되었다. 이낙연 또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대선후보 경선에 집중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직을 버렸지만 경선에서 이재명에게 패한데다 경선 불복 논란을 일으키면서 이때부터 사실상 이낙연의 정치생명은 끝이 나게 되었다.[6] 노동직 대부분이 주 6일 기준으로 실수령액이 300을 넘지 못 한다. 만근을 때려야 500 언저리에 그치는데, 그러면 몸이 망가진다. 구의원은 수당까지 포함하면 세후 연봉으로만 6천이 넘어간다. 거기에 개인 소유 노트북 등 공금으로 구매가 가능한 품목도 있어 돈을 모으기도 수월한 편이다.[7] 서대문구의회 청사는 2020년 1월에 서대문구청 뒷편으로 이전했다.[8] 2020.01.06 의원직 사퇴[9] 당내 노선 차이로 탈당[1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