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2:04:26

장 니콜라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Jean Nicolas.jpg
이름 장 니콜라
Jean Nicolas
본명 장 에두아르 마리 니콜라
Jean Edouard Marie Nicolas
출생 1913년 6월 9일
프랑스 낭테르
사망 1978년 9월 8일 (향년 65세)
프랑스 파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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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6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팀 FC 루앙 (1929~1939)
국가대표 25경기 21골 (프랑스 / 1933~1938)

1. 생애
1.1. 선수 생활1.2. 이후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3. 수상
3.1. 클럽3.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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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1930년, 당시 16살이던 니콜라는 아브르 A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1933년,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가 되면서 니콜라의 소속팀 FC 루앙디비지옹 2에 소속되었지만 니콜라를 포함해 로제 리오, 베르나르 앙투아네트 등과 강력한 공격진을 구성했었다.

1936년에 FC 루앙은 디비지옹 2에서 디비지옹 1으로 승격했는데 1934년부터 1936년까지 3년 연속 디비지옹 2 득점왕에 올랐으며, 특히 1934년에는 26경기에 출전, 54골을 넣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리그 2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이다. 1938년에는 디비지옹 1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했다. 1938년 5월에는 발랑시엔 FC를 상대로 무려 7골을 넣으며 9대1 대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막을 내렸고, 총 164회의 리그 출전과 193골의 기록을 써내렸다. 10시즌이라는 다소 짧은 기간에 이러한 어마한 기록을 남기며 당시 프랑스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보여줬다.

1.1.2. 국가대표

니콜라는 그의 소속팀 FC 루앙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2부 리그 소속임에도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팀 첫 상대는 당시 유럽을 호령하던 분더팀이었고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0대4로 셧아웃당했다.

그의 첫 득점은 1933년 3월 26일의 벨기에전에서 나왔고 니콜라는 후반 36분 3대1 승리를 이끄는 쐐기골을 넣었다.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 룩셈부르크전에서 니콜라는 4골을 넣으며 6대1 대승에 큰 기여를 했고, 본선에서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니콜라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프랑스는 뒷심 부족으로 결국 연장 혈투 끝에 2대3으로 오스트리아에 패했다.

니콜라는 조국에서 열린 다음 대회에도 참가하여 1라운드에서 2골을 넣었다. 하지만 8강전의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1대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니콜라는 총 25회의 대표팀 경기에서 21골을 넣어 현재 프랑스 대표팀 역대 득점 순위 13위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1.2.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니콜라는 피니스테르(Finistère)지방에 정착했고 아마추어 축구 코치 일을 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에 능한 스트라이커.

3. 수상

3.1. 클럽[2]

  • 디비지옹 2 우승 1회: 1935-36
  • 디비지옹 도뇌르(노르망디) 우승 1회: 1932-33

3.2. 개인

  • 디비지옹 1 득점왕 1회: 1937-38
  • 리그 2 득점왕 3회: 1933-34, 1934-35, 1935-36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니콜라는 FC 루앙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