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4:28:57

장 으스타슈

장 외스타슈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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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1]
제25회 칸 영화제
(1972년)
제26회 칸 영화제
(1973년)
제27회 칸 영화제
(1974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
{{{#BF0404 장 외스타슈
(엄마와 창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아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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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외스타슈
Jean Eustache
[2]
파일:장 외스타슈.jpg
엄마와 창녀 촬영 당시.
출생 1938년 11월 30일
프랑스 지롱드
사망 1981년 11월 5일 (향년 42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직업 감독, 각본가, 배우
활동 1961년 - 1980년
가족 아내[3]
아들(1960년생)
링크 파일:IMDb 로고.svg

1. 개요2. 생애
2.1. 죽음
3.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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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노동자 출신 영화감독.

포스트 누벨바그라 불리며 고다르의 후계자로 각광받던 감독이었으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때문에 장편은 딱 두 편만 남긴 과작 감독으로 꼽힌다.

미성숙한 남성의 심리, 주변 여성 간의 비틀린 관계, 많은 대사량과 박식함, 68 혁명 이후 정치적 좌절감, 소통 없는 공허한 대화, 소외와 단절이 트레이드마크로 꼽힌다.

2. 생애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카예 뒤 시네마 멤버가 되기 전까지는 철도업에 종사했다. 아카데미 체계랑 관련없이 독학해서 영화를 배운 케이스.

장뤽 고다르의 주말에 출연하고, 뤽 물레의 빌리 더 키드의 모험를 편집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섰다.

데뷔작 엄마와 창녀로 칸 그랑프리를 수상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2.1. 죽음

1981년 파리에 소재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생일을 몇 주 앞두고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자살 원인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두 가지로 오랜 생활고에 시달린 것이 이유라는 것과 몇 년 전 아내의 자살로 인한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또 외스타슈는 그 해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해진 것도 있었다.

생활고 문제는 어느정도 사실이었는지, 사후 영화 판권을 가지고 있던 아들 보리스가 비싸게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때문에 2023년 이전까지 외스타슈 영화는 사실상 유실 영화로 꼽히곤 했다. 엄마와 창녀도 주연 배우 사망 당시 추모로 TV에서 틀어준 것 빼고는 프랑스에서조차 시네마테크 상영 이외에는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그러다가 2023년 제작사였던 필름 뒤 로장주에서 판권을 획득해 전편 복원를 완료했다.

짐 자머시브로큰 플라워는 외스타슈에게 바쳐졌다.

3. 필모그래피


이외 TV 영화 다수.


[1] 해당 상은 1967년부터 1988년까지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 (Grand Prix Spécial du Jury)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현재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2] [øs.taʃ][3] 남편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