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강환(張康煥) |
생몰 | 1866년 ~ ? |
출생지 | 강원도 이천군 서면 축동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강환은 1866년경 강원도 이천군 서면 축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자신이 사는 이천군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김응순(金應順)과 서당 훈도 박용의와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기획했으며, 구장이었던 송원흥(宋元興)의 도움을 받았다. 장강환 등이 4월 10일 안협 장날을 이용해 거사를 일으키기로 협의하자, 송원홍은 4월 9일 밤 각 구장들을 동원해 집집마다 거사계획을 알렸다.1919년 4월 10일, 장강환을 비롯한 축동리 주민 70여 명은 안협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고창했고, 박용의는 태극기를 높이 세우며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 이 일로 체포된 장강환은 1919년 9월 2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장강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