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문환(張文煥) |
생몰 | 1887년 1월 30일 ~ 1947년 8월 31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예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문환은 1887년 1월 30일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예산군 고덕면 장날에 대천 장터에 모인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고 다니면서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던 중 시위자 7명이 경찰에게 체포되자, 군중과 함께 주재소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어 헌병대의 무차별 발포로 시위자 한 명이 피살되자, 그는 시위 군중 15명과 함께 시체를 헌병주재소 앞에 운반해 놓고 "왜 백성을 죽였는가? 이 사람을 살려내라"고 항변하다가 주재소장에게 쫓겨나게 되자 그를 구타했다가 체포되었다.이 일로 법원에 회부된 그는 1919년 5월 2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예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7년 8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3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