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5:19:16

장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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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의 유래3. 한국에서의 논란

1. 개요

한국어: 長白山 Jangbaeksan (장백산)

백두산의 다른 이름.

만주어에서 비롯한 백두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술하겠지만, 장백산은 중국 쪽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명칭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조선 시대까지는 '백두산'과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혼용하여 《조선왕조실록》과 《성호사설》그리고 《관서별곡》 에도 등장한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들을 일이 없고 무협소설에서나 가끔 나오는 수준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공식적인 문서 등을 제외하면 백두산이라는 용어도 문제 없이 사용되고 다 알아듣는다. 다만 시진핑 정권 치하에서 중화주의/한족 문화로 일방적인 동화 강요# 심지어 영어 교육까지 축소하는 중국어 우선 정책# 등 이런저런 상황으로 표기가 다 창바이산으로 반강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금강산 역시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북한산이 삼각산이라는 별칭이 있듯이 하나의 산에 여러 지명이 붙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를 고집해야할 이유도 없다.

2. 명칭의 유래

원래 연변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던 퉁구스계통의 만주족들이 백두산을 'ᡤᠣᠯᠮᡳᠨ ᡧᠠᠩᡤᡳᠶᠠᠨ ᠠᠯᠢᠨ golmin šanggiyan alin [qɔl.min.ʃaŋ.ŋjan.a.lin]'라고 불렀는데, 길고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말갈, 여진 등 일대의 다른 퉁구스족들도 비슷하게 불렀다. 이를 한자어로 번역차용한 것이 장백산(길 장, 흰 백, 뫼 산)이다.

'장백산'이란 명칭은 조선시대에도 활발히 사용되어왔다. '장백산'이라고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종 13년(1431) 실록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선인들이 백두산과 장백산을 혼용해 부른 기록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백산이라고도 썼는데 이들 뜻이 다 흰머리산, 긴 흰산, 흰산이라는 뜻으로 서로 비슷하다.

한국의 지리시간에서도 산맥을 가르칠 때 백두산이 포함된 산맥을 백두산맥이 아니라 장백산맥으로 가르쳤던 때가 있었고, 산경도에도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이 동시에 있다. 북한에서도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가사에서 "장백산 줄기줄기.." 운운 한다.

3. 한국에서의 논란

  • KBS 스페셜에는 백두산을 오로지 ‘중국의 영산’으로만 만들기 위해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의 산으로 규정되고 있는 백두산 공정 실태를 밀착 취재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 관련 유튜브 영상 2
  • 2024년 중국이 자국 부분을 전에 세계지질공원으로 신청하면서 창바이산 명칭으로 올린게 등재가 임박했다고 해서 많은 언론에서 동북공정 같은 역사 왜곡 홍보가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1] 백두산의 다른 절반을 지배하는 북한 역시 지질 공원을 신청했다가 코로나 봉쇄로 시찰이 불가해 못했으나 이젠 아니니 가능하단 것.# 사실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올릴 때도 같은 식으로 그럭저럭 지나갔다.[2] 그러나 2024년 3월 28일, 백두산이 창바이산(장백산)이란 명칭으로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1] 이 경우 중국의 홍보와 약해진 북한의 국력 때문에 중국의 영토가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미 수십년 전 국경 조약을 맺은 이래 백두산에서 정통성을 강조하는 김씨조선이 그걸 깨게 둘 가능성이 없다. 중국이 북한을 무너뜨리는 일이 터진다 쳐도 그때는 북한 영토 전체가 문제지 백두산만 문제가 아니다.[2] 그때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고구려 고분군이 함께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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