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봉현(張奉賢) |
생몰 | 1895년 ~ ? |
출생지 |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운천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봉현은 1895년경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운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수진면 운천리에서 표득복, 백낙현, 차천모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6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도수장(屠獸場)과 친일파의 집에 불을 질렀다. 4월 2일 오후에는 수진면사무소 부근에 군중 2천 명과 함께 집합하여 만세를 부르고 독립연설을 했다. 그러다가 헌병대가 출동, 발포하여 시위 군중 2명이 현장에서 피살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그는 상고하면서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나는 소요·방화·살인미수의 사실이 단연코 없는데 파견소(派遣所)에 붙잡혀 무수히 구타를 당하고 5~6회 사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것이 명백한데 의주지청 및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소요·방화·살인미수로 형 10년에 처해졌으니 억울함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1919년 9월 25일 그의 상고를 기각했고, 그는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장봉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