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예학(張禮學) |
생몰 | 1883년 12월 21일 ~ 1957년 5월 29일 |
출생지 | 함경남도 정평군 부문면 풍양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서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예학은 1883년 12월 21일 함경남도 정평군 부문면 풍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5일 원종집·윤화락(尹和洛)·노문표 등 기독교 인사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논의한 끝에 3월 7일 정평읍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군중을 동원하기로 했다. 이윽고 3월 7일이 되자 읍내 장터에 모인 300명의 주민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공소했지만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충남 서산군으로 이주했고, 1957년 5월 29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예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