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정용(張廷鏞) |
생몰 | 1894년 10월 14일 ~ 1925년 1월 27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의주군 고진면 동제리 |
사망지 | 평안북도 선천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정용은 1894년 10월 14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진면 동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8월 보합단(普合團) 단원 김도원에게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의주군의 동암산에서 보합단을 조직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보합단에 가입했다. 이후 1920년 11월 10일경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 월곡리에 소재한 자신의 집에서 조상백(曺相伯)으로부터 경성의 이종형(李鍾滎)이 조직한 무장계획단이 널리 청년을 모집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무기를 구입하여 청년에게 주어서 일본에 대항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뒤, 그는 김도원과 서로 제휴해 경성 및 삼남 방면에 지부를 세우기로 합의했다.1920년 11월 15일, 장정용은 경성 운니동의 변석연(邊錫淵)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는 보합단 명의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보합단원 김도원, 이광세(李光世)와 함께 선천을 떠나 경성에 도착하여 조상백과 합류하였는데, 이때 김도원은 장정용의 도움을 받아 배(梨) 상자속에 권총 4정과 탄환 약 200발을 넣어 출발하였다. 그러나 12월 4일 김도원이 변석연을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할 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종로경찰서의 형사 이정선, 유참열 등의 총격을 받았다. 김도원은 교전 끝에 이정선을 사살하고 도피했고, 장정용은 이 사건에 관여한 이광세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생도의 모자를 쓰게 해 학생으로 분장시켜 도피시켰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된 그는 1922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미결 구류 일수 200일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선천군으로 돌아가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5년 1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장정용의 장녀 장월빈씨가 미국 캘리포니아 하버시티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의 9월 6일 장월빈씨에게 부친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장을 전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