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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쉐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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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학명.jpg
중화인민공화국 정협 전국위원회 위원
정체 張學銘
간체 张学铭
한국식 독음 장학명
영문 Zhang Xueming
서경(西卿)
출생 1908년 청나라 봉천성 봉천
사망 1983년 4월 9일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만 74~75세)
국적 청나라 파일:청나라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파일:중국 국기.svg
학력 일본육군사관학교
직업 군인, 정치가
종교 무종교(무신론)

1. 개요2. 생애3. 가족사항4. 여담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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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천군벌의 수령 장쭤린의 둘째 아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 되었다.

2. 생애

1908년 봉천성에서 장쭤린과 그의 첫째부인 조귀계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쭤린은 장쉐밍이 자신이 이전에 쏘아 죽인 일이 있던 라마승의 환생이라 여겨서 장쉐밍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북강무당을 졸업했으며 1928년 일본 제국에서 장쭤린에게 아들 한명을 유학보내라고 제의하자 장쭤린은 장쉐밍을 보내기로 결정,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켰다. 형이자 동기인 장쉐량과 사이가 좋아 장쉐량과 자주 편지 교환을 했는데 그 중 하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생이 이국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라에 수치가 없도록 처신하고 부형의 얼굴에 체면을 깎지 않아 형은 매우 기쁘다. 동영의 인사들은 모두 장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중국의 군벌이나 관료처럼 마작이나 아편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동생은 이러한 것들을 꼭 지키기 바란다. 형은 동생의 지식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래 학업을 성취한 후 귀국하여 구관료들의 악습을 밟지 않기 바란다.

1928년 장쭤린이 황고둔 사건으로 사망하고 동북역치가 선포되어 동북이 국민정부에 합류한 이후 장쉐밍은 학업을 마치고 1929년 귀국했다. 처음 동북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활동하다가 중원대전으로 하북성이 봉천군벌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1930년 10월 텐진시 시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동삼성 공안국장, 동북 정무위원회 위원, 동북 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요씨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1933년 톈진시 시장을 사직하고 유럽과 미국으로 외유를 떠났다. 독일에서 전 국무총리 주치첸(朱啓鈐)의 딸 주락균을 만나 결혼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유럽에 거주하다가 1943년 영국령 홍콩을 경유하여 귀국해서 텐진에 살았다.

1943년 왕징웨이 정권의 군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에 국민정부에 중용되어 동북 보안사령부 중장 참의, 동북 행영 참의실 부주임 겸 중장 총참의 등의 요직을 지냈다. 요심전역에서 국민정부군이 패배하자 1949년 1월 가족을 거느려 텐진으로 돌아왔고 푸쭤이의 항복으로 베이핑이 함락된 이후 중국공산당에 합류했다. 1950년 화북 혁명대학에서 공부, 졸업 후 톈진시 건설국 원림처 인민공원 관리소 부소장이 되었으며 1959년 4월 정협 전국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이후 텐진시 건설국 부국장, 텐진시 고문, 톈진시 정협 상무위원,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톈진시 위원회 주임위원, 국민당 혁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문화대혁명 중에 박해를 받았으나 살아남는데 성공, 덩샤오핑의 집권까지 보다가 1983년 4월 9일 75세로 사망했는데 차남 장붕거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 일생에 오직 한스러운 게 하나 있다면 형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장래에 기회가 생긴다면 네가 꼭 나의 이 말을 형님께 전해다오."

3. 가족사항

부모형제에 대해서는 장쭤린/가족 관계 문서 참조.

첫째 부인 요씨와 딸 장여아를 두었다. 장여아는 톈진 제2병원 도서 관리원으로 일했으며 톈진시 의료 기공사 기술자 하병환과 결혼해 2남 2녀를 두었다.

주락균은 이후 전국 정협 문사전문위원이 되었으며 장쉐밍과의 사이에서 장남 장윤충과 차남 장붕거를 낳았다. 장붕거는 장쉐량이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1998년 6월 3일 하와이에서 장쉐량을 만나 아버지의 유언을 전했다.

4. 여담

전술하였듯이 장쭤린은 장쉐밍이 자신이 죽인 라마승의 환생이라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장쉐밍이 태어나기 직전, 장쭤린의 집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 설씨가 깜빡 잠에 들었다. 설씨의 꿈에서 라마승 한 사람이 나타나 장쭤린의 집안으로 뛰쳐들어갔는데 놀라서 잠에서 깬 설씨는 꿈이 진짜인줄 알고 라마승을 쫓아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가 장쭤린을 만났다. 장쭤린이 어딜 뛰어가느냐고 묻자 설씨는 젊은 라마승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서 쫓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장쭤린은 헛소리하고 있다고 욕을 퍼부었다. 그때 장쉐밍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장쭤린은 자신이 마적단에 있을 적에 죽인 젊은 라마승을 떠올리고 "이놈이 나하고 결판을 내겠다고 왔구나!"라고 욕을 퍼부어 장쉐밍을 좋아하지 않았다. 장쉐밍이 자라면서 라마승에 대한 일을 잊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아들을 볼모로 삼을 겸 유학을 보내라고 권유 했을 때는 바로 장쉐밍을 보냈다.

5. 참고문헌

  • 만주군벌 장작림, 쉬처, 아지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