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ㆍ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2항은 삭제)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圖畵)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⑥ 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⑦ 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의2(남북한 주민 접촉) ①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접촉한 후에 신고할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28조의2(과태료)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2. 제9조의2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북한의 주민과 접촉하거나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신고를 한 자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cb371> 재중조선인총련합회 在中朝鮮人總聯合會(번체자) 在中朝鲜人总联合会(간체자) | |
영문 명칭 |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s in China |
약칭 | 재중총련 |
슬로건 | XXX |
창설일 | 1956년 |
소재지 | 중국 선양시 황고우 |
선행 조직 | 조선로동당 대외문화연락위원회 (1956년 ~ 1990년 8월)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재중조선인본부 (1990년 8월 ~ 1991년 3월 3일) 재중조선인 운동단체 (1991년 3월 3일 ~ 1992년)[1] |
대표 | XXX |
정치적 스펙트럼 | 혼합정치 |
이념 | 주체사상 |
기관지 | 백두-한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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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북한 출신 교포와 친북-종북 계열의 조선족 동포들이 결성한 민간 조직.[3]2. 특징
쉽게 말하자면 중국판 조총련이다.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계열 동포들과 달리 정식으로 북한국적을 갖고 중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국적자는 대략 7000명 정도로 집계된다.약칭으로 조교(朝僑, 차오챠오)[4] 2002년 보도에 따르면 북중관계가 예민해지면서 조교들은 북한의 ‘간첩’으로 지목돼 중국 당국에서도 예의주시 중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조교에게 "거류증(居留证)"을 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해외공민증"을 발급한다.
현재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조교는 대략 3000~4000여명 정도이며, 이들은 북한 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역사
중국에는 1950년대부터 조선 공민을 위한 조직이 있어서 "조국"(북한)[5]의 소식을 중국의 동포들에게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56명의 북한인들이 포함되어 속칭 ‘56인 위원회’라고도 하였다. 이 조직은 이후 비상설적인 공민조직으로 활동하였다.재중조선인총연합회의 결성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6년, 조선로동당 외곽조직으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설립
1990년 8월, 500여명의 동포출신 종북인사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재중조선인본부 결성
1991년 3월 3일, 재중조선인 운동단체 출범 (초대의장: 양영동, 월간소식지 『백두-한나』발간, 본부: 심양 서탑)
1992년, 재중조선인총련합회로 개칭되여 상설기구로 활동
1998년 8월, 통일대축전을 전후한 시점에서 확대재편.
2001년 3월, 재중총련 결성 10주년 기념보고대회: ‘김정일로동당총비서동지의 령도아래 통일애국운동을 전개할것을 다짐’[6]
2002년, 선양시 황고우로 본부 이동
4. 기능과 역할
양영동 초대의장은 재중총련의 활동목적에 대하여 “공민들을 묶어세워 조국통일과 조국의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며 조중친선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구성원의 대부분은 북한식당이나 북중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실업가로 구성되어 있다. 재중총련은 일본의 ‘조총련’과 자주 비교되었으나 일본의 조총련과 같은 자금력과 동원력은 구비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7] 그러나 이들은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고 행동력과 정보수집력을 갖추고 있으며, 베이징의 여러 대외우호조직과도 두터운 인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와 같이 북중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는 상당한 따돌림과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에 귀화하지 않고 일관되게 종북 활동을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중국주재 북한대사관과 좋은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재중총련은 해외공민증(북한 발급), 외국인거류증(중국 발급)을 위해서 각 현(縣)이나 시(市)별로 책임자를 두고 있다. 북한에 행사가 있을 때 이들의 집에 깃발을 내걸고, 1년에 한 번씩 김일성이 유년시절 다녔다는 지린시 창닝구에 있는 위웬(毓文)중학교에 모여 대대적인 행사를 갖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충성금’ 모금이나 북한의 우상화 출판물 배포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재중총련에서는 1998년부터 ‘모범지부쟁취운동’을 하고 있다. 각 지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은 지부조직의 건설, 정규적인 학습, 다양한 행사운영 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운동은 연간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에 평가사업이 있다. 지금까지 5개 지부가 모범지부를 쟁취하였으며, 지린시, 옌지시, 선양시는 2중모범지부를 쟁취하였다. 모범지부로 표창된 단위들에 대해서는 동포들이 집단적으로 조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4월 15일이나 2월 16일을 비롯한 북한의 명절에는 중국 각지의 종북 성향 동포들이 집결하여 위대성연구토론회와 강연회 등 종북적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5. 현황
2008년 1월 기준 중국의 영구거류증 및 북한의 해외공민증을 발급받은 북한 공민은 1만명 정도이고(한국추산 7000명), 2011년 12월 이후 김정은의 후계승계 과정에서 선전선동활동을 전개하였다. 2012년 5월에는 월간지 『백두-한나』에 김정은의 작문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고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8]의 전문을 게재하였다.랴오닝성 선양시에서 조선족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모란문화예술양성쎈터(牡丹文化艺术培训中心)”를 열어 평양예술대학 우수졸업생과 북한 내부에서의 예술업계종사자들을 섭외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주로 미술, 노래, 춤 같은 걸 가르친다. 우수학생은 북한,일본 조총련과 중국에서의 공연과 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도 정상적으로 운영했는지는 모른다. 이 예술학원이 마지막으로 북한 매체에서 등장한 게 2018년이고 중국 매체에서는 2019년 말이다.
6. 중국 동포사회에서의 위상
재중총련은 북중우호를 의한 민간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의 조총련과 대비되어 설명하고 있으나 조총련만큼의 조직력이나 자금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9] 원래 중국 조총련에 가입했었던 사람들도 90년대부터 북한 경제가 무너지고 김씨정권이 더욱 막장화되는 동시에 남한의 체제 경쟁 승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조직을 탈퇴하여 남한과 연결되는 동포단체로 전향하거나 북한의 있는 친척들과 연락을 유지함과 동시 필요시 친척들을 방문하기 편하도록 가입해 놓고 조직활동에 참여를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김정은을 위한 선전선동활동을 전개하고 있다.7. 관련 문서
[1] '역사' 문단에서 후술.[2] 월간잡지, 공식 사이트의 이름이기도 하다.[3] 중국판 조총련이다. 민간조직의 성질을 띄고 있으나 그 뒤에는 북한 정부가 빠질 수 없다.[4] 중국어로 "조선교민(朝鲜侨民)"을 줄여서 말하는 거다. 중국은 남북한 정권 모두 인정하고 수교하였기 때문에 북한을 그들의 정식 이름인 "조선"이라고 부른다. 한국 국적의 교민은 "한교(韩侨, 한챠오)"라고 부른다.[5] 중국 동북지방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원적지가 대부분 오늘날 북한정권에 속하는 함경도,평안도 지역이라 랴오닝성에 가면 평안도 말씨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있고 지린성, 특히 옌볜주와 창바이현에 가면 함경도 말씨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헤이룽장성의 조선족들은 남한에 속하는 경상도 지방을 원적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경상도 말씨를 들을 수 있다.[6] "재중총련이 지난기간에 거둔 성과들을김정일총비서동지의 령도와 사랑의 결과”라고 역시 종북 해외동포조직에 걸맞게 김정일을 찬양하였다.[7] 그래서인지 중국과 남한에서의 유명세는 일본 조총련에 비해 거의 없는 편이다.[8] 그러나 중국에서는 한반도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어지간히 친북 성향이 짙지 않은 이상 조선족들마저도 눈길을 거의 주지 않는다.[9] 애초에 이 조직을 아는 사람은 중년층이거나 한반도에 대해 관심과 자신의 뿌리에 대해 강한 귀속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빼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