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13:49:38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1964년
빨간 마후라[1]
1965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6년
유정

저 하늘에도 슬픔이 시리즈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속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70)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84)
저 하늘에도 슬픔이
(2007)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Sorrow Even Up in Heaven
파일:저하늘에도포스터.jpg
<colcolor=black> 감독 김수용
제작사 (주)신필름
원작 이윤복
각본 신봉승
기획 최현민
촬영 전조명
출연 김천만, 신영균, 장민호
관람인원 285,000명
상영극장 국제극장
상영일자 1965.05.05

1. 개요2. 줄거리3. 흥행4. 수상5. 여담6. 속편·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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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명덕국민학교 4학년 이윤복(1951-1990)이 쓴 일기를 1964년 출판한 것을 원작으로 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1965년작 영화. 이후 속편이 제작되었고, 두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2. 줄거리

대구 명덕국민학교에 다니는 윤복(김천만)이네 가족은 집세를 내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 버려진 움막집으로 들어간다. 윤복은 노름판에 빠진 아버지(장민호)와 아버지의 학대를 못 이겨 집 나간 어머니(주증녀)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본다. 여동생 순나(정해정)와 다방을 돌며 껌을 팔던 윤복은 희망원 직원에게 붙잡혀 아동보호소로 끌려가지만 끼니를 거르고 있을 아버지와 동생들을 생각하며 그곳을 탈출한다. 이런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윤복은 그 날 그 날의 일을 일기장에 담는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헌신적인 김동식 선생(신영균)은 윤복의 사정을 알게 되고, 윤복의 담임(조미령)으로부터 윤복이의 일기를 건네받는다. 일기에 감동받은 동식은 후배 용웅(방수일)에게 서울로 가 출판사를 찾아봐줄 것을 부탁한다. 한편 윤복의 학급 친구 경애(전영선 분)와 혜자(김경숙 분)도 윤복이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 사이 윤복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얻으러 잠시 울산으로 떠나고, 여동생 순나는 돈을 벌어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그러나 동냥과 껌팔이, 구두 닦기 등의 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노름으로 돈을 잃고 자식들을 구박하는 아버지에게 지친 윤복은 어린 동생 태순(이지연)을 데리고 순나를 찾으러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그 사이 윤복이가 쓴 일기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이를 읽고 감명 받은 사람들이 윤복이네에 옷가지와 쌀 등을 보내온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윤복이는 태순과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하지만, 그를 찾으러 온 김동식 선생을 만나 신문사에서 제공해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학교의 대대적인 환대 속에 윤복의 아버지는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마침내 집 나간 어머니도 돌아오면서 윤복이네 집에 서광이 비친다.

3. 흥행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로, 당시 한국사회가 처한 가난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기 때문에 큰 흥행을 하며, 1965년 그 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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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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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품상
제2회
(1964년)
제3회
(1965년)
제4회
(1966년)
잉여인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시장

5. 여담

  • 제3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제5회 대종상에서 특별장려상(김용연)을 수상했다.
  •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구 사투리가 나오지만 성우들의 사투리 연기가 좋은 편은 아니다. 몇몇 단어들은 잘 살린 편.
  • 촬영은 실제로 대구에서 이루어졌으며, 당시 대구 시가지는 물론, 대구의 뒷골목과 빈민들이 많이 살던 앞산 비행장 일대 등 비참했던 1960년대 빈민가의 모습을 꽤 잘 보여준다.
  • 1965년 원작, 1984년 리메이크작에 등장한 독특한 생김새의 대구 명덕초등학교 구 본관은 아쉽게도 1985년 철거되었다.
  • 영화는 반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주인공 이윤복씨의 두 번째 일기장 '저 하늘에 이 소식을'을 보면 여전히 암울한 상황이다. 동생 이윤식씨의 회상을 옮겨보자면, 집을 산 나머지 수익은 정부 기관에서 위탁 관리를 했는데 1960-1970년대는 한해 물가상승률이 10% 이상인 경우가 허다해서 화폐가치 하락으로 한동안 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 주인공 이윤복은 동생들을 위해 고교만 마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유명세가 부담스러워 '재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90년 만40세를 채우지 못하고 간경화로 요절하고 말았다. #
  • 배우자는 이병숙 자녀는 1남1녀가 있다.
  • 2004년 동생 이윤식의 뜻으로 그의 일기 두 편이 재판되었고,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 같은 원작으로 오시마 나기사가 '윤복이의 일기'로 영화화한 적이 있다. # 본작과 달리, 일기를 차용해 한국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또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한국 문학이라고 한다. 때문에 일본에서도 지명도가 있다.
  •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이창동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이창동은 이윤복과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는데, 영화 촬영 당시 이윤복 학교를 로케이션하다가 출연했다고 한다.
  • 이윤복의 담임교사였던 김동식 목사는 2007년 8월 20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2013년까지 이 영화는 필름이 유실된 상태였다. 한국의 흥행에 힘입어 대만으로 수출되었지만 대만영상자료원에서도 찾지 못하다가, 대만 수출명으로 추정되는 《추상촌초심(秋霜寸草心)》을 목록에서 발견했다. 영화 타이틀은 수입 국가의 배급업자가 입맛대로 변경하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았다. 확인 결과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맞았고 다행히 중국어 더빙이 아닌 자막이라 한국어 사운드도 보존된 상태였다. 대만 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던 듀프 네거티브 필름[2]을 빌려와 2014년 복원하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영상 보기

6. 속편·리메이크



[1]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이라는 설도 있다.[2] 원본 네거티브 필름 → 마스터 포지티브 필름 → 듀프 네거티브 필름 → 극장용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