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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조선, 혁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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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모티브

1. 개요

조선, 혁명의 시대/등장인물이자 원래 역사에서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였던 전봉준으로 변화된 역사에서는 정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대한제국 제10대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된다.

2. 작중 행적

이선이 개화의 성과를 점검하는 순방에서 전라북도에서 처음 만났다. 다만 전봉준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 한양으로 올라와서 운현궁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이미 이선을 봤었다고. 원래 역사와 달리 개화당 정권은 지방의 구세력도 경찰, 군인, 교사 등으로 포섭하고 민생에도 신경 썼기 때문에 관료와 지주들의 횡포도 덜해서, 동학에 가입하지 않고 향회에서 농민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선은 원래 다른 이를 존중하는 인물이었던 데다가, 입에 발린 말들만 하는 지방 관료들에 질리던 차에 왕자인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현실을 얘기하는 그의 배포를 맘에 들어해서 토지 개혁을 약속하며 중추원 의관으로 올렸다. 조선 독립 전쟁 때는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하고 전쟁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삼남 농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북방 영토 개척이 시작되고 삼남 지방의 농민들과 동학 교도들이 대거 이주하자 북방개척위원이 된다.

대한제국이 세워진 뒤에 토지 개혁을 위해서는 더 큰 승리가 필요하다는 이선의 말에 북방으로 이주한 농민들을 지키기 위한 민병대 만인대를 구성하고, 지리멸렬한 청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면서 요동도와 연길도를 연결하는 영토를 점령하고 동양의 가리발디라며 국제적인 명성도 얻으나, 더 큰 문제로 비화되길 원치 않는 이선의 황명을 받아들여서 강경파들을 설득해서 만인대를 해산한다.[1] 잠깐 이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의화단 토벌 및 북벌 전쟁 후엔 농림대신이 되면서 진짜 토지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고, 황태자를 수행해서 러시아도 다녀오고, 진보당의 중진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원래 역사와 극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의원으로서는 그의 이력 때문에 개화당에서 집중 견제를 받고, 병사로 참전하는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서 해외 파병들을 반대하지만 상술한 과거 이력 때문에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며, 정작 자신들을 주 지지층인 농민들이라고 다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아서 당세를 확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2] 결국 세대 교체와 지지층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신한청년당과 연대하기로 결정한다. 신한 청년당이 대한사회당으로 본격적으로 좌파 정당의 길을 걷자 유학자로서 공산주의는 혐오하지만 결국 진보당이 천도교만의 정당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안중근, 여운형과 손잡고 반 개화당 동맹을 만들려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나이가 70살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정치 활동으로 40년 동안 이어진 개화당 독재를 끝내기 위해 반 개화당 동맹을 창설한다. 덕분에 1924년 선거에서 승리, 첫번째 농민-평민 총리라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총리로서는 이선의 명을 따라 몽골에 대한 온건책을 지지한다. 손문과 같은 민중 지도자로서 교류하고 손문이 사망하자 그를 추도하는 애도사를 직접 쓴다. 을축년 대홍수 때는 홍수에 대한 피해대책을 강구한다. 그러다 이선이 건강 관리를 위해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선위하자 총리로서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 결국 총리 자리를 안창호에게 물려준다. 그래도 정치 활동을 계속하기로 한다. 물러난 표면적인 이유는 선위와 을축년 대홍수의 책임이지만 그보다도 기술이 미친 듯이 발전하는 1920년대에는 자신보다 기술에 해박한 안창호가 더 좋은 총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3부 마지막화에 드러난다.

4부에서는 정계에서 은퇴했으나 진보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김구 거국내각의 용단개혁을 지지하기도 했으나 국민당과 신민당의 연합 결렬, 우경화된 국민당이 개화당과 연합하자 노동자와 농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지를 걱정하여 여운형을 지지한다. 그 후, 81세의 나이로 별세하고 전국적으로 추모열기가 형성되면서 노동당이 그 수혜를 받게 되었다.

3. 모티브

변화된 역사에서 평민에서 총리라는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캐릭터이고 역사적 행보를 비슷하게 따라가는 조혁시의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 인물답게 작가가 여러 인물들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가장 큰 모티브는 녹두장군 본인이지만 가리발디, 장 조레스, 아우구스트 베벨, 램지 맥도널드, 이누카이 쓰요시, 해방 이후의 조봉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70대에 총리가 되었음에도 1925년 기준으로 58살인 이선보다 훨씬 건강한데, 원래 건강한 농사꾼이었으며 총리가 되어도 계속 텃밭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술과 담배를 안하는 소식생활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1] 사실 이 과정에는 이선, 정부, 군부의 노림수가 있었다. 영토를 더 얻기 위한 명분과, 작중에선 합법화됐지만 기득권층 입장에선 껄끄러운 동학도들을 상잔시켜서 제거하는 등 장기말로 쓰려고 했던 것. 그러나 청군이 상상 이상으로 무능해서 만인대가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모두가 자신들의 판단 착오를 인정해야 했다.[2] 작중이나 현실에서나 농민들은 땅에 얽메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개화당에서도 이상설 등은 이를 간파하고 농민을 개화당의 지지기반으로 포섭할 수 있는데 개화당이 전봉준에 거부감이 너무 커서 멀리 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