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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혁

전창혁
全彰爀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827년
전라도 태인
(現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사망 1893년 6월경 (향년 66세)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본관 천안 전씨 (天安 全氏)[1]
일명/이명 전승록(全承祿), 전형호(全亨鎬), 전기창(全基昶)
묘소 부산광역시 백산
부모[A] 아버지 전석풍(1788?[3]~1877), 어머니(?~1886년 전)
형제자매[A] 최소 남자형제 1명
배우자 언양 김씨[5](1821~?)
자녀 장남 전봉준(1855~1895)
1. 개요2. 생애3. 가족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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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 중 한 명.

2. 생애

전창혁은 백제(百濟) 개국공신(開國功臣) 환성군(歡城君) 천안 전씨 시조 전섭(全聶)[6]의 후손이며, 서당이나 한약방 등을 운영한 것을 보면 조선 말기에 흔했던 몰락한 중인 또는 양반 집안으로 보인다.

그는 1827년 전라도 태인에서 태어났다.

1850년대 결혼해 1855년 전봉준을 낳았다.

이후 1893년 조병갑이 모친상을 당해 돈을 걷자 직접 대표로써 조병갑을 찾아 갔으나 곤장을 맞고 2~3일경 뒤 사망했다.

3. 가족

  • 가족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의외로 없다. 가족의 자료가 남아있는게 없고 가계에 관한 1차 사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 1차 재판 기록에서는 며느리와 2남 2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손자들은 전부 남평 이씨 이문기(李文琦)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고 손녀들은 전부 1851년 8월 16일에 태어나서 1877년 4월 24일에 죽은 여산 송씨 송두옥(宋斗玉)[7]의 딸[8]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손 전용규는 후손 없이 사망, 차손 전용현은 행방불명이 되어 남계 후손이 모두 단절된 줄 알았으나 전용현이 자신의 이름을 바꾼 채 족보와 호적도 은폐하여 숨어 지내면서 대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계 후손으로는 장손녀 전옥례는 아들 둘, 차손녀 전성녀는 딸 하나를 뒀다고 알려져 있다. 전옥례는 1963년 갑오 동학 혁명제가 열리자 세상에 전봉준의 딸이라고 나타났으며 1970년 사망했다. 2004년 특별법 제정에 따라 유족이라는 사람들 4~5명이 유족 신청을 했으나 전봉준의 시신이 수습되지 않아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하고 관련 증빙 자료가 없어 인정받지 못했다. 확실한 후손들이 남아 있어 유족으로 지정되고 제사도 받고 있는 다른 동학 간부들과 달리 전봉준은 후손이 불명확하여 천안 전씨 종친회(現 대종회로 개칭)에서 1954년 제사를 대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전봉준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별도로 제사를 지내고 지내고 있다고.

4. 관련 문서


[1] 23세손. 족보명 전기창(全基昶)(족보)[A] 출처[3] 족보가 오래돼서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A] [5] 광산 김씨 설이 있다.[6]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며 깊은 관계를 맺었던 백제의 초창기 개국공신이며 천안 전씨 집안은 백제 최후의 국보급 불상을 남긴 흔치 않은 백제인의 후손이다.[7]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8] 경허의 여동생이다. 묘는 전라북도 정읍시 산내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