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映海
1945년 2월 8일 ~ ([age(1945-02-08)]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제7대 경상남도의회 의원(창녕군 제2선거구, 무소속-열린우리당)을 지냈다.2. 생애
1945년 2월 8일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서 태어났다. 창녕반포초등학교와 영산중학교를 졸업한 뒤 영산농업고등학교[1]에 진학하였으나 3학년 때 중퇴하였다. 1966년 8월 27일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1969년 8월 2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2] 이후 한국전력주식회사 부산지점에서 근무하였고, 천일여객 박진정류소 소장, 고려여객 박진정류소 소장, 개미농장 대표 등을 지냈다.1978년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남지농업협동조합 이사, 개미장학회 회장, 영산실업 대표 등을 지냈다. 1981년 제1대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2년부터 1998년까지 남지농업협동조합 조합장으로 4차례 선출되었다.[3] 그리고 농협대학,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지방의회 최고지도자 정규과정 등을 각각 수료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3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3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김종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종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제7대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2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신창기 후보를 단 287표(1.51%p)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으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갈 혐의로 법정구속되어[4] 열린우리당에서 제명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상제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창녕군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유관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영원산업 대표를 지냈다.
2018년 3월 16일 제15대 대한노인회 경상남도 창녕군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5] 2022년 2월 3일 제16대 대한노인회 경상남도 창녕군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6]
3. 선거 이력
| 연도 | 선거종류 | 선거구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78 |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 경남 창녕 남지읍 | | - | 낙선 | |
| 1981 | 제1대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 [[민주한국당| 민주한국당 ]] | - | 당선 | 초선 | |
| 1991 | 지방선거 | 경남 창녕 3 | | - | 낙선 | |
| 1995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8,643 (47.38%) | 낙선 (2위) | |||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경남 창녕 2 |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 ]] | 8,494 (43.16%) |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 9,615 (50.75%) | 당선 (1위) | 초선 |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661 (21.50%) | 낙선 (3위) |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928 (23.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