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18년 9월 5일 |
함경남도 정평군 장원면 동양리 (현 함경남도 정평군 용흥노동자구) | |
사망 | 1982년 12월 24일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280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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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정재선은 1918년 9월 5일 함경남도 정평군 장원면 동양리(현 정평군 용흥노동자구)에서 태어났다.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였으며, 1939년 2월 동향 사람인 백신도(白信道)의 숙소가 있던 일본 도쿄시 고이시카와구(小石川區) 세치구치정(關口町) 후지야마관(富士山館)에서 곽민서(郭敏瑞)·김유진(金有璡)·박수섭(朴壽燮) 등의 동지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효과적인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또한 1940년 9월 재동경 한국인 민족주의 클럽인 여명회(黎明會)를 조직하고 종교와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강화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28일 여명회의 활동이 발각되어 동지인 백신도·이두표(李斗杓)·김관춘(金寬春)·최태연(崔泰淵)·박용근(朴龍根)[1] 등과 함께 도쿄 경시청에 체포되어 왼손 셋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병을 얻어 석방되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서 서울특별시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2년 12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정재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11월 16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