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3:46:17

제라스/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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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문 배경2. 장문 배경3. 해방된 자4. 사막의 후예5. 구 배경


출처

1. 단문 배경

제라스도 한 때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필멸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소용돌이치는 비전 에너지 그 자체인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가늠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지닌 그는 수천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제, 제라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초월한 마법사는 마력을 마음껏 해방해 맞서는 이는 누구든지 파괴해 버릴 것이다.

2. 장문 배경

"노예 시절의 시련이 영겁의 시간 동안 나를 단련시켰다. 이제 지배자가 될 차례다."

고대 슈리마의 초월한 마법사 제라스는 신비의 에너지가 석관의 파편에 둘러싸인 형상을 하고 있다. 그는 사막 아래의 고대 감옥 속에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다가 슈리마 제국의 부활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제라스는 응당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것들을 찬탈하고 신흥 문명 정복으로 자신만의 제국을 세우고자 광기의 질주를 시작한다.

수천년 전, 제라스는 슈리마의 이름 없는 노예 소년이었다. 포로로 붙잡힌 학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주어진 미래는 끝없는 노역뿐이었다. 어머니는 소년에게 수와 글을 가르쳤고, 아버지는 역사 속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렇게나마 쌓은 지식으로 아들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년은 여느 노예들처럼 굽은 등에 채찍을 맞으며 일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황제의 애마를 위한 기념비 건립을 앞두고 굴착 작업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했고, 그 자리에 방치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소년이 같은 운명을 겪게 될까 걱정한 어머니는 저명한 고분 건축가에게 소년을 도제로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처음엔 꺼리던 건축가도 소년의 세심한 관찰력과 천부적인 수학적, 언어적 재능을 확인하고는 그 기량에 감탄하며 소년을 받아 들였다. 그 이후로 소년은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소년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고, 건축가는 필요한 문서와 도면을 찾아오도록 소년을 거의 매일 같이 나서스 대도서관으로 보냈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문서를 찾던 중, 소년은 황제의 천덕꾸러기 막내 아들 아지르를 만났다. 아지르는 고대 문서의 어려운 구절을 읽어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황족에게 말을 거는 것은 죽음을 자청하는 일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소년은 어린 황자에게 다가가 복잡한 문법을 풀어주었다. 그 순간, 작은 우정이 싹을 틔웠고 몇 달 만에 두 소년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노예는 이름을 갖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아지르는 소년에게 제라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비록 둘 사이에서만 불렸지만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긴 뜻깊은 이름이었다. 아지르는 제라스가 황실의 노예로 들어오도록 손을 쓴 후 그를 자신의 직속 신하로 임명했다. 학구열로 뭉쳐진 두 소년은 도서관에서 함께 글을 읽으며 친형제만큼이나 사이가 돈독해졌다. 아지르의 곁에서 제라스는 문화, 권력, 지식의 현장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 갔다. 그리고 아지르가 언젠가 자신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위험한 꿈까지 꾸게 되었다.

어느 날, 연간 시찰에 나선 황제 일행은 유명한 오아시스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암살단의 기습을 받았다. 아지르는 제라스가 자객의 공격을 막아준 덕에 살아남았지만 형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아지르는 뜻하지 않게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노예 신분인 제라스는 아지르를 구한 것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바랄 수 없었지만, 아지르는 언젠가 그를 꼭 형제로 명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황제는 오아시스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수년에 걸쳐 단행하면서 온 제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황실의 역사와 정치구도에 밝은 제라스는 아지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황제는 총애하던 다른 황자들 대신 아지르가 살아남은 것을 원망했고, 그런 상황에서 황태자 자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더 급한 문제는 황후가 후사를 더 볼 수 있을 정도로 젊고, 그동안에도 건강한 아들을 여럿 출산했다는 사실이었다. 십중팔구 또 다른 황자가 태어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아지르의 죽음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학자로서의 근본을 타고난 아지르에게 제라스는 살아남기 위해선 무예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지르는 제라스의 뜻을 따랐고, 충언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입지를 승격시키며 공부를 계속해 나가라고 독려했다. 두 사람 모두 재능이 탁월했지만, 지식에 대한 제라스의 열정과 습득력은 유독 특별했다. 제라스는 아지르의 오른팔 자리에까지 올랐다. 일개 노예에게 그런 자리가 주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른팔로서 제라스는 아지르에게 상당한 영향(혹자는 ‘지나친 영향’이라고도 했다)을 미쳤고, 아지르는 제라스의 판단에 더욱 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제라스는 지식을 쌓는 데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비용이나 출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폐쇄된 도서관의 문을 열고 잊혀진 서고에 들어가 모래 깊숙이 묻혀 있는 신비주의자들에 대해 공부했다. 제라스는 그렇게 지식과 야심을 빠르게 키워 나갔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불미스러운 곳들을 여기저기 뒤지고 다닌다고 뒤에서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 수근거림이 신경을 거스를 정도가 되면 제라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의 목소리를 없애버렸다. 아지르는 제라스에 대한 세간의 의혹에 대해 함구했고, 제라스는 이를 자신의 방식에 대한 암묵적인 찬성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수년이 흐르는 동안 제라스는 어둠의 수단을 이용해 황후의 출산을 막고 있었다.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그는 황후가 잉태를 할 때마다 마력으로 태아를 없앴다. 또 다른 황자가 태어나지만 않으면 아지르가 안전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황후가 저주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제라스는 다시는 의혹이 불거지지 않도록 손을 썼고, 의심의 목소리를 낸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아지르를 살리기 위해선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다고 애써 합리화했지만, 노예 신분을 벗어나려는 그의 갈망은 자신만의 권력을 향한 불타는 야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황후의 산파들을 좌절시키려는 제라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슈리마에 새로운 황자가 태어났다. 그날 밤, 제라스는 그간 갈고 닦은 마술을 이용해 사막 깊은 곳으로부터 자연의 영혼을 소환하여 무시무시한 폭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황후의 처소에 연달아 벼락을 내려 황후와 갓 태어난 아기를 불길 속에서 죽게 했다. 황제는 서둘러 황후를 찾아 왔다가 두 손에서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제라스를 맞닥뜨렸다. 황제의 근위대가 제라스를 공격했지만 제라스는 황제와 근위병 모두를 불길 속에 가두어 버렸다. 제라스는 이들의 죽음을 속국의 마법사들의 탓으로 돌렸고, 아지르는 황위에 오르자마자 해당 속국에 잔인한 보복 조치를 내렸다.

황제가 되어서도 아지르는 이름 없는 노예였던 제라스를 늘 곁에 두었다. 제라스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아지르가 자신을 형제로 명하기에 앞서 슈리마의 노예 제도에 종지부를 찍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지르는 영토 확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 노예제 폐지에 대한 제라스의 의견은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제라스는 이 또한 슈리마의 도덕적 부패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생각했고, 약속을 져버린 아지르의 행태에 분노를 느꼈다. 아지르는 제라스에게 미천한 근본을 잊었냐고 화를 내며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제라스는 아지르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마음을 비추던 숭고한 불씨는 그날로 꺼져 버렸다. 제라스는 영토 확장을 지속해 나가는 아지르를 시종일관 곁에서 도왔지만, 그의 모든 행동 뒤에는 제국 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제국을 찬탈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레넥톤의 초월에 대한 유명한 전설을 살펴보면 태양의 사제단의 선택 없이도 필멸자의 초월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제라스는 초월의 힘을 가로채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태양 원판에 설 수 있었던 노예는 여태껏 아무도 없었기에 그는 아지르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아지르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부추기면서,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라는 허황된 꿈을 심어주었다. 제국의 역사 속 영웅들처럼 초월체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제라스의 끈질긴 설득은 오래지 않아 결실을 맺었다. 아지르가 초월 의식을 치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제 자신도 나서스, 레넥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월체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아지르는 거만하게 선언했다. 태양의 사제단이 저항했지만 기고만장한 아지르는 고문과 처형으로 대응하겠다며 복종을 명령했다.

마침내 의식의 날이 밝았고, 아지르는 제라스와 함께 초월의 제단으로 향했다. 제라스는 살아있는 불덩이를 가두어 놓은 마법 석관의 봉인을 일부러 깨뜨리고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나서스와 레넥톤을 보냈다. 불덩이 괴물이 석관을 탈출했을 때 제압할 수 있는 전사는 이 두 형제뿐이었다. 그렇게 제라스는 자신의 음모에서 아지르를 구해줄 수 있는 두 초월체를 멀리 보내 버렸다.

아지르는 태양 원판 아래에 우뚝 섰다. 그런데 사제단이 의식을 시작하려는 찰나, 예기치 못한 일이 펼쳐졌다.

아지르가 제라스를 향해 몸을 돌려 노예 해방을 선언한 것이다. 제라스뿐 아니라 온 나라의 모든 노예가 노역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지르는 제라스를 품에 꼭 안고 영원한 형제로 명했다.

제라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을 모두 얻었지만, 자신의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아지르가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그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많은 부분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그동안 치른 희생이 너무도 컸다. 심장을 단단히 감쌌던 증오가 조금씩 녹아들면서 돌이키고도 싶어졌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다가오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아지르는 사제단이 의식을 시작하고 태양의 경이로운 힘을 끌어내리자 몸을 돌렸다.

분노와 비탄이 뒤섞인 절규를 내지르며 제라스는 제단 위의 아지르를 폭발시켰고, 까만 재로 스러져 가는 옛 친구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지르가 있던 자리에 서자 태양빛이 온몸을 가득 채우며 그의 피와 살을 초월체의 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식의 힘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아지르에 대한 배반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태양의 무한한 힘은 사원을 전소시키고 도시를 초토화시키며 슈리마 제국의 파멸을 초래했다. 사막이 도시를 집어 삼키는 동안 백성들은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태양 원판이 추락했고, 수백년 역사의 제국은 하루 만에 사라져 버렸다.

도시가 불타는 와중에도 제라스는 태양의 사제들에게 마법을 걸어 초월 의식을 끝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몸을 가득 채운 방대한 에너지는 어둠의 마력과 결합해 어마어마한 힘이 되었다. 태양의 힘이 몸 속으로 들어오자 필멸의 육신이 사라졌고, 제라스는 신비한 힘으로 가득 찬 빛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제라스의 배반이 드러나자 레넥톤과 나서스는 도시를 흔드는 마력의 진원지로 서둘러 향했다. 그들의 손에는 꺼지지 않는 불덩이의 영혼을 담은 마법 석관이 들려 있었다. 초월한 두 형제가 초월의 제단에 가까스로 다다랐을 때 제라스는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는 죽음의 불길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초월체가 된 마법사에게 반격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에너지로 응축된 그의 몸을 석관에 가둔 뒤, 저주의 쇠사슬과 감금의 주술로 다시 한 번 굳게 봉인시켰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제라스는 필멸자 시절에도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이 힘은 초월체로서의 능력과 결합되어 불사의 괴력이 되었다. 그는 석관을 부수고 파편과 쇠사슬을 몸에 지닌 채 일어섰다. 레넥톤과 나서스는 그에게 몸을 던졌지만 아무리 힘을 모아도 신생 초월체인 그의 위력을 꺾을 수는 없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자 무너지던 도시가 다시 한 번 흔들렸고, 아직 모래 속으로 가라 앉지 않은 잔해마저 아스러졌다. 두 형제는 황제의 피만으로 열 수 있는 슈리마 최대 고분 ‘황제의 능’으로 제라스를 끌고 갔다. 레넥톤은 제라스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 나서스에게 입구를 봉하라고 외쳤다. 나서스는 참담한 심정으로 동생의 뜻을 따랐다. 그것이 제라스의 탈출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찬란했던 슈리마의 문명이 붕괴되는 동안 레넥톤과 제라스는 영겁의 어둠 속에 갇힌 채 끝나지 않을 싸움을 이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하의 레넥톤도 기력이 쇠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라스의 공격에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제라스가 지어낸 악랄한 거짓말과 환각은 그의 정신을 뒤틀었다. 이제 그에게 나서스는 제라스가 꾸며낸 대로 오래 전 자신을 버린 비열한 형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시비르와 카시오페아가 모래 사막 아래에서 ‘황제의 능’을 발견하고 봉인을 해제했을 때 제라스와 레넥톤은 모래와 잔해의 폭발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기억이 왜곡된 레넥톤은 야생 짐승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어딘가에 아직 형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무너진 고분을 뛰쳐나갔다. 전설 속에서 사라졌던 슈리마가 되살아나 사막 모래 위로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제라스는 오래 전 죽은 줄만 알았던 또 다른 영혼이 부활하는 것을 느꼈다. ‘아지르!’ 그 또한 초월체가 되어 있었다. 제라스는 운명을 직감했다. 둘 중 한 쪽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느 쪽도 평온을 누리지 못할 기구한 운명을.

잃었던 힘을 되찾고 지난 수천 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고자 제라스는 사막의 심장부를 찾았다. 빼앗겼던 힘이 빠르게 돌아왔고, 세상은 무서운 새로운 신을 숭배할 준비가 된 필멸자로 가득했다. 이제 남은 건 정복뿐이었다.

새로운 힘을 얻은 제라스는 더 이상 이름 없는 노예 소년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슬에 묶여 있었다. 잊혀지지 않은 과거의 그 사슬에...

3. 해방된 자

이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그의 일생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만 존재해왔다.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 왔으나, 기회는 단 한 번만 주어질 것이었다. 부패한 제국과 기고만장한 황자는 태양을 상징하는 저 멍청한 원판이 자신들을 수호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아주 오래된 비밀, 억겁의 세월 동안 극소수에게만 수여되었던 불멸의 열쇠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찬탈할 것이다. 불멸은 제라스의 소유가 될 것이다. 완벽한 복수가 수행되는 그때. 누구도 그를 노예로 취급하지 못할 것이다.

자유를 얻을 것이다.

제라스의 주인이자 제국의 황제인 그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매의 형상으로, 주인의 머리를 감싼 그 아름다운 금속판은 황제의 표정과 의중을 읽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영혼을 은폐하는 매의 투구, 황금의 가면 앞에서 제라스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가짜일지 모르지만 즐거움만은 진짜였다. 미치광이 황제를, 허영심에 가득한 황제를 모시며 그는 평생 노예로 살았다. 옥좌를 둘러싼 암투가 끝없이 이어지던 도중, 제라스에게 비전의 지식을 발굴하라는 저주스러운 임무가 내려졌다. 그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나, 그의 임무와 희생을 기억하는 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결실이 바로 이 초월 의식이라는 기괴한 가면 놀음이었다.

짐은 초월할 것이다! 황제의 선언이 왕국에 울려 퍼지자 제라스는 심한 모욕감에 사로잡혔다. 초월한다고! 비천한 우리들은 부서진 돌덩이에 매여 시간의 사막에 휩쓸릴 텐데? 안 된다. 더 이상은, 다시는, 절대! 선택받은 황금의 지배자들이 태양의 품에 안겨 신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노예가 해낼 것이다. 평범한 노예, 먼 옛적 사막에서 고귀한 핏줄의 아이를 구해주고 말았던 그 불운한 소년이.

노예들은 결코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초월한 존재들이 뼈와 살을 뚫고 영혼과 마음조차 훤히 들여다보며 역심을 품은 자들을 가려낼 수 있었기에, 자유라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도 노예는 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막의 변덕으로부터 어린 황자를 구해낸 제라스는 직접 황자에게서 자유를 약속받았다. 황금 태양 아지르는 자신을 구해준 소년을 친구로 삼고, 자유를 주리라고 서약했다.

그러나 아지르의 서약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 황실의 자손으로 자란 아이가 별생각 없이 내뱉은 약속 때문에, 제라스의 인생은 극심한 희망과 고통으로 뒤섞인 고문의 세월이 되었다. 생각해보라! 아지르가 어떻게 수천 년 된 규범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전통을, 자신의 아버지를, 운명을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결국, 젊은 황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지르는 제라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왔다. 그의 신분을 상승시켰으며,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했고, 그를 자신의 오른팔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자유를 허락하지는 않았다. 제라스의 성품과 재능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 앞에서 점차 왜곡되었다. 어째서,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인가? 악에 받친 제라스는 황제의 모든 것을 빼앗기로 했다. 제국과 불멸을 찬탈할 것이다. 가장 순수한, 최상의 자유를 만끽하고 말 것이다!

결전의 그 날. 제라스는 슈리마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무능력한 근위대 병졸들과 함께 황제의 뒤를 따랐다. 평소처럼 공손한 태도로, 불쾌할 정도로 거창하게 꾸며진 초월의 제단을 향해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불현듯 유쾌한 감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환희인가? 복수는 환희를 불러오는가? 제라스는 커다란 충격과 쾌락 속에서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내내 제라스를 괴롭혀온 그 주인의 낡아빠진 황금 갑옷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제라스를 향해 걸어왔다.

알아차린 건가? 대체 어떻게? 이 자기밖에 모르는 응석받이 꼬마가? 제라스만큼이나 자신의 손을 더럽혀온 이 독선적이고, 사람 좋은 체하는 황제가? 그러나 모두 들통났다 해도 이미 시위를 벗어난 화살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제라스는 모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두었다. 수십 년간 매수하고, 살해하고, 기만하고, 음모를 꾸며왔다. 심지어 저 괴물 같은 나서스와 레넥톤 형제마저 속여,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에서 떠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생각해 두지 않았다...

황금빛 태양을 상징하는 자, 세계의 어머니인 사막의 총애를 받는 자, 곧 존재를 초월할 불멸의 존재, 슈리마의 황제 아지르가 투구를 벗었다. 자부심 가득한 눈썹과 웃음을 머금은 눈빛을 드러내고,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가장 오래된 친구를 향해 돌아섰다. 황제는 형제에 대한 사랑, 벗에 대한 사랑, 함께 승리하고 함께 패배했던 시련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미래에 대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근위대가 무기를 뽑아든 채로 제라스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황자는 전부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제라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것인가?

그러나 이 갑옷 입은 머저리들은 경례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선 어떤 악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가 자유를 얻은 것을.

그토록 증오했던 남자가, 그토록 갈구했던 것을 허락한 것이다. 자유다. 황제는 모든 백성을 해방하였고, 이제 슈리마의 그 누구도 다시는 사슬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필멸자로서 아지르가 한 마지막 일은 자신의 백성들을 굴레에서 풀어주는 것이었다.

제단의 기반을 흔들 만큼 거대한 함성이 의식에 모여든 군중들로부터 터져 나와, 제라스의 대답을 집어삼켰다. 그것이 어떤 말이었든지 간에. 아지르는 투구를 쓰고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의 신하들은 아지르를 신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물론,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제라스는 거석으로 만들어진 태양 원판의 그림자 밑에 서 있었다. 제국을 파멸시킬 운명이 곧 닥쳐올 것임을 그는 알았다.

너무 늦었어, 친구여. 너무 늦었다, 형제여.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4. 사막의 후예

5. 구 배경

당신은 마법의 한계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마법의 길에 그 끝이 존재하긴 할까? 마력만 충분하다면 룬테라의 심장을 꿰뚫어 보고, 태고의 비밀과 우주 너머의 진실을 밝혀낼 수도 있지 않을까? 먼 옛날 이러한 믿음 아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인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제라스, 고대 문명 슈리마의 마법사였다. 그러나 제라스의 믿음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들이 평생에 걸쳐 마법을 수련한다고 한들 무한의 힘을 획득하기엔 역부족이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무한의 힘을 향한 길에만 매진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장애를 돌파해 나가던 그는 드디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절망적이었다.

한낱 인간의 육체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비전 능력을 감당할 수 없었고 빠른 속도로 소멸하기 시작했다.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꼼짝없이 죽어가던 제라스는 육신을 버리기로 하고 초월체로 거듭나기 위해 위험천만한 의식을 감행했다. 의식이 실패하면 죽음에 이르겠지만 성공한다면 불사의 몸을 얻게 될 것이었다. 곧이어 의식이 진행되었고, 육신을 벗어난 제라스의 마력은 슈리마 전역에 엄청난 손상을 입혔다. 의식이 종료된 후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자 그 속에서 순수한 비전 에너지 그 자체로 거듭난 제라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뼈와 살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거의 무한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이 초래한 대혼란은 그의 평판을 바닥까지 끌어내렸고, 슈리마의 다른 마법사들은 생명을 경시하는 제라스의 무심함이 왕국을 몰락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획득했으며 지독한 싸움 끝에 그들은 제라스를 마법의 석관에 가둔 뒤 지하 무덤 속에 봉인했다. 초월체가 된 제라스의 육신을 파괴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나마 이것이 최선이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여러 문명이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동안 제라스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수백 년이 흐르면서 제라스의 엄청난 힘 때문에 석관이 점차 부서져 나갔고, 걸려 있던 주문도 약해졌다.

제라스는 온 정신을 모아 강한 마법을 발산했고 마침내 감옥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석관의 중심부는 깨지지 않았고 그의 마력은 아직 부서진 조각들의 내부에 속박되어 있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던 제라스는 발로란의 넥서스에 이끌리게 되었고, 거기에 깃든 마법을 자신이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넥서스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소환사라고 알려진 하찮은 마법사들이었다. 제라스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감옥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고, 때문에 자신의 힘을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빌려주기로 하였다.

"나는 복수할 필요가 없다. 슈리마의 마법사들은 시간에 휩쓸려 스러져 갔으나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 제라스, 초월한 마법사

5.1. 리그의 심판

원문 링크

후보: 제라스
날짜: 10월 4일, CLE 21년

관찰

깨진 석관의 내면에 있는 인간 비스무리한 형체를 제외하면, 제라스라 불리는 존재가 한때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그의 존재는 차갑고 무감각하며,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강철의 가면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다.

그는 자신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전진한다. 제라스는 회고의 방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관문 앞에 섰고, 그가 팔을 한 번 움직이자 문이 열렸다.

회고

제라스의 등 뒤로 문이 닫히자 모래폭풍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난폭하고 따가운 돌풍이 그를 둘러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라스는 그 돌풍이 자신의 형체를 갉아먹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미 깨져 있던 그의 석관은 모래로 변해 사라졌고, 더 중요하게도 제라스는 자신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감옥이 모래폭풍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의 형체를 구성하던 마법력 역시 사라졌고 뼈와 살이 그것을 대체했다.

시간의 모래가 역류해, 그는 다시 인간이 된 것이었다.

모래폭풍은 점차 형태를 갖춰갔다. 사암으로 만든 벽과 천장까지 닿는 석상 모두 익숙한 광경이었다. 석상들은 가슴에 지팡이를 품고 있었고, 금으로 덮인 그들의 눈은 영원히 그들 밑에 있는 자들을 지켜봤다. 이곳은 바로 슈리마의 마법사들이 수련하는 곳, 송골매의 신전이었다.

제라스의 어렸을 적 동료들은 조상들이 지켜보는 아래에서 서로 대련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얼음, 그리고 다른 형태의 마법을 칼날의 형태로 바꿔 무기처럼 다뤘다. 이것이 바로 그들, 마법사들의 임무였다: 마법을 통달한 자들이 슈리마의 적들을 짓밟는 데 앞장서는 것.

제라스는 신전의 벽에 붙은 채 동료들의 마법을 지켜봤다. 순수한 마법만큼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없었다. 마법의 희미한 빛이 그를 부르는 듯 싶었으며, 제라스는 그 마법의 근원에는 수많은 비밀이 존재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제라스, 왜 다른 애들과 함께 수련하지 않아?"

그 목소리가 제라스의 집중을 깨뜨렸다. 그의 옆에는 동료 마법사 중 하나인 타비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웃음을 보자 제라스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아……. 음……. 관점의 차이라고나 할까."

"넌 슈리마의 마법사야," 타비아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우린 같은 길을 걷고 있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야?"

"그들이 마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점," 제라스는 다시 시선을 다른 수련생들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그들은 그것을 무기로 다루지만, 마법을 이해하지 못해. 마법을 제어하기 위해 힘을 쓸수록, 자신과 마법 간의 연결은 약해질 수 밖에 없어."

"마법은 혼돈 그 자체야. 너도 잘 알잖아. 마법사의 힘 없이는 단지 그것을 무엇을 파괴하느냐 파괴하지 않느냐만을 조종할 수 있을뿐이야."

"그렇지. 하지만 순수한 힘을 원한다면……."

제라스는 손을 펼쳤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서는 남색의 불꽃이 생겨났다. 그는 그 불꽃을 원하는 대로 변형할 수 있었지만, 제라스는 단지 그것이 불타게 놔두었다.

불꽃은 스스로 커져갔다. 머지 않아 그 불꽃은 그의 손 안에서 불타고 있었고, 그 순수한 힘은 제라스의 심장에 흐르는 듯 싶었다.

"단지 그릇이 필요할 뿐이지."

제라스는 불꽃에서 시선을 뗐고, 타비아가 자신의 마법이 아닌 자신을 여전히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웃었고, 그녀의 미모는 잠시나마 제라스의 주의를 마법에서 분산시켰다. 그들 사이에 있던 불꽃은 더 강하게 타올랐고…….

……다음 순간, 그의 주변이 흐트러졌다.

신전은 어두워졌고 타비아의 얼굴은 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제라스는 소환사들의 술수와 전쟁 기관을 기억해냈지만, 그를 엄습하는 고통은 또다른 기억을 끄집어냈다.

순수하고 무한한 힘이 그의 육체 내부로부터 그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제라스는 자신의 중심부에서 불타는 고통을 느꼈다. 너무나도 뜨거운 그 불길은 그의 육체를 벗어나, 그를 파멸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법은 그릇이 필요한 법이지만, 나약한 인간의 육체로는 한계가 있었다.

제라스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 유한한 육체 따위로는 나를 구속할 수 없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그의 손끝에서는 마법의 불꽃이 튀어나와 허공에 룬 문양을 만들었다.

눈부시도록 불타는 백색 마법은 머지 않아 그를 감싸는 돌풍으로 변했다. 그 위력으로 인해 동상 하나가 부서졌고, 그것이 조각나자 신전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라스는 자신의 모든 힘과 의지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문은 그의 제어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돈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라스! 그만둬!"

타비아.

제라스는 몸을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타비아는 한 조상의 동상 앞에 서있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창백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대조를 이루었다.

"이래서는 안 돼." 그녀가 불타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 주문은 너를 집어삼키고 말거야. 벌써 넌 죽어가고 있고, 넌 그것이 너를 죽이도록 방조하고 있어!"

제라스는 쉰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타비아, 제발, 넌 이해하지 못해……."

제라스의 마법은 소용돌이치며 폭풍처럼 그들 위에서 고동쳤다. 제라스는 이미 그것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음을 인지했다.

타비아 역시 애원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이런 걸 필요로 하지 않아. 지금이라도 멈추면 너를 치유할 수 있어. 다시 살 수 있어. 내가 널 도와줄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돌아와."

제라스의 의지가 약해졌다. 어쩌면 그녀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제라스는 마법사들과 마법,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입힌 고통으로부터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이 그를 내면으로부터 갉아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타비아는 뭔가를 다시 말하려고 했지만, 제라스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 뒤에 있던 동상이 흔들리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타비아! 안돼!"

타비아는 비명을 질렀고, 나머지 동상들과 신전의 벽이 제라스의 주문을 이기지 못한 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그의 주문을 조종할 수 없었다. 혼란의 중앙에서 제라스는 얼굴을 손에 파묻으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순간이나마 마법으로부터의 탈출을 생각해 봤던 제라스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문을 멈추기에는 이미 늦어있었다. 이제 그 주문은 그를 집어삼킬 것이 자명했고, 그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식을 마무리짓는다면 모르는 일이었다.

제라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일부는 죽음을 반겼지만, 더 큰 자신의 일부는 자신이 왜 그만큼 마법을 연구했는지를 기억했다. 다른 마법사들을 제한하는 나약한 육체의 구속을 벗어나, 더 위대한 뭔가가 되기 위해 그만큼 연구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의 육체를 파고드는 나약함을 뿌리치며 제라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영원한 존재가 되리라……. 아니면 죽을 것이니라.'

그는 팔을 머리 위로 뻗었고,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마법 덩어리는 다시 어느 정도 일정한 형태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덩어리는 꾸준히 팽창하여 나머지 동상들과 신전의 벽을 허물었다. 자신 주변에 무너지는 신전으로부터 시선을 돌린 채, 제라스는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그 주문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였다.

한 순간, 그 마법의 혼돈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창백하고 야윈,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주문력이 그를 덮쳤고, 제라스의 눈은 공포로 가득차 있었다.

다음 순간, 혼돈이 가라앉았고 제라스는 회고실에 돌아와 있었다. 얼굴을 가린 소환사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 방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당신은 죄수나 다름없군."

"사소한 애로사항일 뿐이다." 제라스의 대답은 방 전체 내부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주문을 제어했을 때 생각했던 미래는 아니었겠군. 제라스, 그 결정을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는다."

소환사는 두건 내에서 제라스를 노려봤다.

"자신, 자신의 종족,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그 모든 것을 힘을 위해 희생했지만, 이제 그 힘에 닿을 수도 없는 처지군."

"앞서 말했지만, 사소한 애로사항일 뿐이다. 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왜 리그에 합류하고 싶어하는가, 제라스?"

이 질문에 제라스는 잠시 멈췄다.

"이 감옥은 슈리마의 마법사들이 내가 추구하던 것이 뭐였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다시는 그 누구도 나의 목적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리그에서의 활동은 그것에 대한 일종의 선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환사는 그를 잠시 응시한 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속마음이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제라스는 몸을 돌렸다.

"난 더 이상 당신이 본 순진한 견습생이 아니다. 내 과거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