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4:01:53

제르비뉴

제르비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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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cd109>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No. 27
제르비뉴
Gervinho
본명 제르베 야오 쿠아시
Gervais Yao Kouassi
출생 1987년 5월 27일 ([age(1987-05-27)]세)
안야마
국적
[[코트디부아르|]][[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 체중 68kg
포지션 윙어[1]
주발 오른발
유스 클럽 ASEC 미모사 (1998~2002)
투모디 FC (2002~2004)
KSK 베베렌 (2004~2005)
프로 클럽 KSK 베베렌 (2005~2007)
르망 FC (2007~2009)
LOSC 릴 (2009~2011)
아스날 FC (2011~2013)
AS 로마 (2013~2016)
허베이 화샤 싱푸 (2016~2018)
파르마 칼초 1913 (2018~2021)
트라브존스포르 (2021~2022)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2022~ )
국가대표 파일: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88경기 23골 (코트디부아르 / 2007~ )


[clearfix]

1. 개요

코트디부아르 국적의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소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아루나 코네 등과 같은 안야마 출신이다. 육성의 명문인 ASEC 미모사 기반으로 5년간 소속, 브라질 출신 감독으로부터 제르비뉴라는 포르투갈어 별명을 받았다.

2002년 투모디 FC로 이적하고 투레 형제(콜로와 야야)의 동생 이브라힘 투레와 같은 팀원이 되었다. 투모디 FC에서 2시즌 보낸 후 벨기에 쥬필러 리그 의 KSK 베베렌으로 이적하였다.

2.1. 르망 FC

2007년 7월 2일, 프랑스의 르망 FC와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2008년 5월에는 프랑스의 AS 모나코, 파리 생제르맹 FC, ​​올랭피크 마르세유, 잉글랜드의 아스날 FC가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아스날은 오랫동안 제르비뉴에 대한 관심이 있어 벨기에에서 뛰던 2006-07 시즌에도 영입 제안이 있었다.

르망 FC에서는 2시즌 동안 59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하였다.

2.2. LOSC 릴

2009년 7월 21일 이적료 600만 유로로 LOSC 릴과 계약하였다. 2010-11 시즌은 15골로 득점랭킹 5위를 기록하였고, 10어시스트도 기록하며 릴의 2관왕에 기여하였고,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3. 아스날 FC

2011년 7월 11일 이적료 추정 1060만 파운드에 아스날로 이적하였다. 뉴캐슬과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선발출전하며 데뷔했으나 그 경기에서 보복행위로 상대 선수의 얼굴을 가격해 퇴장당하면서 3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결국 맨유 원정 8:2 굴욕적인 대패 때 경기장에 없었다.

2시즌 45경기에 나와 9골을 기록하며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시간으로 2021년 8일 영국 일간지 더선이 선정한 '21세기 아스널 최악의 베스트11'에 뽑힐 정도.

2.4. AS 로마

2013년 8월, 릴 시대의 은사, 루디 가르시아가 이끄는 AS 로마로 이적하였다. 제르비뉴를 내주고 외질을 얻은 벵거[2] 이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로마를 캐리하고 있다. 팬들에게 제빡신이라 찬양받는 중이다.

2014년 9월 2018년까지 재계약했다. 2014년 10월 21일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에서 1-7로 참패를 당하는 중에 홀로 고군분투하며 1득점을 기록, AS 로마 공격진의 에이스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14-15시즌은 네이션스 컵도 갔다오고 하면서 컨디션이 떨어졌고, 고속 드리블러가 컨디션이 떨어지고, 패스를 안하면 답이 없다를 증명하며 폭망, 시즌이 끝난 후 중동에서 이적제의가 많이 왔고 알 사드와 15m에 계약을 체결할 뻔 했으나, 무산되었다.

그런데 무산된 이유가 제르비뉴의 과다한 요구[3] vs 구단과 제르비뉴 간 기술적인 협상 실패로 나뉘면서 한 때 많은 로마니스타들이 씁쓸해했다.[4]

우여곡절 끝에 잔류한 15-16시즌, 초반에는 새로 영입된 이아고 팔케 에게 주전을 내주면서 벤치워머가 되고 말았다.

뤼디가 드디어 양아들 제르비뉴를 포기하나 싶었으나... 어느새 주전 자리를 다시 꿰차고 나왔다! 특히 팔레르모 전 2득점은 두 골 다 제르비뉴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간지가 더해진 멋진 장면들이니 제르비뉴의 팬이라면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모하메드 살라 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로 맹활약하며 귀신같이 부활했다. 에딘 제코가 중앙에서 어그로는 잘 끌어주고, 패스도 잘 내주고 하지만 골을 못 넣고 있는데, 이런 제코의 어그로를 틈타 뒤쪽 공간으로 미친듯이 침투-폭풍드리블-패스나 슛으로 이어지는 뤼디스타일의 축구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살라와 함께 좌우측면에 고속 드리블러가 두 명이나 있으니 시너지 효과도 있는 듯 하고.. 여튼 귀신같이 부활해서 잘 해주고 있다.

뤼디 가르시아가 경질됨에 따라 제르비뉴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2.5. 허베이 화샤 싱푸

결국 스팔레티 체제의 로마에서 더이상 자리가 없음을 본인도 알았던지 1월 이적시장에서 중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2년 동안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2.6. 파르마 칼초 1913

2018년 8월 18일 파르마 칼초 1913으로 이적이 발표되었다. 왕년에 빅클럽에서 뛰던 클래스가 있어서 시즌 초부터 승격팀 파르마의 중위권 입성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019년 2월 2일 유벤투스 상대로 2골을 넣으면서 자기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팀은 유벤투스와 3:3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챙겨갔다.

2018-19 시즌, 이적 후 첫 시즌임에도 30경기 11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잔류에 큰 공헌을 했다.

2019-20 시즌, 전방에서 데얀 쿨루셰프스키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32경기 9골 4도움을 기록, 팀이 11위를 기록하며 승격 후 계속 잔류하는데 기여했다.

2.7. 트라브존스포르

2021년 5월 26일,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2년 계약.

하지만 2021년 11월에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팀은 우승하며 경기를 얼마 뛰지 않았음에도 커리어에 우승이 추가되었다.

2.8.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2022년 7월 16일, 아리스 테살로니키 FC로 이적했다. 2년 계약.

2023년 7월, 세리에 D의 트라파니 칼초와 링크가 뜨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U-23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에서는 주장을 맡아 2007년 9월의 베이징 올림픽 아프리카 예선 U-23 말리 대표 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으며 승리에 공헌하였다. 같은 해 11월, 앙골라와 카타르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처음으로 코트디부아르 A 대표팀에 소집되었고[5], 앙골라 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09년 11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의 기니 전에서 A 매치 첫 골을 포함한 2골을 넣었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 C조 일본과의 1차전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어진 콜롬비아와의 2차전에서도 2:0으로 뒤진 후반 28분 만회골을 넣었으며 마지막 그리스전에서는 보니의 동점골에 기여했으나 팀이 후반 추가시간 요르고스 사마라스에게 페널티 킥 결승골을 허용하며 너무도 아깝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5년엔 야야 투레, 윌프리드 보니와 함께 조국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여담으로 정성룡이 85M 장거리 득점을 올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2008년 7월 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평가전에서 코트디부아르 올림픽 대표팀이 한 점 만회하는 득점을 올린 선수가 바로 제르비뉴이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좌측 윙어로 뛰었던 2선 자원으로, 2000~2010년대 코트디부아르를 대표하던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6] 코트디부아르에서 디디에 드록바와 함께 키 플레이어로 자주 뽑혔는데 드록바는 전방에서의 강력한 몸싸움과 제공권을 위시한 신체 능력이 뛰어났고, 제르비뉴는 속도와 탄력을 위시한 운동 능력에 두각을 드러냈다.

어린 나이때부터 속도 하나만큼은 뛰어났다고 평가를 받을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를 자랑하는 준족이자 스피드스타였다. 단순히 최고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가속도, 민첩성 부분에서도 매우 뛰어났으며, 드리블 시에는 자신의 속도를 살리는 직선적이면서도 기술적인 돌파를 구사했다. 제르비뉴는 드리블 시 순간적인 폭발력과 상대가 예측 못할 빠른 턴 동작을 이용해 수비를 제치는 패턴을 자주 보여줬는데, 굉장히 단순한 패턴이지만 위협적이었다.

속도를 이용한 돌파에 능한 드리블러지만, 주로 뛰던 좌측에서 접고 들어와 오른발 슈팅을 가져가는 인사이드 포워드 기질도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든 드리블로 뚫어보겠답시고 탐욕스럽게 공을 끄는 선수는 아니었고 동료에게 패스하는 이타적인 면모 또한 있었다.

다만 일관되지 못한 리그별 활약을 보인 이유는 실력적인 부분 외에 멘탈 문제가 지적된다. AS 로마 시절 은사였던 뤼디 가르시아는 제르비뉴에 대해 '많은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선수'라고 코멘트 한 바 있다.

5. 여담

  • 이마가 보통 넓은 사람에 비해서도 몇배는 넓은편인데 머리에 쓰는 두건을 벗으면 뒤집어 놓은 부채꼴 모양으로 민머리가 훤하다. 이때문에 한국 축구팬 한정으로 제빡이라는 별명이 있다.프레데터
  • 해외축구를 오래본 팬들이라면 콧물로도 이선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종종있다. 노리치와 경기중에 콧물을 풀었는데 정말로 어마무시한 크기에 콧물을 잔디위에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1] 윙어가 주 포지션이지만 최전방 공격수와 세컨드 스트라이커도 소화 가능하다. 다만 몸싸움 등이 약해 공격수의 부재 등의 비상시에만 뛴다.[2] 제르비뉴를 로마에 넘기면서 로마가 에릭 라멜라토트넘에 팔 수 있었고, 토트넘이 라멜라를 영입하면서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확정되었고, 베일의 이적으로 이미 아스날 FC와 개인 합의를 마친 메수트 외질이 아스날로 올 수 있었다.[3] 가족 비행기 티켓 제공 등이라고 한다.[4] 나이를 보면 저 정도로 오퍼를 받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15-16시즌에 갑자기 부활하기 시작하는데...[5] 이때 발탁한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前 감독인 슈틸리케다.[6] 4-4-2 포메이션에서는 투톱으로서 로빈 반 페르시 혹은 디디에 드록바와 같이 플레이할 수 있었으나, 클럽이나 국대나 4-3-3을 주로 선호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윙어로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