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15:49:14

제이크(교육인)

엘리트오픈스쿨 School Director
Jake Lee
파일:Jake Profile 2023.jpg
<colbgcolor=#0067a3><colcolor=#fff> 출생 1974년 2월 ([age(1974-02-05)]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소속 엘리트오픈스쿨
학력 Yemyung Graduate School (신학 / 석사)
독학사 (영문학 / 학사)
Reinhardt University (Communications / 중퇴)
경기대학교 (금속공예학 / 중퇴)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일본어과 / 6기)
한성중학교 (1989년 졸업)
성산초등학교 (1986년 졸업)
현직 엘리트오픈스쿨 스쿨 디렉터 / 상임이사 (2019~)

1. 개요2. 전반적인 생애3. 기독교인으로서의 생애4. 주요 경력5. 찬양사역 주요 경력6. 선교사역 경력7. 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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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캘리포니아 에 위치한 Elite Open School 의 스쿨 디렉터이며, 서울 신사동에서 원격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 명문대학교 입학, 이스포츠 프로게이머 육성, 골프/펜싱/스키/테니스 특기생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교육하는 동시에 미국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는 과정을 엘리트오픈스쿨에서 진행하고 있다.

2. 전반적인 생애

1974년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마포구에서 자랐으며, 도화동 - 연남동 - 망원동 - 성산동, 이 순서로 이사를 다녔다. 1984년 한강홍수 때 살고 있던 2층집이 수해를 입어 그때 헤엄쳐서 탈출하다 생긴 피부질환이 아직도 남아있다. 한성중학교시절에는 비교적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나 대일외국어고등학교에 부모님의 강요로 진학한 이후부터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탓"에 성적이 잘 안나온다고 판단, 평소 취미였던 노래에 심취하여 학교 밴드생활에 더 집중했다고 한다. 고2 후반기부터 공부에 다시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만 3학기 동안 떨어진 성적때문에 내신이 좋지 않았고, 1992년 대입 실패후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의 밴드 생활은 매우 피폐했었고, 하루에 1000원으로 버티는 생활도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그때 단골이었던 혜화동 둘리네 분식[https://naver.me/Gozor8H3] 에서 먹었던 한그릇에 200원이던 라면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1993년 4월에 뒤늦게 미술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여 홍대입구의 신기원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 준비를 시작, 실기 준비 8개월만에 대학입시에 성공하여 1994년에 경기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에 입학했고,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되었다. 1995년 말에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유학에 대한 마음이 생겼고, 부모님의 도움없이 스스로 유학준비를 한 후 1997년 미국의 조지아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음악과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요즘으로 말하면 크리에이터 기질이 다분했기에 방송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커뮤니케이션/저널리즘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하는 분야가 예측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발생한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한국으로부터 학비지원이 끊기게 되었고, 학교를 다니며 수십종류의 아르바이트로 생계와 학비를 충당하는 고학생의 생활이 시작 되었다. 이 시기에 했던 직업은 마트 포장부서, 생선부, 정육부, 초밥제작, 세탁소, 꽃집, 학교 방송실, 카페 서빙, 식당 서빙, 우편물 배달, 휴대전화 판매 등이 있고, 우연찮게 인연이 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애틀란타 지부에서 현지 직원으로 채용되어서 그 이후 유학생활에 큰 도움이 된 통역관의 길을 걷게 된다. Reinhardt University를 무려 6년이나 다니면서 학부 학점을 130점 이상 취득하고도 결국 졸업을 하지 못했는데, 미국 생활이 너무 힘들었으면서도 미국에서 뭔가를 이루려면 신분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졸업을 위한 필수 학점 1~2개를 듣지 않고 다른 전공 수업을 계속 들으면서 학생신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재미교포 2세를 만나 결혼하면서 신분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직장 및 사업관계로 결국 졸업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혼 후 캘리포니아로 이사하여 4~5년간 금융관련업에 종사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계기가 된다. 배우자가 UC 버클리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미국에 살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덕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많은 학원과 영어유치원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해서 그제서야 졸업장이 쓸모있다고 생각했다고. 2010년부터 한국에서 다시 생활하면서 그동안 몸담았던 금융업계에 대한 환멸때문인지 유학생 시절 쌓아두었던 인맥을 통해 통번역관으로서 일을 시작했고, 그 후 배우자가 시작한 영어수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영어학원으로 변모해야만 하는 시기에 그 학원의 운영을 맡으면서 교육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엘리트교육그룹 소속의 학원을 맡아서 운영하다가 2019년 그룹의 이사로 취임한 후 한국에 엘리트오픈스쿨의 리모트 캠퍼스 설립을 주도했다. 2019년 가을부터 이스포츠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하면서 이스포츠 관련 여러가지 활동을 시작하였고, 2022년 NASEF[https://www.nasef.org/], '네이세프'라고 발음하는 미국의 학생 이스포츠 협회의 전문 교육인 과정을 수료하고 정식 Fellow가 되었다. 엘리트오픈스쿨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이스포츠 국제 고등교육기관 이었던 탓에 거의 모든 업무와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던 길이었기에, 엘리트오픈스쿨의 모든 직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5년이 지난 2024년 현재, 이스포츠 특기생들이 오전에는 학업에 매진하고 오후에는 T1 Esports Academy에서 훈련을 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3. 기독교인으로서의 생애

할머니가 기독교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언더우드선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이화고녀(이화여고의 옛 이름)를 졸업하고 전쟁후 리라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고 한다. 교감선생님까지 역임을 하셨고, 공덕동에 있는 공덕감리교회에서 여성장로 직위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윗 세대부터 기독교 집안이었던 관계로 교회는 어려서부터 다녔지만 중학교때 선배들과의 다툼으로 인해 교회를 부모님 몰래 빠지고 만화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그 시기에 만화책을 통해 잡다한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한다. 대일외고 진학후에는 공부(?)와 음악생활로 교회는 거의 다니지 못했고, 1992년 당시 다미선교회 사건으로 뒤숭숭한 상황이 겹쳐서 신앙생활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1994년 봄,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처음 나간 교회가 동부이촌동의 온누리교회였는데, 밴드를 아직 하고 있던 음악인으로서 교회가 보유한 어마어마한 음향장비와 악기들 때문에 교회가 매우 쿨한 장소라고 여기기 시작했다고. 또 그 교회 서점에서 당시에는 일반 서점에서 찾기 힘들었던 해외 찬양 테이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테이프들을 구매해서 듣기 시작하면서 Praise & Worship이라는 기독교 음악 분야에 푹 빠졌다고 한다. 당시 많이 들었던 음반들이 아직까지고 기독교 음악계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호산나 인테그리티[https://en.wikipedia.org/wiki/Integrity_Music] 음반들이었고, 그중에서도 Don Moen, Ron Kenoly, Alvin Slaughter 등의 찬양인도자들의 스타일과 장르, 인도자들의 멘트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영향으로 미국 유학을 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미국 유학중의 바쁜 생활속에서도 한인교회, 백인교회, 흑인교회, 히스패닉교회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교회를 다녔고, 가능한 한 그 교회들에서 찬양을 함께 했다고 한다.
찬양인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7년경 부터인데, 애틀란타 조지아의 기독청년연합회 (아기연)에서 찬양인도를 하면서 한국인 1.5세와 유학생들을 모아 정기모임, 찬양집회등을 개최하였으며, 사역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을때는 4개의 교회에서 찬양인도, 드럼연주, 기타연주, 음향엔지니어, 합창단 활동까지 동시에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애틀란타에서 사역했던 교회는 호산나교회, 새예루살렘교회, 아틀란타연합교회, 제일장로교회, Victory World Church등이 있고, 초교파 사역때는 약 40개의 교회에 방문해서 찬양집회를 인도했다고 한다.
결혼후에는 배우자가 다니던 백인 위주의 교회인 Cornerstone Church[https://www.ccanaheim.com/]로 갔는데, 당시 사업의 어려움으로 힘들었던 시기여서 찬양사역은 다 내려놓고 싶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교회의 사모님 - 이자 목사님이셨던 - 이 아무런 배경지식없이 음향 오퍼레이션을 맡기셔서 "뭘 믿고 나한테 맡기시나?"라는 의문을 품은채로 음향 메인 오퍼레이션을 바로 다음주부터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애틀란타 시절 매주 3차례 이상 직접 교회들의 모든 음향세팅 및 튜닝, 운영까지도 직접하면서 찬양인도까지 했던 노가다형 찬양인도자였기에 교인들이 느낄 정도로 소리가 좋아졌다고. 이후 완전히 코가 꿰어버린 형국이 되어 음향, 베이스, 기타, 드럼, 찬양인도 등으로 열심히 봉사했다. 재밌는 사실은 이 교회에 토종 한국인은 혼자뿐이었고 - 배우자도 재미교포 2세 - 그 환경 덕분인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미국문화에 대한 부담감/거부감이 거의 다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0년에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그 동안 쌓아왔던 내공을 바탕으로 정규 음악인들과의 교류가 잦아졌고, 오히려 기존 교회 찬양사역자들 보다는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과 더 많이 교류를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COMMON GROUND(커먼그라운드)인데, 한국 최고의 펑크밴드로 유명한 이 친구들이 알고보면 대부분 기독교인이라는 것. 밴드의 리더인 Jay Kim, 트럼펫 주자인 DK Slow, 기타리스트인 Jane과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찬양팀으로도 같이 정기적으로 찬양을 하고 있다.
2015년에는 Jane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게된 계기 중 하나인 폴 잭슨 주니어와의 듀엣 음원 녹음에 스튜디오 헌팅 및 소통을 함께 도와주었고, 음반 제작 현장에서 카메라맨(?)으로도 함께 했다. 꽤 오랫동안 커먼그라운드의 멤버들과 목요일마다 찬양집회를 해 왔는데, 코로나 발생후 zoom으로 집회가 전환되면서 zoom의 당시 한계였던 음질때문에 드럼, 베이스, 트럼펫, 일렉등이 빠지고 피아노와 퍼커션, 어쿠스틱 기타로 집회를 진행하다가 결국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찬양집회를 하게되었고, 2024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국 귀국후에는 기장교단의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쭉 하고 있었는데 2017년에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 목사의 권유로 약 3년간 서초동에 있는 예수소망교회(백석)에서 찬양인도를 하였고,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해체된 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커먼그라운드의 트럼펫 주자가 연결해 준 강남구의 한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2022년 9월까지 하였고, 그 이후 현재 출석중인 용인제일교회[http://www.jesuslove.or.kr/main/main.html]로 옮겨서 매우 평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랜 경력때문인지 용인쪽으로 교회를 옮기면서 용인제일교회에 가게 된 이유가 무대위의 LED 스크린 사이즈 - 매우 거대하다 - 와 D&B Audiotek 의 스피커, SSL사의 디지털 콘솔이라고 한다. 물론 담임목사님 말씀도 매우 좋다.
교회 출석한지 2년이 되어가고는 있지만 찬양사역쪽은 멈춘 상태이고, 학교 업무가 바빠진 탓과 자녀 교육때문에 당분간 쉴 예정.

번외로, 기존에 출석하던 예수소망교회 담임목사님의 부모님이 설립한 선교재단이 수행하고 있는 캄보디아 선교를 찬양으로 돕고있다.

4. 주요 경력

  • 2019 ~ 2024 엘리트오픈스쿨 스쿨디렉터
  • 2016 ~ 2019 엘리트알파어학원 원장
  • 2012 ~ 2016 Victory English Academy 원장
  • 2010 ~ 2012 프리랜서 통번역가 (대표 번역사례 - 음향기기 기술문서등 [6])
  • 2007 ~ 2010 Marketing Director at Scalla Advisors, AFA Financial
  • 2005 ~ 2007 Sales/Training Manager at Partners, Inc
  • 2002 ~ 2005 Owner at Air & Page Max (MetroPCS)
  • 1999 ~ 2002 Translator/Guide at KOTRA, Atlanta
  • 1998 ~ 1999 Sales Specialist at Verizon

5. 찬양사역 주요 경력

  • 2013 ~ 2024 온예찬 목요찬양집회 인도
  • 2021 ~ 2024 캄보디아 목회자 수요성경공부 찬양인도(크메르어)
  • 2017 ~ 2020 C국 찬양사역자 연합 Worship Conference 찬양집회인도 / 음향클리닉 / 보컬클리닉 / 선곡 클리닉
  • 2021 ~ 2022 풍성한교회(대신교단) 찬양인도
  • 2017 ~ 2020 예수소망교회(백석교단) 찬양인도자 및 예배디렉터
  • 2014 ~ 2017 예수로교회(기장교단) 찬양인도자
  • 2012 ~ 2014 원앙교회(기장교단) 찬양인도자 / 음향시공 / 음향운영
  • 2010 ~ 2012 올리브교회(기장교단) 찬양인도자 / 음향 / 영상
  • 2006 ~ 2009 Cornerstone Anaheim 찬양인도 / 음향 / 영상 / 베이스 / 드럼
  • 1999 ~ 2005 Victory World Church Choir
  • 1999 ~ 2004 애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찬양인도자 / 어쿠스틱기타 / 음향
  • 2000 ~ 2004 애틀란타 제일장로교회 드럼 / 어쿠스틱기타
  • 1998 ~ 2004 애틀란타 기독 청년 연합회 Music Director
  • 1998 ~ 2000 애틀란타 호산나교회 드럼 / 찬양인도자 / 음향시공 / 영상시공

6. 선교사역 경력

  • 2024년 3월 캄보디아 오지 교회 사역 - 찬양인도 및 음향, 영상, 네트워크 장비 수리
  • 2023년 12월 캄보디아 목회자 컨퍼런스 찬양인도
  • 2020년 1월 C국 수도 찬양사역자 연합 세미나 인도 - 찬양집회 인도, 보컬트레이닝, 선곡 클리닉
  • 2019년 4월 C국 수도 찬양사역자 연합 세미나 인도 - 찬양집회 인도, 보컬트레이닝, 선곡 클리닉
  • 2018년 10월 C국 수도 및 남부지역 찬양사역자 연합 세미나 인도 - 찬양집회 인도, 보컬트레이닝, 음향 클리닉, 선곡 클리닉
  • 2017년 9월 필리핀 선교 with 컴패션
  • 2016년 4월 키르키즈스탄 선교
  • 2015년 3월 에콰도르 선교
  • 2014년 2월 호주 선교
  • 2013년 2월 멕시코 선교
  • 2012년 4월 아프리카 선교
  • 2011년 8월 멕시코 선교
  • 2010년 6월 멕시코 선교

7. 특기

이전 세대 어른들이 매우 불호하는 팔방미인 스타일이라 9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면 매우 좋았을 것 같다는 푸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요즘 20대 스타트업 대표나 혁신 기업가들에게 많이 요구되는 능력 - 현대의 기술을 잘 활용하여 다방면에 능숙하고 임기응변이 빠르며, 여러 분야를 통합하여 사고하는 Critical Thinking - 을 두루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특기를 나열해 보면
  • 커뮤니케이션 스킬 - 대략 20여년을 말을 잘해서 먹고 살고 있다. 글도 잘쓴다. 현재의 주 업무도 프리젠테이션 및 학부모 상담이어서 Oral Communication, Visual Communication, Written Communication 모두 잘 유지하고 있는 듯.
  • 언어 스킬 - 한국어, 영어 기본 장착, 일본어 조금, 스페니쉬 조금.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며, 다른 나라 언어를 빨리 배우는 편.
  • 컴퓨터 스킬 - 1991년부터 맥킨토시 앱등이라 애플스토어 맥지니어스들과 얘기하면 걔네들이 진다. 맥OS, iOS 등은 시스템 기반부터 애플리케이션까지 문제해결이 가능. 윈도우도 업무 때문에 기본 이상은 다 잘 다룬다.
  • 영상 편집 스킬 - 거의 1세대 유튜브 사용자로서 초기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을 잘 다루며 현재는 SONY A7을 메인으로, 서브로는 DJI Pocket2와 아이폰 13 프로맥스로 촬영을 한다. 아주 전문적인 편집은 잘 안해서 그때 그때 새로운 기능을 찾아서 사용하는 편이고, 일반 컷 편집과 타이틀 제작, 연출등은 꾸준히 하고 있는 중.
  • 녹음 및 믹싱 스킬 - 지속적으로 녹음을 하고 믹싱을 하고 있어서 데모 트랙 정도는 쉽게 만들지만 노가다가 필요한 음원은 맡긴다. 보컬 튜닝에 요즘 재미가 들렸으나 AI가 더 잘하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 디자인 스킬 - 미대 다니다 만 오빠로서 포토샵, 일러스트 정도는 기본. 지금은 비싼 가격 때문에 어도비를 버리고 어피니티[ * https://affinity.serif.com/]를 쓰고 있다.
  • 악기 스킬 - 고등학교때부터 연주하던 어쿠스틱기타를 30년째 꾸준히 하고 있고, 미국에서 접하게 된 베이스도 기본은 한다. 일렉기타는 백킹 위주의 연주는 가능하다. 드럼은 캘리포니아의 MI 교수님이 입학을 권유할 정도로 감각이 좋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프로의 길에는 들어서지 않았고, 아직도 가끔 찬양팀에서 드럼 연주를 하곤 한다.
  • 음향 스킬 - 밴드 시절에 기본적인 것을 배웠고, 미국 유학시절에 섬기던 교회에서 매우 인텐스한 트레이닝 및 음향회사에서 틈틈히 알바를 하며 배운 스킬로 2000명 정도 규모의 시스템은 다룰 줄 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를 겪어서 아날로그 콘솔 및 아웃보드를 다루면서도 디지털 콘솔을 잘 다루는 편이며, 아날로그 시절에 장기간 사용했던 콘솔은 맥키, 마이다스, 야마하 등이며, 디지털 콘솔은 야마하의 MC7, 베링거의 X32, 마이다스 M32, 아비드의 베뉴, 디지코의 SD7, 알렌앤히스의 QU24, SQ7등을 다룰 줄 안다. 시스템 설계도 자주 하는 편이며 다루는 악기도 많아서 연주자의 입장에서 시스템 세팅을 잘 하며(모니터 세팅이 환상적이라는 평가) 까다로운 목사님들의 모니터 튜닝을 많이 해 보아서 다양한 스피커의 성향과 이큐 세팅, 컴프 및 게이트 사용을 잘 한다.
  • 운동 재활 스킬 - 2020년부터 꾸준히 재활 운동중이다. 건강도 좀 안 좋았고, 체형이 많이 무너져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해서 20kg이상을 감량했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트레이너를 몇명 만나서 지금은 기초적인 Calisthenics 운동을 하고 있는 중.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여러 운동방법을 숙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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