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시어터 멤버 | ||
現 멤버 | 포지션 | 前 멤버 |
존 페트루치 | 기타 | 크리스 콜린스 (보컬) 찰리 도미니치 (보컬) 케빈 무어 (키보드) 데렉 쉐리니언 (키보드) 마이크 맨지니(드럼) |
존 명 | 베이스 | |
제임스 라브리에 | 보컬 | |
조던 루데스 | 키보드 | |
마이크 포트노이 | 드럼 |
James LaBrie |
▲ 왼쪽이 라브리에. 젊었을 때는 그래도 제법 샤프했다! [1] |
▲ 로드러너로 들어가는 DT 9집 시점부터 수염을 길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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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evin James LaBrie[2]드림 시어터의 보컬리스트.
1963년 5월 5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 페네탱귀신(Penetanguishene) 출생
2. 생애 및 활동 내역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가정에서 태어나 늘 노래를 했고 결국 락에 심취하며 이 험한 길을 가기로 한다. 미국도 힘든데 캐나다 내에서 락씬을 찾기란 어려운 일[3]이었으나 20대 초반까지 즐기면서 활동을 했다. 하지만 23세가 되면서 바 라이브로 활동하는데 지쳐가고 있었고 이때 글램 메탈 밴드 윈터 로즈를 결성한 기타리스트 리차드 치키를 만나게 됐다. 치키는 이때 자신의 곡들을 제임스에게 전달했고 곡들이 좋으면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이때 치키는 함께하던 보컬 세바스찬 바흐를 스키드로우로 떠나보내고 난 후라 보컬을 찾고 있었는데, 이들의 곡이 썩 마음에 들었던 제임스 라브리에는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윈터 로즈를 결성 3년간 함께하기에 이른다.한편 이때 드림 시어터는 1집 When Dream and Day Unite를 녹음했던 보컬리스트 찰리 도미니치의 역량에 만족하지 못했던[4] 페트루치, 명, 무어, 포트노이가 보컬리스트 교체를 결심하고 새로운 보컬을 찾으며 상당히 고생을 했다.[5] 이미 새로운 보컬로 Chris Cintron과 함께 했지만 밴드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 라브리에는 그들의 앞으로 자신이 녹음한 <윈터 로즈> 라이브 데모와 프로필 사진 등을 보냈고 이를 들은 드림 시어터는 당장 오디션을 보자고 했다. 제임스는 뉴욕으로 날아와 밴드에 합류하고 엄청나게 빡센 오디션을 보게 된다. [6] 결국 미친듯한 성량, 초 고음, 멋진 성격에 록커 냄새 물씬 풍기는 라브리에로 낙점을 해버렸고 드림 시어터의 프론트맨이 된다. 밴드 내에서 유일한 캐나다인이며, 고학력자가 득실대는 밴드의 프론트맨인데 유일한 고졸이다.[7]
본명은 "케빈 제임스 라브리에"이지만, 안 그래도 존 명과 존 페트루치, 두 명의 존이 있는데 케빈까지 두 명[8]이 될 수는 없는지라, 활동명은 '제임스 라브리에'로 하기로 정한다.
전 드러머 였던 마이크 포트노이에 의하면, 한참 보컬리스트를 찾던 1991~1992년에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 직전에 그의 오디션 테이프가 도착했는데, 그의 기량에 매료 되었으며, 테이프에 동봉됐던 그의 사진을 보며 "노래 잘부르는데 인물도 훤칠한걸 보니 참 재수없는 친구겠다." 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 도착해서 직접 이야기 해보니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죽이 잘맞아 오디션을 치른 후 확신을 가지고 계약했다고 한다.
3. 가창력
▲ Metropolis Pt. 1: The Miracle and the Sleeper의 연도별 변화 | {{{#white ▲ Learning to Live[9] 1993년 라이브. 6분 50초부터 라브리에의 전성기 보컬 퍼포먼스를 느낄 수 있다.[10]}}} |
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예스의 존 앤더슨에 맞먹는 우주구 급의 보이스를 자랑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오디션 당시의 녹음 자료가 있는데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없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그리고 밴드 역사상 최고음을 자랑하는 3집의 Innocence Faded도 들어볼 만하다.
라이브 앨범인 Live at the Marquee에선 스튜디오 버전을 뛰어넘는 전성기 시절 라브리에의 보컬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11] 다만 부틀렉들이 유튜브 등 상에 많이 공개되고 마퀴 라이브의 라브리에 보컬이 스튜디오 더빙임이 잘 알려진 최근에는 식중독 이전의 라브리에도 라이브에 그리 강한 보컬은 아님이 밝혀지긴 했다. 사실 이런 음역 자체의 리즈 시절은 드림 시어터 재적 당시보다는 오히려 1989년 발표한 리차드 치키와 함께한 프로젝트 밴드 윈터 로즈의 유일한 앨범에서 확 나타나는데, 라브리에의 당시 보컬을 득음의 경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거의 모든 표현에서 S급의 경지를 자랑하는 라브리에의 미친 보컬을 맛볼 수 있는 앨범이다.
▲ 당시 유행하던 글램, 헤비 메탈을 표방했던 윈터 로즈의 대표곡. 젊은 시절 라브리에의 실력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앨범이다. |
맑고 높은 음역만이 라브리에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다채로운 분위기 변화를 소화해내는 감정 표현력이 특히 인정받았다. 곡의 테마와 소재, 심상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맞춰가며 청자를 잡아끄는 라브리에의 보컬은 자칫 기교 넘치는 음악 탓에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일 수도 있을 드림 시어터의 음악에 대중성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12] 다소 고음의 역량이 하락한 현재도 매력적인 음색과 감정을 잡는 능력만큼은 건재하다.
허나, 이 탁월한 목소리는 1994년 그가 식중독에 걸리며 위기를 맞는다. 안 그래도 평소 라브리에는 음역을 가리지 않고 자주 스크래치를 넣는 등, 몇 년 안에 목소리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창법을 쓰며 라이브에서의 음이탈도 잦았는데[13], 쿠바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상한 해산물을 먹고, 계속된 구토로 성대를 크게 다친다. 의사, 트레이너 등 많은 전문가들이 최소한 1년은 쉴 것을 권장했지만 라브리에는 투어를 강행했고, 목 컨디션은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만다.[14]
나아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목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려, 탈퇴까지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였지만 노력 끝에 6집 발매 시기에 와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 다만, 스튜디오 사운드에서는 괜찮지만 라이브 기복이 이전보다 심해졌다. 구토 사건 이후로는 7집 투어 때 즈음이 라브리에의 보컬이 가장 안정적이고 출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7집 투어 중의 Learning to Live, 11분 24초에 3단 고음을 완벽히 해낸다.[15]
이 시기의 셋리스트에는 고음 파트가 쉽지 않은 곡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라이브 기복은 있었지만 상당히 안정적으로 불러냈다.[16] 정작, 정식 라이브 앨범으로 나온 일본 무도관 공연에서의 컨디션과 셋리스트는 어딘가 쳐져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9집, 10집 들어서부터는 아무래도 나이 탓인지 애써 바꾼 창법에도 불구하고 예전 같지가 않다. 2014년 Breaking The Fourth Wall 라이브를 보면 어려운 곡들을 굉장히 잘 소화해내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이후로 목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만 갔고 2017년 진행된 Images And Words 25주년 투어에서는 Pull Me Under부터 Learning to Live까지 모두 한 키 내려 공연했다.[17][18] 하지만 이후 이런 작태에 대한 비판이 심해지자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래들만 원키로 부르고 나머진 다 라이브를 하지 않는데, 당연히 그나마도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해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으로 부른다.[19] 2023년 내한 당시 영상들에서도 옹호 여론은 거의 보이질 않는 수준이며[20] 맨지니가 빠지고 포트노이가 들어온다던 뉴스에서도 '드럼이 아니라 보컬을 갈아치워야 한다'라는 여론이 강하지만 그래도 드림 시어터의 전성기를 함께 견인한 멤버인만큼 해고도 쉽지 않을 것이라 보컬 교체는 요원한 일.
나이와 체력을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으나, 2019년부터 진행하는 Metropolis Pt.2의 20주년 투어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아래 영상을 보고 비교해보자.
2014년 Breaking the Fourth Wall 라이브 당시 Strange Deja Vu[21]
2020년 1월, 6분부터 Metropolis Pt.2 20주년 공연 중의 Strange Deja Vu
2023년 내한 공연 당시 Pull Me Under
2019년 발매한 스튜디오 앨범 Distance over Time에서는 대놓고 후 보정을 빡세게 해야 할 정도였다. 2020년 발매한 라이브 앨범 Distant Memories에서 프로듀싱을 거친 결과물을 현장에서 팬이 녹화한 영상과 비교하면 할 말을 잃을 것이다.[22]
숨쉴 틈 없이 일하던 밴드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정말 오랜만에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라브리에도 컨디션을 회복할 기회를 얻었다. 최근에는 cameo.com이라는 동영상공유 사이트를 통해 팬들이 요청한 곡을 짤막하게 불러주는 영상들을 공개하고 있다. 음정을 맞추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조금씩이나마 상태가 호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목소리가 미성이라서 그런지 실제로 내는 음보다 높은 음처럼 들리는 경향이 있다.[23] 또한 목소리가 약간 날티나는 톤이라서 들어보면 발성이 준수하지만 그냥 생목(..)으로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24] 이래저래 오해가 많은 보컬.
2024년 10월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40주년 콘서트에서는 컨디션이 상당히 들쭉 날쭉 하기는 하나 밀라노 공연에서 Pull me Under를 원키로 소화하는 등, 최근 몇년 간 보여줬던 최악의 컨디션에 비해서는 대체로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투어 전 발표한 신곡이나 커리어 중반의 이후의 곡들은 무리없이 소화해 내며, 맞는 음역 안에서는 표현력과 성량이 아직 건재함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고음을 쉴새 없이 쏟아 내는 커리어 초창기 곡들은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 점은 여전히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4. 디스코그래피[25]
1집 - Keep It to Yourself (1999)[26]2집 - Mullmuzzler 2 (2001)
3집 - Elements of Persuasion (2005)
4집 - Static Impulse (2010)
5집 - Impermanent Resonance (2013)
6집 - Beautiful Shade of Grey (2022)
5. 여담
- 어렸을 때 교회의 성가대 단원이었다고 한다.
- 최근 메탈코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어거스트 번즈 레드,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등의 밴드에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링크 [27] 그의 솔로 앨범에도 메탈코어나 멜로딕 데스메탈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 아들인 Chance Labrie는 밴드에서 드럼을 하고 있으며, 2020년 10월에 데뷔한다고 한다.
- 마이크 포트노이의 밴드 탈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 "포트노이가 떠났는데 슬프지 않나?"라는 질문에 "아니, 나 하나도 안 슬퍼. 그러고 싶지도 않고. 포트노이가 떠났어도 드림 시어터엔 네 명이 남아있음. 우리 창작욕 뻗침.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함. 님들도 기대해."이라는 경쾌한 반응을 보였고, 포트노이가 밴드 홈페이지에서 자기 페이지가 썩둑 잘려나간 것도 있고 해서 "거 되게 섭섭하다. 상처받았다."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라브리에는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라고 대응했고, 포트노이는 "나도 오해한 것 같긴 해. 그런데 왜 내가 보낸 멜 안 읽음? ㅜㅜ"라며 답답해했다... 이와 더불어 포럼에서는 "포트노이 당신 나갔으면 자꾸 찌질하게 매달리지 마라. 관심 끊어."라는 친DT파와 "야 그래도 DT 이름도 포트노이 아빠[28]가 지어준 거고, 포트노이한테는 DT의 의미가 남다른데 그렇게 안면몰수하면 그게 사람이냐?"라는 친MP파 식으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지금은 당사자들이 더 이상의 관련글을 쓰지 않고 멈춘 상태라서 직접적인 싸움판은 그쳐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벽은 점점 두터워지는 듯. 2020년에 공개된 인터뷰에 의하면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탈퇴 이후로 단 한번도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거나 연락을 한적이 없다고 한다.
- 위의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크 포트노이 탈퇴 당시 감정적으로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멤버는 단연 제임스 라브리에 일 것이다. 모두가 부드러운 성격인 드림시어터 멤버들 사이에서 마이크 포트노이는 리더십을 발휘하던, 소위 말해 총대를 매는 역할을 맡는 편이었다. 가끔은 그런 경향이 지나칠 때가 있어 공개적인 인터뷰에서도 그의 퍼포먼스에 대해 아쉬움을 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할 정도였고 나중에는 아예 보컬 파트를 자기가 맡을 정도로 지나치게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9] 때문에 둘 사이에 긴장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며, 마이크 포트노이와 관계과 꽤 빠르게 회복되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거의 10년 이상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시간이 약이라고, 드림 시어터의 2022년 그래미 수상 때 마이크 포트노이가 제임스 라브리에에게 축하 메세지를 보낸 것이 화해의 계기가 되었고 얼마 후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며 과거의 불편한 감정을 털어냈다고 한다.
- 그 내성적이기로 유명한 존 명에게 공격(?)받은 인물. 존 명과 제임스가 몇백불이 걸린 내기를 했었고, 이에 명이 지자 순간 빡돌아서 명이 제임스에게 라이브 도중 뒤로 넘어질 정도의 어깨빵을 시전해버렸다.
- 드림 시어터의 라이벌로도 평가받는 Symphony X의 보컬리스트 러셀 앨런과도 친분이 있다. 이 두 밴드가 서로 접점이 있는 편은 아니란 걸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30] 또한 스키드로우에서 보컬을 했던 세바스찬 바흐와도 알고 지낸다. 이 사람하고는 같은 캐나다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전에 캐나다에서부터 리차드 칙키를 통해 안면이 있었다는 듯.
- 드림 시어터 내에선 그다지 영향력이 높지 않은 편이다.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정규 음악 교육을 거치지 않아서 작곡에 참여한 빈도수가 적고, 작사 또한 참여 빈도수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나마 Distance over Time에서 작사에 참여한 빈도수가 늘었지만 A View from the Top of the World에선 도로 줄었다.[31]
[1] 오른쪽은 윈터 로즈의 리더이자 현재는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는 리차드 칙키. 참고로 칙키는 13번째 스튜디오 앨범 Dream Theater에서 엔지니어로 참여하며 라브리에와 재회했다.[2] 실제 발음은 라브리에가 아니라 '라브리' 라고 발음한다. 참고로, brie는 브리 치즈와 같은 철자다(...)[3] 캐나다의 록 씬은 미국에 비하면 굉장히 좁은 편이다.[4] 이 부분은 사실 명확하진 않다. 분명 인터뷰등에서 도미니치의 보컬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뛰어나지만 프로그래시브 밴드와 어울리지 않는다." 라던가 나이차에서 오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정도로 정리가 된다. 드림 시어터의 다큐를 보면 심지어 도미니치가 인터뷰에 응해 꽤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밴드와 안 좋은 관계로 퇴출된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랬다면 다큐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 사실 밴드는 프로그래시브와 메탈에 푹 빠져있었고 찰리는 당시 좀 더 팝적인 곡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은 이미지 자체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찰리는 이미지가 롹커와 좀 거리가 있었다고 했다.[5] 심지어 페이츠 워닝의 보컬 존 아치도 이들과 잘 맞을 줄 알고 조인했으나 금세 나가떨어졌다.[6] 4일간 미친듯이 곡을 합주했고 처음에 저니 곡들로 시작해 드림 시어터의 1집도 소화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때 Chris Cintron이 일단 밴드 보컬로 된 상태였다.[7] 밴드의 출발 자체가 버클리 음대 동문들이 합주하다가 만들었다. 후에 합류한 조던 루데스는 줄리아드 음대 출신. 후에 합류했다 탈퇴한 마이크 맨지니는 벤틀리 대학교에서 컴공과를 졸업했다가 버클리 음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다.[8] 케빈 무어[9] 2집 수록[10] 여담이지만, 이 부분에서 카메라에 같이 잡힌 마이크 포트노이의 연주도 놀랍다. 포트노이의 쌩쇼를 보고 있으면 대체 저게 무슨 놈의 박자 쪼개기인지 신기해서 다시 돌려보게 된다.[11] 모든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할 뿐 아니라 깔끔하게 올리는 앨범 버전과 다르게 파워까지 겸비했다. 특히 최절정은 Another Hand-The Killing Hand로, 1집의 보컬을 맡은 찰리 도미니치의 원곡을 잊게 만드는 미친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절정으로 넘어가는 I'm in the valley부분부터는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오히려 더 파워가 붙는 말도 안되는 보컬이 나온다.[12] The Dance of Eternity 등 드림 시어터의 연주곡들에서 이런 점이 절실히 느껴지는데, 이런 곡들에선 인간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무척이나 기계적으로 들린다.[13] 애초에 본인이 정석적인 발성을 배운 게 아니라 보컬을 독학한 경우라 발성 자체가 그다지 안정된 편이 아니었다. 호흡을 안배하고 균일하게 유지시키는 능력이 부족해 대다수의 라이브에서 저음역이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잦았으며 고음역으로 올라갈수록 목에 힘을 과도하게 주고 후두를 있는 힘껏 올려서 거의 혀가 입 밖으로 돌출되다시피 할 정도였는데, 목에 이렇게 힘을 잔뜩 주면 성대가 아무리 튼튼해도 당연히 목에 무리가 간다. 이런 상태에서 스크래치를 팍팍 걸고 고음을 질러댔으니 목이 상하는 게 당연하다. 요컨대 박완규와 비슷한 방법으로 소리를 냈던 사람이란 것.[14] 사실 성대결절 같은 심각한 질환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때 투어를 중단하고 그냥 휴식했으면 이전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역량이 크게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15] 이전까지는 3단 부분을 낮춰서 불러왔다. 5집 라이브 앨범에서도 낮춰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16] Another Day, Metropolis Pt.1, The Mirror, Voices, The Glass Prison 등[17] 잔잔한 피아노 반주의 Wait for Sleep은 원곡대로 불렀다.[18] 사실 이 키 하나 내리는 것 때문에 밴드의 음악 전체가 해를 입는단 의견도 많이 있다. 원곡은 하나의 오차 없이 완벽히 모든 파트가 맞물리는 사운드가 매력인데 키 하나를 내리면서 그 완벽한 조화가 다 틀어져버린다. 더군다나 원래도 5집부터 줄고 있었던 라브리에의 보컬 파트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아예 예의상 있는 수준으로 줄어버려서 A View from the Top of the World 쯤 되면 보컬 파트가 거의 곡 전체의 4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의 곡들이 늘어난다. 숫제 보컬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인스트루멘탈로 때우려는 듯한 모습이다.[19] 보컬이 워낙 어려운 Another Day 같은 경우는 아예 보컬 멜로디 라인을 바꿔버렸다.[20] '나이가 이제 환갑인데 당연히 고음을 못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도 저 정도면 다른 나라 콘서트 때보단 낫다(..)' 등의 옹호 여론도 간간히 있긴 하다.[21] 다만 이 라이브는 유독 컨디션이 좋았던 때 불려진 라이브긴 하다.[22] 그동안 꽤나 관리를 해왔음에도 이렇게까지 목 상태가 악화된 걸 보면 애초에 성대의 노화가 심한 체질인 듯.[23] 앙그라 前 보컬 에두 팔라시와 비슷한 목소리인데 미묘하게 굵은 에두와 살짝 굵음이 적은 라브리에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재밌는 부분이다. 둘 다 음역이 비슷하여 더욱 그렇다.[24] 다만 원래도 인골라가 심한 보컬이긴 했었다. 식중독 이후로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인골라가 나오는 건 여전하다.[25] 솔로 활동[26] 레코드사에서 본명으로 솔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2005년 3집 이전까진 Mullmuzzler라는 예명을 사용했다고 한다.[27] 라브리에가 메탈코어 밴드 이름들을 대고 있는데 존 페트루치는 옆에서 "그거 지어낸 거지?"하고 있다... 잘 모르는 밴드인가 보다. 애초에 자기가 하는 음악과 큰 연관도 없는 밴드를 찾아들을 필요는 없다.[28] 10집 제작 시점에서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를 추모하는 곡(The Best of Times)이 앨범에 실리기까지 했는데...[29] 마이크 포트노이 탈퇴 이후 리더 역할을 맡아 했던 존 페트루치가 그를 칭찬으로 일관하면서 보컬 파트는 전적으로 일임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30] 애초에 두 밴드의 스타일부터가 심포니 X는 잉베이의 네오 클래시컬 사운드에 프로그레시브 어프로치를 가한 스타일이고 드림 시어터는 러시로 대표되는 프로그레시브 색체에 탄탄한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아트락, 헤비메탈, 스래쉬 메탈 등의 여러 요소에 팝적 멜로디와 기교를 절묘하게 배치한 스타일이다. 솔직히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란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31] 참고로 현재 드림 시어터에서 작사/작곡 기여도는 존 페트루치>= 조던 루데스 > 존 명 > 마이크 맨지니 > 제임스 라브리에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