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조 애리디 Joe Arridy | |
본명 | 조셉 애리디 Joseph Arridy |
출생 | 1915년 4월 29일 |
미국 콜로라도주 푸에블로 | |
사망 | 1939년 1월 6일 (향년 23세) |
미국 콜로라도주 카뇽 콜로라도 주립수용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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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인물. 지적장애로 인해 사법살인을 당한 인물이다.2. 생애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시리아계 아버지와 레바논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발전이 더딘 6살 아이 수준의 지적장애인이었다. 21세부터 여러 주를 전전했고 와이오밍주 샤이엔의 식당가에서 일하려고 했으나 채용되지 못했다. 가족으로는 부모님 외 여동생 1명만 있었다.이후 고향인 콜로라도주 푸에블로로 돌아와 노숙 생활을 하다가 15세 소녀 도로시 드레인을 강간 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IQ검사에서 46이 나오는 지적장애를 앓고있던 그는 유도신문에 의해 범인으로 판결되었으나, 정황들이 맞지도 않고 변론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교도소장[1]과 교도소 직원들, 피해자의 유족과 범행에서 살아남았던 피해자의 여동생마저 그가 진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교도소장이 준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으며, 다른 수감자들과 교도관들의 호감을 사며 호감을 얻은 모범수로 유명했었다. 교도소장은 그를 "가장 행복한 사형수(the happiest prisoner on death row)"라 칭했으며, 그는 자신이 사형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참고로 이 교도소장은 애리디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를 지지했던 사람중 한명이였다. 1939년, 사형 당하기 전 교도소장의 배려로 그의 가족이 깜짝 방문을 했다. 애리디는 끝까지 자신이 사형 당한다는 사실을 인정 하지 않았으며, "아니, 아니. 조는 죽지 않아.(No, no, Joe won't die.)"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1939년 콜로라도 주립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전 마지막 식사는 아이스크림이었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사형장으로 갔다. 간수에게 남은 아이스크림을 나중에 먹게 보관해 달라고 했다.[2]
위 내용에 대한 여담으로, 애리디가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모르고 마냥 웃고 있자, 교도소 측에서 사형이라는 개념을 설명 해 주었다. 그제서야 사형의 의미를 알게 된 애리디는 두려움에 떨며 매우 당황해 했는데, 애리디와 꽤 돈독한 관계였던 교도소장이 직접 애리디를 손을 잡고 안심시켜, 사형장으로 데려갔다고 한다.[3]
정작 진범인 프랭크 아귈라는 애리디의 체포 후 몇시간 뒤에 잡혔는데, 그는 애리디의 사형 집행과 같은 해인 1939년 8월 17일에 사형되었다. 생전 애리디와 함께 심문받기도 했는데, 애리디는 침묵을 유지했다고 한다. 심문 후 자백서에 서명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귈라는 피해자의 아버지와 알던 사이이고, 경찰 수색에서 범행도구와 범행 계획 등이 발견되어 진범임이 거의 확정시되었다. 그는 두 건의 살인미수 사건에도 용의자로 지목되어 있었고, 드레인의 장례식에서도 경찰에 연행되었던 전적이 있었다.
이후 누명을 쓴 것이 밝혀졌으며 2011년 콜로라도주 주지사에 의해 사면되었다. 이러한 사법살인으로 인해 미국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형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