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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조말생 趙末生 | |
본명 | 조말생 (趙末生) |
배우 | 최대훈 (청년) 《육룡이 나르샤》 이재용 (노년) 《뿌리깊은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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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용비어천가 시리즈》의 등장인물.이방원의 최측근 신하이자, 세종의 조력자.
2. 작중 행적
2.1. 육룡이 나르샤
35화에 처음 등장했다. 산 속에서 정몽주가 보낸 살수를 피해 이성계를 데리고 달아나던 이방원이 우연히 마주친 유생. 야밤에 검법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방원이 세금을 내지 못해 쫒기고 있다며 둘러대자 두 부자를 숨겨준다. 그러나 살수들이 와서 집을 뒤지고 가는 와중에 자신이 숨겨준 이 중 하나가 이성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수들이 돌아가자 자신은 양주 조씨로, 이색을 존경하는 자라며 이성계의 목에 칼을 겨눈다.[1] 이에 이방원은 허탈해하면서 마음대로 해보라고, 해보기만 하면 당장 함주로 가서 가별초를 끌고 와 양주 조씨를 모조리 도륙낼 거라고 협박한다. 이어서 이색이 한 게 뭐길래 그리 존경하냐며 이성계가 만들려는 건 다름아닌 유자의 나라라고 말하자 '따를게.'라고 담담히 말하면서 칼을 거두며 이방원에게 이성계 쪽 사람들의 의중을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사람을 모아 상여를 이용해 두 부자가 개경에 도착하는 걸 도와준다. 이방원이 이름을 묻자 조말생이라 답하는데, 이방원에게 이름이 이상하다고 까였다.44화에서 민다경이 조말생을 성균관 유생으로 넣어뒀다는 말로 재등장했다. 이후 다른 유생들과 함께 정도전을 명나라로 보내라고 탄원 한다.
46화, 이방원이 주도하는 비밀회합에 참여, 거사준비 과정에서 핵심인원 중 하나로서 역할한다.[2][3] 그리고, 연희를 조영규의 상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후 연희의 목에 칼을 겨누고 이방지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이때 표정이나 대사를 보면[4] 확실히 정말로 연희를 죽이고 싶진 않고 잠깐 시간만 끌고 싶었던 듯. 하지만 연희가 알아서 목에 칼 긋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놀라서 부하들과 도망친다.
2.2. 뿌리깊은 나무
숭록대부[5]로 태종 때부터 관직에 있었던 신하. 병권을 가지고 있던 태종의 일을 직접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즉 세종의 오른팔이 무휼이면 태종의 오른팔은 조말생.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이나, 무휼을 제외하고 그처럼 충성심이 드높은 인물도 없다.
실제 인물은 전형적인 문신[6]이었는데 여기서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특이점. 심지어 이방지를 계책에 빠뜨려 정도전과 그의 연인을 모두 죽이기도 했는데, 이를 복수하기 위해 이방지가 쳐들어오는 장면에서 "나도 무인으로서 여인을 계책에 사용한 것을 부끄럽다"라고 언급했을 정도. 무휼이 태종을 겨눌 때에도 태종 주변에서 칼을 차고 있기도 하였고, 밀본을 잡으러 다닐 때에도 칼을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무사급은 되는 모양. 젊은 세종의 강단진 모습을 보았을 때도 흐뭇해했으며 현재의 세종에게도 누구도 믿지 말라는 주청을 올렸는데, 그것에 대해 세종이 그럼 "너는 어떻게 믿냐"고 쏘자 대인배답게 "바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옵니다 전하."라고 기쁘게 받아넘기는 바람에 세종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태종이 특히 신뢰하던 신하. 후에 밀본이 날뛸 때를 대비해 세종에게 밀본의 글을 보여주라고 명한 듯, 세종을 모시고 정도광의 집 지하로 가서 그 글을 보여주며 밀본의 존재를 알려준다. 지금도 여러모로 대신들을 자체 조사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을 이용해 밀본의 세력을 추적하고 있다. 극중에서 영의정 황희가 중립적인 위치이며 좌의정이 부재중인 현 고위 관료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며, 무휼이 경호실장 포지션이라면 조말생은 국정원장 포지션. 대왕 세종에서 정동환이 분했던 조말생과 비교해 보면 꽤 차이가 크다. 현재 글자를 만든다는 세종의 계획을 듣고 '이도의 일에는 관여하지 말고 오직 밀본만을 쫓으라'는 태종의 마지막 명과 자신의 주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1차 왕자의 난 당시 조말생의 계략으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이방지가 원한을 품고 조말생에게 찾아와 칼을 겨누었었다. 하지만 살기등등한 이방지의 칼 앞에서도 그저 담담하게 차를 마시는 엄청난 여유를 보여주며, 이방지에게 사실은 정도전이 죽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냐고 날카롭게 지적해 이방지가 할 말을 잃고 돌아가게 만든다. 이후 19화에서 카르페이와 싸우다 중상을 입은 이방지가 자기 집으로 피신한 것을 발견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의원을 부르고 간호한다. 이 때 이방지로부터 정기준의 정체를 알게 된다.
20화에서 광평대군의 죽음이 밝혀지자 세종에게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하라고 당부드렸는데 그렇게 못하셔서 광평대군께서 돌아가신 것이다"라고 뼈를 때리면서, 세종이 윤허하든 말든 자신이 독자적으로 밀본을 잡아내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각성한 세종대왕에게 밀본 수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고 신나게 추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인이고 집현전 학사들이고 뭐고 없다. 모조리 잡아넣는다. 드라마 내에서 말하기를, 세종은 조말생을 내치지도 않았지만 가까이도 하지 않았다[7]고 하였는데 사실 세종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이후 세종과 독대하면서 조정에 있을 밀본원으로 심종수가 의심된다고 세종에게 고한다. 이 때 세종이 조말생에게 심증을 비친 건 우의정 이신적.
마지막회에서는 밀본의 본거지를 소탕하는 작전에 지원을 보내기도 하고, 훈민정음 반포식에 참석했다가 정기준을 보고 추격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기준을 청계천 지류에서 놓쳤다는 보고를 듣고 경악하는데, 경복궁을 정도전이 지었기 때문에 정기준이 비밀통로를 통해 경성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아서 세종을 해하려는 줄 알고 정인지와 함께 경성전으로 향했다.[8] 그러나 경성전에서는 정기준이 이미 세종 앞에서 숨을 거둔 뒤였다.
이후 세종의 후일담에서 나오는 경연 장면에서 잠시 등장한다. 좌측의 대신들 좌석에서 세 번째에 앉아 있는데, 해당 장면에서는 황희가 등장하지 않고 이신적이 상석에 앉아 있다. 황희가 은퇴하고 이신적이 영의정이 된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나 실제 역사에서 황희는 1449년(세종 31)에 은퇴했고, 조말생은 훈민정음 반포 다음해인 1447년(세종 29)에 사망했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다.
일평생 동안 줄기차게 쫓았던 밀본을 다 조져놓았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뿌리깊은 나무》의 진정한 노익장 캐릭터.
이방우와 더불어 실존인물은 문관이지만, 용비어천가 시리즈에서는 무인으로 등장한다.
3. 명대사
"바로 그것이옵니다 전하. 끊임없이 의심하소서."
"저럴 때 보면 참 선왕 전하와 똑같으시단 말이야."
차라리 제가 고신을 당하는 게 낫겠습니다.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9]
[1] 조말생은 실제로 정몽주의 직계 제자인 조용의 제자이다. 극 중에서 이성계를 보고 저런 반응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 셈.[2] 이 부분은 드라마의 창작으로, 조말생이 관직에 나선 것은 태종 1년(1401년), 즉 무인정사(1398년)로부터 3년 뒤다. 일반인으로서 관여했다고 해도 실제로 조말생이 무인정사에 관여했는지는 기록이 없다.[3]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이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28세였던 조말생을 당시 48세였던 이재용이 연기하면서 졸지에 노안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이방원(당시 31세)과 비슷한 연배로 묘사되는 이방지를 연기한 우현도 당시 47세였다.[4] 잠깐이면 되니 제발 가만히 있어라, 나도 죽이기 싫다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하며 협박한다.[5] 종1품 문무반 신료에게 주는 품계인데 드라마에선 계속 승록대부로 자막이 나온다.[6] 문신은 맞으나 병조판서로 8년을 일하고 함길도 관찰사로 여진과의 전투를 지휘한 경험이 있음[7] 즉 드라마 내에서 묘사된 바 같이 태종이 했던 것처럼 무(武)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선언.[8] 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정도전은 경복궁이라는 명칭과 그안에 있는 주요 전각들의 명칭만 지었지 경복궁의 설계자는 아니었다. 경복궁의 설계자는 환관 김사행이라는 인물이다.[9] 이 때 이재용 배우의 절제된 앙탈 연기가 일품이다. 빼도 박도 못할 세종바라기 인증.